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잦아들 조짐이다. 블룸버그 및 로이터는 12일(현지시간) 두 나라가 1단계 무역합의안에 근접했으며,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의안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양국 대표가 당장 13일 만나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도 나왔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가 만난다는 설명이다.

2018년 3월 23일 미국이 중국을 향해 연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 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독수리(미국)와 용(중국)의 전쟁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말도 나온다.

▲ 미중 무역전쟁 합의 가능성이 점쳐진다. 출처=갈무리

스멀스멀 피어오른 전장의 안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아메키라 퍼스트'를 주장하며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나아가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선언하며 해외에 진출한 자국 기업을 흔들기 시작했다. 미 중부 러스트 벨트의 블루컬러 백인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상황에서, 쇠락한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략이다. 당장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는 기업에는 세금 폭탄을 운운하며 압박했다. 그 연장선에서 아이폰 생산 시설의 미국 이전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다음 타깃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이다. 세금폭탄을 운운하며 미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손해를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부랴부랴 미국에 세트공장을 건설한 배경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 월풀의 문제제기에 따라 한국 제조사들의 세탁기를 대상으로 세이프 가드를 발동하기도 했다.

▲ 삼성전자의 미국공장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중국과의 신경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7년 2월 2일 중국 100개 기업이 뉴욕 한복판에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祝特朗普和美國人民新春快樂)'라는 광고판을 설치하는 한편,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으나 양측의 충돌은 점점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 14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무역대표부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및 기술 강제이전 요구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그 즈음 중국의 알리바바가 짝퉁 판매 악덕 시장으로 지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미국 GM 합작법인인 SAIC GM에 2억100만위안의 과징금을 매기는 등 양측의 잽이 오갔다.

본격적인 전쟁은 2018년 3월부터 벌어졌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50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을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4월 세부사항을 밝혔기 때문이다. 무려 1333개의 중국산 수입품이 고율관세의 대상이 됐다. 그러자 중국은 즉각 500억달러의 미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 부과 방침을 선언했다.

이후로는 치열한 난타전이다. 미국은 2018년 7월 예정했던 고율 관세폭탄을 던졌고 중국은 즉각 미국산 제품 545개를 대상으로 맞불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WTO에 미국을 제소했으며, 미국은 재차 7월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9월 시행됐으며, 중국도 즉시 동일한 액수의 미국산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던 2018년 12월 1일, 두 나라는 G20을 기점으로 극적인 화해무드에 돌입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G20 회의가 열렸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명을 발표해 “미국과 중국은 90일 동안 지식재산권 보호와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입, 절도 등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관세 부과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당시 G20 지도자들은 미국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는 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보호무역과 지구 온난화 등 문제를 두고 미국이 민감해하는 이슈는 공동성명에 담지 않는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CFO를 체포하며 두 슈퍼파워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돌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화웨이와 ZTE 장비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올해 2월 미국 FBI가 화웨이 연구소를 급습하며 두 나라의 험악한 기류는 더욱 거세졌다.

다만 휴전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 나라 무역 대표단은 1월 7일부터 9월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첫 무역협상을 벌였으며 4월부터는 다시 극적인 화해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5월 협상이 최정 결렬되며 상황은 다시 악화일로를 걸었으며, 미국과 중국은 다시 관세폭탄을 운운하며 난타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희토류 전략 무기화까지 검토하며 강대강 대치가 이어졌다.

무역전쟁, 경제에서 체제전쟁으로
미중 두 나라의 무역전쟁은 무역을 넘어 경제일반, 나아가 체제 문제로까지 번졌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지난 3월 헌법을 개정하며 시진핑 사상을 명기하는 한편, 사실상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 추인했다. 중국이 약 40년간 유지한 집단지도체제를 끝내고 시진핑 국가주석 1인 절대권력 체제로 접어드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1992년부터 중국 권력 이동의 불문율이던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후보를 미리 점하는 것)의 원칙이 깨졌다. 이는 시진핑 중심의 절대권력 체제를 암시한다. 다만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게이트에 휘말리며 지금까지 탄핵 위기에 몰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두 나라의 무역전쟁은 체제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미 국방부가 6월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미국이 수행하는 임무에 기여하는 국가(country)라고 명시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미 국방부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생기자 이를 철회했으나, 두 나라의 신경전은 이미 무역의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천안문 사태 언급, 홍콩시위 정국을 거치며 동북아시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고, 중국이 미국 국채 매입 가능성과 함께 희토류 전략 무기화를 시사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극적인 화해..미래는?
미국과 중국은 무역에서 시작해 경제일반, 기술패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격전을 거듭했으나 10월 워싱턴 실무회의를 통해 스몰딜에 근접했다. APEC 정상회담이 취소되며 두 수퍼파워의 협상에 난기류가 낀 상황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두 나라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중이다.

미국과 중국이 합의에 근접하며 세계 경제계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그러나 내년 재선을 위해 움직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한편, 중국은 시진핑 주석 중심의 내부 응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이 어떤 카드를 보이느냐에 따라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