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스마트밴드 중심의 시장에 머물렀을 당시에는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으나, 고가의 스마트워치가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는 한편 히어러블 전성시대까지 열리며 웨어러블 시장의 봄날이 다시 찾아오는 분위기다.

11일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웨어러블 기기 총 출하량은 8450만대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4.6%나 증가했다. 매출의 대부분은 스마트워치에서 나오지만 기기 출하 점유율로 보면 히어러블이 48.1%를 차지해 사실상 절반에 육박했다.

▲ 히어러블 시장이 각광을 받고있다. 출처=갈무리

스마트워치 전성시대

웨어러블 시장은 한 때 ‘사양사업’ 취급까지 받았다. 저가의 스마트밴드 중심으로 시장이 태동하며 의미있는 ‘양적성장’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스마트워치가 주류로 올라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워치는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어야 작동하는 한편 ‘왜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TNS의 설문조사결과 미국의 인터넷 사용자 55%는 웨어러블 기기가 불필요하고 비싸다고 응답했으며, 24%는 이미 너무 많은 IT기기가 있어 웨어러블이 필요없다고 대답했다.

2016년에는 핏빗(Fitbit)이 스마트워치 전문기업 페블(Pebble)을 인수하며 시장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업계의 충격은 상당했다. 페블은 에릭 미기코프스키가 2012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서 '페블워치'를 발매하고, 1000만 달러 모금에 성공하며 해성처럼 등장한 간판 웨어러블 기업이다. 미기코브스키는 처음 페블을 만들 당시 ‘작은 불편함’에 집중해 스마트워치를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2008년 당시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자전거를 타던 그가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메시지를 보거나 이메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실현에 옮긴 것이 바로 페블이다. 그런 기업이 결국 빛을 보지 못하자 일각에서는 “웨어러블 시장은 끝났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애플워치다. 애플은 꾸준히 애플워치를 출시하며 iOS 생태계 기반의 가능성을 실험했고, 2017년 1분기 애플워치 350만대를 팔아 웨어러블 시장 점유율을 15.9%까지 끌어올려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현재 애플워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시계’에 등극했다.

가트너의 책임 연구원인 란짓 아트왈 (Ranjit Atwal)은 "스마트워치 부문으로 유입되는 많은 사용자들이 손목밴드를 스마트워치로 교체하고 있다"면서 “2020년 사용자들은 웨어러블 기기에 총 520억달러를 사용하며 2019년보다 27%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애플워치5가 보인다. 사진=박재성 기자

핵심은 히어러블?

스마트워치 중심의 웨어러블 시장팽창이 시작된 가운데,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히어러블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웨어러블 시장에서 히어러블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IDC의 결과만 봐도 가격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만, 히어러블 디바이스의 출하량은 이미 스마트워치를 크게 앞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히어러블 시장 팽창을 두고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전략적 판단’에 집중하고 있다.

히어러블의 핵심인 무선 이어폰의 경우, 초반 시장에 등장했을 때 커다란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음질의 문제가 계속 거론되는 한편 스마트폰 3.5mm 이어폰 단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구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이 2016년 아이폰7을 출시하며 이어폰 단자를 제거했고, 이후 무선 이어폰 판매량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특히 애플의 에어팟은 초반 디자인적 측면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지금은 무선 이어폰 시장의 대세로 여겨지는 중이다. 삼성전자도 내년 갤럭시S11부터 이어폰 단자를 제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제조사들의 이러한 결단이 무선 이어폰은 물론 히어러블 시장 전체의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히어러블 가격이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것도 시장팽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라몬 라마스 IDC 웨어러블 연구 책임자는 "제조사들이 이어폰 단자를 제거하면서 무선 이어폰 시장이 급성장했다"며 "가격이 20% 이상 크게 떨어진 것도 시장 확대의 또다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히어러블 시장의 절대강자는 애플이다. 2016년 9월 아이폰7과 함께 등장했으며 오픈형으로 제작됐다. 가격은 21만9000원, 무게는 4g이다. 무선 이어폰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애플은 스마트워치 최강자 애플워치까지 품은 상태에서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 전체를 호령하고 있다. IDC에 따르면 애플의 3분기 웨어러블 출하량은 전년 동기대비 195.5%나 성장했다.

