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업계가 내년 IMO2020시행을 앞 두고 잇따라 유류할증료 도입에 나서고 있다. 출처=현대상선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내년부터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에 대응해 해운업계가 앞 다퉈 유류할증료 도입에 나서고 있다. 그간 출혈 경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유가 상승분을 모두 떠안아 온 해운업계가 저유황유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조치를 취한 것. 하지만 환경 규제로 인한 추가 비용이 더욱 늘어날 수도 있어 수익성 제고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지난 1일부터 선적하는 물량에 대해 구간별 일부 환경규제할증료(ECC)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주 서안 노선의 경우 1TEU당 89달러를, 유럽 노선의 경우 1TEU당 112달러를 부과하는 식이다. 

현대상선은 단기(스폿) 계약과 더불어 연간 계약을 맺는 장기고객에게도 유류할증료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화주별로 물량 등을 반영해 금액은 상이하게 측정해 부과하고 있다.  

SM상선도 이달 1일부터 미주 서안 노선에 1TEU당 146달러의 IMO 벙커할증료를 부과하고 있다. 벙커할증료는 추가 유류할증료(BAF) 성격으로 보면 된다. 팬오션 또한 컨테이너선에  유류할증료를 적용 중이다. 

유류할증료는 항공사나 해운사들이 유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운임에 부과하는 요금을 말한다. 

그간 해운업계는 매출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연료비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특히 유류비 상승분을 운임 인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이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업황 불황과 공급과잉 등으로 운임 협상의 주도권이 화주에게 넘어가 있는 탓이다. 그러나 ‘IMO 2020’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해운업계는 부담을 소폭 덜게 됐다. 

국제해사기구(IMO)는 내년부터 전 세계 선박 연료유 황산화물 함유량을 현행 3.5%에서 0.5% 이하로 제한하는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시행한다. 기존의 황산화물 함유량을 7배나 줄여야 하는 탓에 해운역사상 가장 강력한 규제로 불린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는 ▲저유황유(황 함유율이 0.5% 이하) 사용 ▲스크러버(황산화물 배출 저감장치) 설치 ▲액화천연가스(LNG) 사용 선박으로 교체 등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한국선주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해운업계의 약 70%가 IMO2020의 대응으로 초기 비용 투자가 없는 저유황유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내 전체 운항 선박 1400여척 중 약 7%인 90여척만 올해 스크러버를 설치할 계획이어서 1300여척은 초기에 저유황유 사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하지만 선박 교체와 스크러버 설치 등에는 비용과 시간이 부족해 현재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저유황유로의 교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선박 1척당 스크러버를 설치하는데 50~100억원의 비용이 들며 평균 설치기간도 30여일에 달한다. 해당 기간 동안 선박을 운항할 수 없어 추가 손실도 발생한다. 또한 스크러버를 도입한 선사의 경우에도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개방형 스크러버의 이용을 금지하고 있어 일부 해역에서는 저유황유 사용이 필수다. 

 

문제는 저유황유의 가격이 선박연료로 주로 쓰이는 벙커C유보다 약 1.5배가량 비싸다는 점이다. 이는 선사들의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월부터 올 11월까지 저유황유와 고유황유의 가격 격차 흐름은 톤당 200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9월 한때 톤당 580달러까지 치솟았던 고유황유는 최근 400달러까지 떨어진 반면 저유황유 가격은 톤당 550~600달러를 유지 중이다.

해운항만 컨설팅그룹인 드류리(Drewry)에 따르면 고유황유 가격은 현재 톤당 420달러 수준에서 2020년 28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저유황유 가격은 현재 톤당 640달러 수준에서 2020년 650달러의 견고한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저유황유와 고유황유의 가격 차이는 현재 220달러에서 2020년에는 300달러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 마켓 또한 내년 저유황유와 고유황유 가격 차이가 최대 400달러까지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선박이 하루에 50톤의 저유황유를 쓴다고 가정할 경우 하루 1만달러에 달하는 추가 운임을 선사가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는 유류할증료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해운선사들 또한 유류할증료 도입에 나섰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는 12월 1일부터 친환경연료비(EFF)를 도입했다. 저유황유 사용에 따라 새로운 유류할증료 체계를 도입해 연료비 부담을 화주에게서 일부 보전 받는 방식이다. 독일 선사 하팍로이드와 프랑스 선사 CMA-CGM 등도 연말께 추가 요금을 부과할 것으로 알려진다. 

머스크는 고유황유와 저유황유의 가격차를 산출해 할증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며, CMA-CGM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3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엔 저유황유할증료를 덧붙인다는 계획이다. 요율은 한 달마다 변경되며, 3개월 이상 장기계약엔 내년 1월부터 새로운 BAF를 적용한다.

다만 이번 운임 인상이 수익성 제고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게 해운업계의 반응이다. 비싼 저유황유 사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환경 규제로 인한 추가 비용 부담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예상 이상의 비용이 들 수도 있다. 

여기에 공급과잉에 따른 업황 악화로 비용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공급 과잉인 상황에서 연료비 부담을 100% 반영하는 경우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다. 

유류할증료 도입과 관련해 화주들과의 갈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유류할증료 도입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지만, 할증료 인상안을 두고 가격 책정의 투명성에 우려를 드러내는 화주들이 있어 논의가 더욱 필요해 보인다. 

실제 드류리가 국제물류주선업체 등의 컨테이너 화주 106곳을 대상으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선사들의 새로운 유류할증료 도입이 “공평하지 않으며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에 대해 화주들의 반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유황유 사용 등 환경규제에 따른 할증료 도입 필요성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며 “기존에 사용해 왔던 벙커C유 보다 1.5배 비싼 저유황유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비용인 만큼 수익성을 논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