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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맞바람 맞으며 자란 나무는 쓰러지지 않아

손흥민의 원더골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최근 손흥민의 폭풍과 같은 질주에 이은 슈퍼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인이 기록한 가장 위대한 골 중의 하나로 기억되기에 충분할 듯 하다. 기사마다 몇 미터를 달렸느니, 순간 가속도를 높이고 몇 명을 제쳤느니 하면서 흥분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거의 최후방에서 단독으로 상대팀이 가득한 전 운동장을 누비면서 홀로 골을 성공했다는 것이다.

주말 오후 무심결에 페이스북을 열었다가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보고선 저절로 감탄사가 입에서 터져 나왔고, 거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막내를 불러서 동영상을 같이 보면서 둘 다 흥분했다. ‘우리나라 선수도 이런 골을 터뜨리는 날이 오는구나.’ 그것도 축구의 본고장이라 일컬어지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서 말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을 명장면이 탄생했다. 이 골과 비교될 수 있는 골의 주인공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호나우두(브라질), 리오넬 메시, 디에고 마라도나 (이상 아르헨티나), 조지 웨아(라이베리아) 정도 밖에 없다.

그럼 손흥민은 골을 더 많이 넣었을까 아니며 노골이 더 많을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노골이 더 많다. 손흥민을 세계 최고 수준의 골잡이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 많은 노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공한 골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 어떤 선수도 모든 슈팅을 골로 연결시키는 선수는 없다. 야구에서 10번 타석에 나가서 3번 이상 쳐내면 3할대라 해서 우수한 선수로 꼽는다. 축구에서는 20명의 필드 플레이어들이 전후반 9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잠시도 쉼 없이 차고 달리지만 골은 많이 나봐야 한 두 골 수준이다.

승자와 패자는 ‘딱 한 번 더’의 차이일 뿐

손흥민을 길러낸 손웅정씨는 “제 2의 손흥민을 만들기 위해서는 15년도 짧다’고 강조한다. 손흥민은 5살 무렵부터 공을 차기 시작했고, 16실이 될 때까지는 기본기만 익혔다고 한다. 그 동안에는 정식 경기에 출전도 금지시켰고, 매일 6시간씩 담금질을 해댔다. 매일 양발 슈팅 1,000개씩, 그리고 줄넘기 2단 뛰기 수 천 번씩, 그리하여 15년간의 오랜 투자 끝에 오늘날의 월드스타가 탄생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스타도 경기에서 90분 동안 쉼 없이 뛰고 넘어지고 차고 한 끝에 겨우 한 골 성공할까 말까다.

실패만 계속될 때 실망하고 절망에 빠지기 쉽지만, 성공은 의외로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해 본 결과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마지막 시도에서 해내면 ‘성공’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실패가 된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도 어린 시절에는 점프 기술 하나를 연마하기 위해 수 천 번을 넘어져본 선수다. 우리가 박수를 치는 멋진 트리플악셀은 수 천 번의 넘어짐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때문에 ‘승자는 한번 더 시도해본 패자다’는 조지 무어 주니어의 명언이 널리 회자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흔히 밀레니얼세대로 일컬어지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가치관이나 생활패턴이 기성세대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소비성향도 당연히 다르기 때문에 전통적인 명품 메이커로 알려져 있는 여러 기업들이 새로운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다. 이들은 동물 모피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명품에 대해서도 선호하는 경향이 줄면서 명품 브랜드 ‘구찌’도 한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다시 가파르게 매출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젊은 층에게 다시금 어필하게 되면서 구찌 매출의 절반이 넘는 55%가 35세 이하의 밀레니얼세대에게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구찌의 CEO인 마르코 비자는 그 반등의 비결을 ‘리버스 멘토링 (Reverse Mentoring)’이라고 밝혔다. 흔히 멘토링이라고 하면 경험이 많은 멘토가 파트너가 된 멘티에게 노하우와 가르침을 전수해 주는 것인데, 이 리버스 멘토링은 그 반대로 밀레니얼세대인 젊은 직원이 멘토가 되고 이미 직장생활을 오래 해온 선배들이 멘티가 되는 관계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기업이라면 ‘금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부터 했다. 아직 기업이라는 전쟁터에서 근무해온 경험이 일천한 젊은 세대, 어설프게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초짜들에게서 뭘 배운다는 말인가 하며 단박에 묵살될 것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경영이나 전략 같은 말들은 회사 내 깊숙하고 내밀한 곳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들간의 고민의 결과가 되어야 함이 제대로인 듯한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구찌가 실천 해온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령 임원회의가 끝난 뒤에 같은 주제를 가지고 30살 이하의 직원들과 다시 토론을 한다고 한다. 또 이런 젊은 직원들과 정기적인 점심 모임을 가지면서 문화나 복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토론하기도 했다는데 덕분에 이런 수많은 시도 끝에 기존의 구찌와는 구별되는 중성적인 디자인으로 탈바꿈하면서 이들 밀레니얼세대를 팬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다듬어 지지 않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구한 것은 실패에 더 가까운 모험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러한 시도 끝에 이루어진 성공은 결국 구찌를 다시 우상향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기업이라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2019년 태풍은 9월 10월에도 위협적이었다. 예전에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인 6월 하순부터 방학 중간쯤까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시절이 변하고 보니 태풍이 극성 맞은 시기도 점차 달라져서 이제는 가을에 집중되는 듯하다. 이것도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와 바람이 가져오는 재앙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거센 바람을 몰고 왔던 ‘링링’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태풍이 지나간 후 경기도 고양시와 양주시에 걸쳐 있는 노고산 등산길은 몇몇 곳이 낯선 등산로가 새로 생겼다. 거목이 쓰러져 길을 막아 버렸으니 쓰러진 나무 양 옆으로 돌아가는 등산로가 새로 났다.

