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우유 소비를 권장하는 홍보 영상. 출처=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흰 우유 제품들의 가격이 해외 시장에서 판매되는 현지 제품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싼 우유 가격은 소비 추세를 약화 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우유 가격이 높아지는 이유로 ‘원유 가격 연동제’가 지목되고 있다. 다만 제도의 순기능도 나타나고 있어 존폐 여부에 대해 입장 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12일 글로벌 물가 측정 업체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한국의 1리터당 우유가격은 2.06달러로 집계됐다.

대만·홍콩(2.86달러), 싱가포르(2.21달러), 레바논(2.14달러)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일부 국내 소비자들은 외국 시장에 비해 높은 우유 가격을 적극 문제 삼진 않고 있다. 출시 제품 가격의 하한선이 일반 품질의 제품군에 적용됨에 따라, 고객이 생각하는 평균 우유값이 상향 평준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유업체들도 가성비 대신 고품질을 앞세운 고가 제품을 추가 출시하며 가격대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성비는 주요한 제품 선택 기준으로 꼽힌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가 작년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유를 선택하는 최우선 기준(중복응답)으로 ‘우유 제조사 브랜드’(62.1%)에 이어 ‘가격’(49.3%)이 지목됐다. ‘유통기한’(36.7%), ‘국산우유 인증마크’(K-MILK, 15.9%)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업계에서는 고객들이 낮은 우유값을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로 롯데마트가 PB 흰 우유 제품 ‘롯데 온리 프라이스 우유’를 출시한 지 1년 6개월 만에 2500만개를 판매한 점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나라 우유값이 외국에 비해 높은 이유로 2013년 8월 도입된 ‘원유 가격 연동제’의 영향이 거론된다. 원유는 젖소로부터 짜내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젖을 의미한다. 원유 가격 연동제는 원유를 생산하는데 들어간 비용 ‘생산비’를 의무적으로 원유값에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 2009~2018년 원유 생산비 추이. 해당 기간 증감폭을 보이지만 주로 증가세가 나타났다. 출처= 낙농진흥회 공식 홈페이지 캡처

제도가 지적받는 부분은 우유 제품에 대한 수요·공급의 변동성이 가격에 즉각 반영되지 않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999년 낙농진흥법에 따라 원유수급관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법인 ‘낙농진흥회’를 설립했다. 낙농진흥회는 원유생산계약을 맺은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매입한 뒤 유업체에 재판매한다. 생산량이 불규칙하고 공급 과정에 불확실성이 높은 원유를 우선적으로 사들임으로써 낙농가에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려는 취지다. 진흥회와 계약을 맺지 않은 낙농가나 유업체들도 진흥회에서 설정한 원유 기본 가격을 준용하고 있다.

낙농진흥회는 또 다른 소득 보장 방안으로, 원유생산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낙농가와 계약 기간 동안 원유 공급가와 공급 규모를 규정한다. 낙농가는 당초 예측보다 더 많은 양의 원유를 생산하더라도 계약 당시 설정한 가격대로 진흥회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 공급이 늘수록 가격이 하락하는 시장 원리에 위배된 상황이다. 원유 가격 연동제가 낙농가 소득의 변동성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한편, 최종 소비자가를 최소한 고정시키거나 늘리는 반작용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연동제, 주체 간 상생·공급 안정 위해 필요” vs “시장 논리에 위배, 보완해야”

제도의 존폐 여부를 두고 시장 내 상충된 입장들끼리 충돌하고 있다. 시세를 실시간 적용할 수 있도록 원유 가격 책정 과정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업체의 안정적인 판매 사업을 위해 낙농가의 운영 안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제도를 없애거나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원유 가격 연동제가 공급자에게 공급 단가를 인하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주대 외식상품학과 겸임교수를 지낸 최낙삼 좋은상품연구소 소장은 “생산자는 높은 가격 때문에 제품이 안 팔리는 것으로 판단하면 가격을 낮추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원유 가격 연동제는 생산자의 노력을 그대로 보상해줌으로써 낙농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 입장에선 낙농가와 유업체 두 주체의 상생을 위해 제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원유 가격 연동제를 통해, 과거 낙농가와 유업체가 원유 공급 단가를 두고 갈등을 빚음으로써 발생했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는 관측이다.

윤형윤 낙농진흥회 부장은 “원유 가격 연동제가 제품 가격 체계에 문제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입장 차이에서 나타나는 내용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며 “연동제는 현재 적정한 수준의 원유 기본 가격을 책정하고 있으며 원유를 안정적으로 시장에 공급하는데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농업계의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우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가격 인하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유제품 특성에 따라 원유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등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학계 전문가와 함께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지헌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사무관은 “낙농업은 전세계 시장 동향을 볼 때 어느 정도 인위적인 개입이 있어야 시장 주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췄다”며 “소비자를 비롯해 모든 시장 주체가 합의할 방안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