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두 건의 추락 사고로 4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낸 보잉 737 맥스의 운항이 내년에도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항공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해당 기종을 들여오려던 대한항공과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은 당분간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계획 차질과 이로 인한 실적 부담 등은 지울 수 없을 전망이다. 

‘추락공포’ 보잉 737 맥스 8 운항 재개 불투명

16일 업계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스티브 딕슨 미 연방항공청(FAA) 청장은 미국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내년 보잉 737 맥스의 운항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737 맥스의 정확한 운항 재개와 관련해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며 “운항 정상화를 위해 풀어내야 하는 쟁점이 10~11가지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어 “상당수의 시스템 조사와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고, 안전한 비행을 위해 모든 과정이 빈틈없이 이뤄져야 한다. 단순하게 계산하더라도 작업이 내년까지 지속될 여지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12일 딕슨 FAA청장은 737맥스 관련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의회 관계자들에 서한을 보내 조만간 737맥스의 운항이 재개될 것이란 제안을 강력히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FAA는 서한에서 “보잉이 계속해서 (신속한) 운항 재개를 추구하고 있는데, 여러 이유로 재개가 연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러한 보잉의 운항 재개 계획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잉의 발언 중 일부가 FAA로 하여금 운항 재개를 신속히 승인하도록 압박하는 듯한 인상을 줬는데 이와 관련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는 보잉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조치다. 보잉은 연말까지 모든 시스템 점검과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FAA등 항공 당국의 승인을 받은 후 내년 1월에는 운항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잉 737 맥스는 연이은 추락 사고로 지난 3월부터 한국을 포함한 세계 40여국에서 운항이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10월에는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의, 올해 3월 에티오피아항공의 737 맥스 8 기종이 각각 추락하면서 총 350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그 여파로 각국 항공사들의 수주 역시 끊겼다. A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보잉사가 11월까지 인도한 항공기는 총 345대로 지난해 806대에 비해 크게 줄었다. 게다가 올해 11월에 주문받은 여객기의 수는 11대에 그쳤다. 원래 63대의 신규 주문을 받았지만 52대가 취소됐다. 

특히 최근에는 보잉 최대 고객사 중 하나로 꼽혀온 유나이티드항공이 에어버스 A321NEO 기재를 50대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유나이티드항공의 이번 조치는 앞서 기 주문한 B737MAX 10을 대체할 기재를 물색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항공사의 유럽 항공 업체에 대한 주문 계약으로는 이례적인 규모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보잉은 737 맥스의 생산량을 추가 감축하거나 생산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보잉은 이미 지난 4월 초 737 맥스의 생산 규모를 20% 축소한 바 있다. 

항공업계 “지켜보는 것 밖에 답 없어… 사업계획 차질 불가피”

737 맥스의 운항 재개가 지연되면서 국내외 주요 항공사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보잉 737 맥스 시리즈는 연료 효율성이 뛰어나고 중장거리 비행이 가능해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국내 항공사들도 올 4월부터 2027년까지 총 114대를 들여올 계획이었다. 제주항공이 56대로 가장 많고 대한항공(30대), 이스타항공(18대), 티웨이항공(10대) 순이었다.

국적사 중 가장 먼저 737 맥스 8을 2대 들여온 이스타항공은 기체 결함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며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해당 기재는 현재 격납고에 보관 중이다. 업계에서는 항공기 1대 당 한달에 7~8억원 상당의 고정비가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맥스 8을 위해 고용한 인력의 인간비 등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따라 이스타항공은 올 들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으며, 매각설에 휩싸이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보잉과 미국 항공당국의 승인 작업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아직까지 재운항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맥스8 사태 장기화로 손실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 말했다. 

대한항공은 오는 2025년까지 보잉 737 맥스 30대(옵션 20대 제외)를 구매하는 계약을 맺고, 올 5월부터 인도에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도입을 미룬 상황이다. 일각서 맥스 시리즈의 운항 재개 가능성이 흘러나오면서 내년 하계 스케줄부터 인천~오키나와 노선에 투입할 계획도 세웠지만 최근 보잉 737-900을 투입하는 것으로 다시 변경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맥스가 들어온다고 하면 투입하려고 계획했던 부분인데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보잉 737-900으로 변경했다”며 “미국 FAA도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고 국토부도 문제가 확인될 때까지 기재를 들여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보잉 737 맥스8 기종을 들여오려던 제주항공은 일단은 기존의 도입계획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2022년 도입 예정인 만큼 그때까지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 될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제주항공은 보잉 737 맥스 확정구매 40대, 옵션구매 10대 등 총 50대를 2022년부터 인도받는 구매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석주 제주항공 대표도 10월 말 열린 항공의 날 행사에서 “도입 계획은 변함 없다”며 “다만 운항 재개 승인이 예상보다 더 늦어지겠다 싶으면 그때는 다시 고려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 또한 “도입 계획에 변동이 없으며, 세계적인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티웨이항공도 6월 1대를 시작으로 연내 총 4대의 보잉737 맥스 8을 도입하려 했지만 이에 차질이 생기면서 고심에 빠졌다. 올해 도입 예정 기재 6대 중 4대가 보잉737 맥스 8 기종이었던 만큼 티웨이항공의 외형 확장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티웨이항공은 에어버스 A330 등 대체 기종을 도입해 중장거리 노선 진출에 나서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맥스 시리즈가 좀 더 긴거리를 운항할 수 있는 만큼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맞다”며 “다만 시황이 안 좋다보니 띄웠다고 해서 사실상 수익이 났었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운항 여부는 안전 문제가 확실하게 해결돼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국토부의 명확한 방침이 나오기 전까진 자체적인 결정을 내릴 근거가 없어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문제는 ‘보이콧 재팬’ 여파 등으로 대체 항로 찾기에 고심하고 있는 LCC(저비용항공사) 등의 실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737 맥스는 보잉이 개발한 차세대 주력기로 기존에 운용 중이던 소형기에 비해 운항거리가 길어진 것은 물론 연료효율이 10% 이상 높다. 특히, 737 맥스 8은 189명이 탑승할 수 있고 최대 운항거리가 6500km로 현재 널리 운용중인 B737-800NG와 비교할 경우 1000km 이상 더 멀리 갈 수 있다. 즉,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등 중장거리 노선 취항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LCC들은 ‘보이콧 재팬’ 영향으로 알짜 수익원이던 일본 노선 수요를 대폭 잃었고, 대체제로 내세운 동남아·괌 등 지역에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어 신규 노선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아울러 국가별로 재운항 허용 시기도 상이할 것으로 보여 국제선 투입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예컨대 한국에서 맥스의 영공통과가 허용돼도 중국의 허가가 없으면 중국 영공을 통과할 수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보잉 737 맥스 8을 구매한 항공사, 구매 예정인 항공사가 한두 곳이 아닌 만큼 이번 사태가 길어지면 항공사들 내년 예정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본다며 “맥스 8이 없으면 대체 기재의 수요가 더 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스케줄 등을 조절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 또한 “인력·자금력 등의 여건 상 항공기 다변화를 꾀할 수 없는 LCC들의 경우 중거리 노선에 보잉 737 맥스8의 효율을 대체할 항공기가 없다”며 “보잉737 맥스 8 기종 도입을 준비하며 미리 채용한 인력 등으로 인한 배치·비용 문제에도 셈이 복잡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