결국 흔들려보지 않은 나무가 쓰러진다

등산로가 꺾어지는 길 모퉁이에 서 있던 오래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은 이해가 된다. 오랜 세월 자라면서 아랫부분은 한 아름이 넘었지만, 군데군데 썩거나 패인 곳도 있었다.

하지만 쓰러진 대부분의 나무들은 길 가에서 맞바람을 맞고 선 나무들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던 나무들 이었다. 길 가에 자리 잡은 나무들은 어릴 때부터 불어오는 맞바람을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바람을 견디기 위해 더 많은 뿌리를 더 깊이 내려서 땅을 단단하게 움켜쥐게 되었지만, 그 뒤 숲 안쪽에 서 있던 나무들은 앞에 선 나무들이 웬만한 바람은 막아주어 흔들려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식생태학자로 알려져 있는 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수는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에서 나무가 성장하는 원동력은 흔들리기 때문이라 했다. 오직, 살아 있는 나무,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무만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무라야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 깊은 뿌리는 많이 흔들려본 경험 덕분이라 했다. 결국 바깥쪽에서 나무들이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덕분에 안쪽에 있던 흔들려보지 않은 나무들이 바람에 쓰러진 것이다.

기업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갈등을 실패로 연결 짓는다. 성공이라 함은 갈등의 요소가 사라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자신의 머릿속에 해답이 없으면 실패로 귀결짓는 경우도 많다. 작게는 사내의 자잘한 회의에서부터 크게는 조직들 간에 담판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그 생각에 대해 설명하라고 요구할 때를 가정해 본다면, 사람들은 이런 도전을 공격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을 갖고 논리적으로 접근해 오지만 당한 사람은 화를 내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 특히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는 것이 많을 경우에는 더 화가 난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의견 충돌’로 얘기할 수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탐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언쟁에만 골몰하며, 합리적인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 의견충돌은 위협이 아니라 배우는 기회다. 승자는 ‘무엇인가를 배운 뒤에 생각을 바꾼 사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꾼 것을 실패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왔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말 하기 전에 최소한 세 번은 생각하고 말 하라고 배웠다. 세 번이나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그 뒤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아니,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론을 만나면 충돌이 된다. 충돌에서 극복되지 않으면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생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틀리다’고 인식하고 상대를 대하니 당연히 상대와 대화도 거칠어지고 껄끄러워지는 것이다. 그러고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하면 패배한 것이요, 실패가 되는 것이다. ‘다름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은 없다. 조직의 경무도 마찬가지다. 우리 조직의 울타리를 넘어선 다른 조직은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은 바뀔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을 때, 보다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이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워서 생각을 바꾸어 나아진다면 그게 승리하는 길이다. 하지만 한번 내린 결론의 자리에 머물러 충돌을 지속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결국 실패란 흔들리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12.17  15: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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