▲ 에어팟이 보인다. 출처=애플

삼성전자는 3월 갤럭시 버즈로 무선 이어폰 시장 공략의 시작을 알렸다. 15만9500원이며 커널형으로 제작됐다. 색상도 블루와 화이트, 옐로로 꾸며져 에어팟과 비교하면 선택지가 다양한 편이다. 기능은 이미 인정받았다. 컨슈머리포트 평가 결과 음질 평가에선 유일하게 '엑설런트(Excellent)' 등급을 받아 1위에 올랐다. 시장 점유율은 8% 수준이다.

갤럭시 버즈는 하만의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AKG의 음향 기술로 원음에 가까운 풍성한 사운드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LG전자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0년 처음 등장한 넷밴드형 블루투스 이어폰 톤플러스의 후속작인 톤플러스 프리를 지난 1일 출시했다. 톤플러스의 경우 넥밴드형으로 블루투스와 호환되지만 기기와 귀를 연결하는 '라인'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톤플러스 프리는 LG전자의 첫 무선 이어폰인 셈이다. 일종의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명품 오디오 제조사 메리디안 오디오(Meridian Audio)의 신호처리 기술과 고도화된 튜닝 기술(EQ, Equalizer)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아마존도 최근 재미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에코 버즈가 주인공이다. 보스(Bose)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지원하며 역시 알렉사와 호환이 된다. 알렉사 앱에서 음성 명령으로 마이크를 끌 수 있는 기능도 지원된다. 가격은 129.99달러다.

가트너는 “2020년 기준 8600만 대의 스마트워치, 7000만 대의 히어러블 디바이스가 출하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애플(에어팟), 삼성(갤럭시 버즈), 샤오미(에어닷), 보스(사운드 스포츠)와 더불어 아마존까지 히어러블 웨어러블 시장에 진입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뉴히어라(Nuhear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스타키(Starkey) 등 기타 경쟁 업체들은 향상된 음질을 제공하고 의사의 처방 없이도 청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디바이스를 선보이는 등 수요를 이끄는 매력적인 제품을 내놓고 있다는 설명이다. IDC의 3분기 디바이스 출하량만 봐도 히어러블 제품의 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 아마존도 히어러블에 관심이 있다. 출처=갈무리

또 다른 큰 그림

웨어러블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히어러블은 인공지능 대중화와 관련이 깊다. 지금은 단순하게 음악을 듣거나 전화를 받는 무선 이어폰이 핵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독립된 디바이스로 작동하며 인공지능이 깃든 플랫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는 시장 초기 스마트폰의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외연확장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에는 기술적으로 분리가 가능해지며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 플랫폼으로의 진화가 빨라졌다. 그 연장선에서 히어러블의 핵심인 무선 이어폰도 스마트폰과의 종속성에서 일정정도 벗어날 경우 더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헬스케어 시장 공략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고가의 스마트워치가 걷고있는 헬스케어 데이터 수집에 히어러블 플랫폼이 동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글의 핏비트 인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웨어러블은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할 수 있는 핵심적인 툴이다. 여기에 무선 인터넷 등 히어러블이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장 핵심은 인공지능과의 결합이다. 업계에서는 각 제조사의 인공지능 전략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며, 조만간 무선 이어폰 디바이스에도 비슷한 충돌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빅스비 생태계가 갤럭시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를 비롯해 갤럭시 버즈에 스며들고, 애플의 시리 생태계가 아이폰은 물론 에어팟2를 묶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략은 추후 스마트홈 전략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