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침체로 인해 오프라인 상가들의 매출이 줄어들고 상가 공실이 늘어나 상가분양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상가 분양단계에서부터 건축주가 상가 내 각 점포 별로 업종을 지정하거나 분양안내서 등에서 상가 내 각 점포의 업종을 지정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가 내 업종제한’은 분양받는 사람(수분양자) 혹은 수분양자로부터 각 점포를 임차한 자영업자(이하 수분양자 등)의 독점적 영업권을 보장하고 상가 내 동종 업종 간의 출혈 경쟁을 막을 수 있는 효과도 있어 건축업자는 물론 수분양자 등도 선호하는데요. 문제는 건축업자가 분양할 당시 ‘상가 내 업종제한’약정을 하고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될 경우 건축업자와 이 같은 약정을 한 수분양자 등은 누구를 상대로 어떠한 내용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전주지방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와 소개하고자 합니다.

# A씨는 2012년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5층 규모 빌딩에 있는 갑(甲)점포를 빌딩을 신축한 건축회사로부터 4억 원에 분양받았습니다. 분양 당시 해당 건축회사는 갑(甲)점포의 업종을 약국으로 지정하면서 ‘건축회사는 최초 임대분양 시 A씨 점포 이외에는 약국으로 분양, 임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분양계약서에 기재하였습니다. 즉, 건축회사와 A씨 사이에는 갑(甲)점포를 A씨를 위한 독점 약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내용의 ‘상가 내 업종 제한’ 약정이 체결된 것입니다. 실제로 A씨는 이후 B씨에게 위 점포를 약국 용도로 임대했습니다. 한편 C씨는 2013년 건축회사로부터 당시 휴대폰대리점으로 운영되고 있던 같은 건물 을(乙)점포를 역시 4억원에 매수하였고 곧장 이를 약국을 운영하려는 D씨에게 임대하였습니다. 건축회사와 A씨 간에 체결된 갑(甲)점포에 대한 분양계약서와 달리 건축회사와 C씨 간에 체결된 을(乙)점포에 대한 분양계약서에는 ‘상가 내 업종 제한’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언급된 바가 없었습니다. 이에 A씨와 B씨는 C씨와 D씨가 ‘상가 내 업종 제한’ 약정을 위반해 B씨에게 매출 감소라는 영업상 손실을 입혔으므로 이에 대하여 5천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사실 ‘상가 내 업종 제한’약정 위반과 관련한 법리는 꽤 오래 전부터 법원에 의해 확립되어 온 것으로, 이와 관련한 대원칙은 “상가분양 시 분양계약서 상 업종이 지정되어 특정 점포에 대하여 ‘상가 내 업종 제한’약정이 걸려 있는 상태라면 다른 점포의 수분양자 등 역시 그 약정에 기속”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상가 내 업종 제한’약정에 기초하여 1998년부터 약국 운영을 하고 있는 점포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점포의 수분양자 등이 같은 상가 내 다른 점포에서 또 다른 약국을 운영한 사건에서 ‘이 사건 분양계약서상 약국으로 지정된 점포 이외에는 약국을 개업할 수 없음을 명시적으로 제한한 사실이 인정되고, 그 때문에 해당 점포가 다른 점포들에 비해 고가로 분양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다른 점포의 수분양자 등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명시적·묵시적으로 분양계약에서 약정한 업종제한 등의 의무를 수인하기로 동의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다른 점포의 수분양자 등이 약국을 운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바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8나2025135 판결 참조).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주지방법원은 이와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건축회사는 A씨가 분양받은 점포를 제외한 나머지 점포들의 매매계약서나 임대차계약서에는 업종제한에 관한 내용을 명시적으로 적지 않았다는 점, D씨는 점포 임차 후 4000만원의 비용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 등을 했는데, 약국 영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약국을 개설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C씨와 D씨는 업종제한 약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명시적·묵시적으로 업종제한 의무를 수인하기로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기존 법원의 법리가 바뀐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앞서 살펴본 서울고등법원 판례의 경우와 달리 갑(甲)점포가 독점적으로 약국을 운영한 것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아 독점적 약국 운영에 대한 어떠한 묵시적 동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점포 분양(매수)금액 역시 갑(甲)점포 및 을(乙)점포 모두 4억 원으로 동일하여 유독 갑(甲)점포에만 ‘상가 내 업종제한’약정이라는 일종의 프리미엄이 존재한다고 미루어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즉, 이 사건 ‘상가 내 업종제한’약정은 여느 채권 계약과 마찬가지로 채권 계약의 당사자인 건축회사와 A씨 외에는 그 실체적 내용을 알 수 없고, 제3자인 C씨나 D씨가 그와 같은 약정이 존재함을 알 수 있을만한 단서도 존재하지 않아 C씨나 D씨가 건축회사와 A씨 간의 ‘상가 내 업종제한’약정을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침해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요컨대 결과론적으로는 C씨와 D씨가 ‘상가 내 업종제한’ 약정을 침해하였다 하더라도 C씨와 D씨에게 고의나 과실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아 법적 책임까지 귀속시키는 무리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