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극적인 반환 포인트를 도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12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원칙적인 합의에 도달했으며, 이르면 13일 만나 무역전쟁을 끝내는 합의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0월 워싱턴 회담 당시 중국이 약속한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15일 예정됐던 미국의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는 유예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미중 갈등이 사실상 끝나가는 상황에서 중국 기술굴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포문을 연 미중 무역전쟁의 기저에는 중국의 강력한 기술굴기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기술패권 경쟁
중국은 스마트제조 2025를 통해 기술굴기의 꿈을 숨기지 않고 있다.

스마트제조 2025는 총 3단계로 이어진 중국 제조업 발전 계획이자 국가 혁신 계획이다. 1단계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양적인 제조강국에서 벗어나 질적인 스마트 제조 플랫폼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하며 2단계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글로벌 스마트 제조 시장에서 최소한 중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골자다. 3단계는 2036년부터 2045년까지 글로벌 무대를 석권하는 것이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중국이 글로벌 기술패권을 차지한다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구축된 미국의 기술패권이 흔들리며 이는 궁극적으로 미래 세계패권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압박하는 한편, 주요 타깃을 화웨이로 삼았다. 화웨이는 중국의 스마트제조 2025를 상징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5G 시대가 열린 가운데 스마트제조 2025의 핵심에 선 화웨이에 강력한 압박전략을 구사한 바 있다. 미국 하원은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들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한편 미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에는 동맹국을 대상으로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압박을 거듭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화웨이 백도어 논란이 번지는 한편, 중국 정부와의 과도한 밀착의혹까지 일었다.

지난해 12월 G20 회의에서 미중 두 정상이 무역전쟁에 있어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으나,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캐나다 당국이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하며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즉각 "우리는 30년동안 170여 개국과 30억명의 인구에게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했고, 그동안 사이버 보안 문제가 일어난 일은 없었다”면서  “사이버보안 및 개인 정보와 관련해 애플의 사례를 본받고 있다. 고객들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회사 문을 닫는게 낫다”고 주장하는 등 호소에 나섰으나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경전은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제한했으며, 화웨이는 구글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튕겨나가는 위기와 직면했다. 물론 이러한 제재는 미국 기업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종의 속도조절이 벌어졌으나,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규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두고 북한과 이란에 통신장비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독재정권에 대한 부역행위라는 비판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월 화웨이가 북한의 3G 통신망 구축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최근 미 국무부는 이를 재차 확인하며 화웨이에 대한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화웨이는 최초 억울함을 호소하는 작전으로 일관했으나, 미국의 압박이 강해지자 강공모드로 돌아선 상태다. 유럽을 중심으로 5G 네트워크 협력을 빠르게 가동하는 한편 지난 9월에는 미국에 '올리브 가지'를 내미는 여유도 보였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미국의 뉴욕타임스 및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은 물론 서방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우리의 5G 기술과 노하우를 전면 개방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화웨이 5G 플랫폼 전체의 사용권을 판매할 수 있다"면서 사실상 자사의 모든 것을 개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의 반격을 두고 '기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풀이한다. 실제로 독일 시장조사업체 아이플리틱스(IPlytics)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는 5G 표준특허 선언이 무려 3325건으로 압도적인 1위다. 삼성전자가 2846건, LG전자가 2463건을 기록해 나란히 2위와 3위에 올라 5G 종주국의 체면을 살렸다. 그러나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32%의 5G 표준특허 점유율을 기록해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 화웨이가 존재하며, 이는 화웨이의 자신감이 되고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화웨이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다. 미 상무부가 최근 자국 기술이 들어간 해외 생산 제품이 화웨이로 판매되는 것을 막기 위한 추가적인 규제에 나설 조짐을 보이는 한편 미국이 중소 무선통신업체에 주는 보조금을 화웨이 장비 구매에 사용할 수 없도록 결정하자 즉각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꿈틀대는 중국 기술굴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월 27일 중국이 34조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영 담배회사 및 개발은행이 참여한 본 반도체 펀드는 액수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2개 라인을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다. WSJ는 이를 두고 “중국의 반도체 군자금”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1기 펀드 당시 칭화유니그룹 산하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에 자금의 70%를 몰아주는 등 반도체 제조 지원에 집중했다.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 자급률을 끌어올리는 전반적인 컨디션을 회복하려고 했으나 아직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반도체 펀드는 실질적인 자급률 상승에 방점이 찍혔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미국 정부와 맞서 기술본능으로 성과를 내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반도체 기술 굴기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동력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큰 흐름인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기술견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 때 미국의 견제로 푸젠진화의 D램 생산을 포기했으나, 최근 기술굴기에 대한 야망을 제대로 보여주며 미국의 견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난 10월 미중 협상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스마트제조 2025에 대한 안건을 논의하지도 못했다. 이는 중국의 뜻대로 기술굴기가 펼쳐질 수 밖에 없음을 인정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끝난다면, 기술굴기를 꿈꾸는 중국의 판정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미중 무역전쟁이 휴전모드에 들어가고 있다. 출처=갈무리

다만 잔불은 여전하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에서 탄핵 위기와 직면했고, 내년 재선을 위해 자국 경제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한 상태다. 이를 위해 다소 불리한 조건임에도 중국과의 무역협상에 전향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기술굴기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며, 여기에는 중국 기업과 거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미국 기업의 어려움도 고려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자국 정치 상황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중국에 강경모드로 일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유화 제스쳐를 보이는 한편, 중국이 10월 약속된 미국산 농산품을 구매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기술굴기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은 두 나라의 '유리공 던지기 게임'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