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2000년대 초에서 2010년까지 이어지는 벤처·스타트업 붐으로 수많은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고, 2010년대 초 국내 이커머스 업계 경쟁구도는 오픈마켓(G마켓·옥션·11번가·인터파크)과 소셜커머스(쿠팡·티몬·위메프)로 나뉘었다. 당시 업계 주도권은 온라인 상품 판매를 중개하는 오픈마켓들이 잡고 있었고 이 상황이 쉽게 바뀔 것이라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쿠팡의 비약적 성장, 유통 대기업들의 시장 진입으로 오픈마켓들의 입지는 예전과 확실하게 달라졌다. 

▲ 출처= 이베이코리아

‘화려한 시절’ 이베이코리아 

인터파크의 자회사였던 오픈마켓 ‘G마켓’은 매출·거래액 등 거의 모든 부문의 실적에서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를 차지했던 기업이다. 아마존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강의 이커머스 기업이었던 미국의 이베이(eBay)는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봤고 2001년 온라인 쇼핑몰 옥션을 2009년에는 인터파크로부터 G마켓을 인수한다. 2010년 이후 소셜커머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거의 G마켓과 옥션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두 기업을 모두 보유하게 된 이베이의 한국 법인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 인수 당시 국내 업계에서 “이정도라면 사실상 독과점 기업이 아니냐”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SK의 오픈마켓 11번가(2008년)의 등장과 국내에 ‘소셜커머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인 티켓몬스터(현재의 티몬, 2010년 5월)와 그를 이어 등장한 쿠팡(2010년 7월), 위메프(2010년 10월)가 성장하면서 이베이코리아의 입지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비즈니스 구조가 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전자상거래의 중간자 역할을 하고 수수료를 취하는 ‘안정적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G마켓과 옥션에 비해 경쟁사들은 전자상거래 중개와 더불어 직매입(기업이 제품을 선 구매해 고객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혼합한 서비스 강화 및 할인 전략으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도들로 국내 시장에서 G마켓과 옥션을 뛰어넘는 인지도까지 성장한 기업이 바로 쿠팡이다. 여기에, 국내 온라인 검색 포털 점유율 60%대인 절대입지의 네이버가 스토어팜, 네이버쇼핑 등으로 오픈마켓형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사실상 네이버에 ‘입점해’ 있는 G마켓과 옥션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일련의 입지는 이베이코리아의 연간 실적으로도 드러난다. 2015년 매출 7994억원, 영업이익 801억원을 기록한 이베이코리아의 이후 매출은 2016년 8634억원, 2017년 9519억원, 2018년 9812억원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의 영업이익은 670억원, 623억원, 486억원으로 줄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큰 손해를 보지 않는 이베이코리아 오픈마켓의 비즈니스 구조와 그간 업계에서 쌓아온 입지를 감안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된 영업이익의 감소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이에 따라 이베이코리아는 자사의 물류 경쟁력을 확충하고, 쇼핑 서비스 편의성 개선에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첨단 기술들에 투자하는 등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베이코리아 동탄물류센터와 유료회원 관리 체계이자 서비스인 ‘스마일 시리즈’다. 

‘사건의 중심’ 11번가

11번가는 통신과 반도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SK의 ‘유일한’ 커머스 사업부문이다. 사업의 시작은 이베이코리아보다는 다소 늦었지만,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뤄내면서 이베이코리아를 견제할 수 있는 기업으로 올라섰다. 11번가는 G마켓과 업계 1,2위 자리를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자신들만의 입지를 점점 굳혀가고 있었다. 

그러나 2016년 이마트와 쿠팡 대결구도로 시작된 온라인 최저가 경쟁에 오픈마켓들도 참여하면서 11번가는 한 차례 위기를 맞이한다. 2015년 말에서 2017년까지 계속 이어진 이커머스 업계의 ‘출혈 경쟁’은 국내 거의 모든 이커머스 업체들에 큰 규모의 적자를 안겼다. 특히 11번가는 할인 쿠폰을 앞세운 마케팅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했는데,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들은 고스란히 손실이 됐고 2017년 약 2000억원(추정치) 규모의 적자를 내면서 2018년 초 SK는 당시 이커머스 사업 확장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던 롯데, 신세계와 11번가 매각을 논의하기도 한다. 3자가 얽힌 논의에서 각 주체가 바라는 세부 조건이 맞지 않았고, SK의 11번가 매각은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이에 지난해 9월 SK는 11번가를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키고 SK텔레콤의 자회사로 편입시킨다. 

▲ 11번가 안심 택배 '11픽업' 서비스. 출처= 11번가

별도 법인 전환과 동시에 SK는 이상호 SK텔레콤 서비스플랫폼사업부장을 11번가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한다. 이상호 대표 취임 후 11번가는 확장보다는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효율화 경영’으로 운영의 가닥을 잡는다. 이에 11번가는 지난 3분기 매출 1405억원, 영업이익 3억원을 기록하며 3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11번가는 자사의 이커머스 역량을 더 강화해 올 한해를 영업이익 흑자의 해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9일 11번가는 약 3년 동안 지속해온 음식 배달앱 ‘요기요’와의 제휴를 오는 12월 31일부로 종료한다. 이는 격화된 배달앱 시장의 경쟁으로 양사 제휴의 시너지로 발생하는 수익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해당 서비스에 대한 정리로 해석됐다. 대신 11번가는 편의점 택배와 무인택배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택배서비스 ‘11픽업’의 서비스를 개선함으로 물류 부문 경쟁력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