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최근 유로지역 경제가 양호한 소비 흐름에도 불구하고 수출 부진으로 낮은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중 무역분쟁과 같은 글로벌 공통충격 뿐만 아니라 유로경제의 구조적‧지역적 특이요인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유로지역 수출은 영국, 터키 등 인접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신흥국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완만하게 개선될 전망이나,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에 따른 글로벌 가치사슬(GVC) 약화는 유로지역 수출의 개선 속도를 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 출처=한국은행

15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해외경제포커스 ‘최근 유로지역 수출 부진 배경 및 시사점’에 따르면 유로지역의 역외수출 증가율은 2017년 중 양호한 모습을 보이다가 2018년 이후 둔화됐으며, 수출물량 측면을 고려하면 수출 부진세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유로지역의 수출은 전세계 평균은 물론 북미, 아시아 등 주요 지역에 비해서도 부진한 모습이다.

주요 국가별로 보면 제조업 및 수출 비중이 높은 독일의 수출 둔화폭이 상대적으로 큰 반면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유지했다. 유로지역 역외수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국에 대한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대중국 수출도 둔화됐으며, 품목별로는 자동차, 철강·금속 등 주요 품목의 수출이 부진했다.

▲ 출처=한국은행

유로지역 수출 부진의 배경으로는 △미·중 무역분쟁 심화 △인접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높은 GVC 참여도 △자동차 수출여건 악화 등이 꼽힌다.

우선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됨에 따라 유로지역의 대중국 수출이 부진했으며 유로지역 성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유로지역의 대중 수출금액은 올해 2분기 이후 증가율이 둔화된 가운데 특히 수출물량은 전년동기대비 감소세를 시현했다.반면, 유로지역의 대미 수출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여 미·중 무역분쟁의 부정적 영향이 주로 대중국 수출 경로를 통해 파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브렉시트 관련 불확실성, 터키 금융불안에 따른 경기침체 등 인접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됨에 따라 이들 지역에 대한 유로지역의 수출도 부진했다. 지난해 1분기부터 올 2분기 중 유로지역 역외수출에 대한 대영국과 대터키 수출의 기여도는 평균 –0.5%포인트로 최근 유로지역 수출 부진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EU탈퇴 시한이 3차례 연기된 데다 조기총선(12.12일) 결과에 따라 진행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등 브렉시트 관련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영국의 수입수요가 둔화됐다. 미국의 경제제재 등으로 터기 리라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금융지표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등 경제불안으로 터키의 수입수요가 크게 약화됐다.

▲ 출처=한국은행

유로지역의 높은 GVC 참여도로 인해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 관련 불확실성 등 대외충격이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을 통해 유로지역 수출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기준 유로지역의 GVC 참여도(57.3%, 역외 기준)는 일본(47.7%), 중국(45.6%), 미국(45.3%) 등 주요국을 상회해 대외충격의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유로지역의 GVC 참여도를 전·후방 참여도로 나눠 보면 유로지역이 가치사슬 단계 중 후방 GVC 참여도가 높은 다운스트림(downstream)에 위치하고 있는 점도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유로지역의 최대 수출품목인 자동차 수출여건도 전세계 자동차 수요 감소, 브렉시트 관련 불확실성, EU 환경규제 및 미국 자동차시장 환경 변화 등으로 어려워졌다. 유로지역 자동차 수출의 총수출에 대한 기여도는 2018년 하반기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대상국별로 보면 유로지역의 주요 자동차 수출시장인 영국 및 중국에 대한 수출이 부진했으며 대미 수출도 최근 둔화됐다.

▲ 출처=한국은행

이굳건 한국은행 조사국 미국유럽경제팀 과장은 “최근 유로지역의 수출 부진은 미·중 무역분쟁, 인접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충격이 겹친 데다 일부 주력품목에 집중된 수출구조와 높은 GVC 참여도 등 구조적 요인으로 동 충격이 확대된 데 기인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향후 유로지역 수출은 노딜 브렉시트, 터키 금융불안 등 인접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신흥국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완만하게 개선될 것”이라며 “다만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에 따른 글로벌 가치사슬 약화는 GVC에 밀접하게 연관된 유로지역 수출의 개선 속도를 제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유로지역의 수출회복 여부는 직접적인 무역연관성 측면 뿐만 아니라 높은 GVC 참여도 및 주력수출품 집중도 등 수출구조의 유사성 측면에서도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아울러 유로지역처럼 GVC 참여도가 높고 가치사슬 단계에서 다운스트림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경우 주력 수출품목을 다양화하는 한편 기획, R&D 등 부가가치가 높은 업스트림(upstream) 부문을 강화함으로써 글로벌 분업체계 변화에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