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저출산‧고령화 기조에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보험사들의 출혈 경쟁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경쟁적으로 보장을 늘리다보니 과도한 사업비 지출로 보험영업적자 폭이 치솟고 있다. “혁신 상품으로 전 연령층을 공략해야한다”. 포화된 보험 시장 속 보험사들의 생존을 위한 외침이다. 좁은 곳에서 피 튀기며 싸우지 말고 시장을 확대해 공생할 수 있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헬스케어, 빅데이터, 모바일 플랫폼 등을 활용한 신개념 상품개발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 보장성 어디까지 강화되나

보험사들의 보장성보험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대비는 물론 투자이익을 보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보니 더 이상 저축성보험 판매에 대한 메리트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유사암 보험 경쟁에 불이 붙었다. 주요 보험사들이 200만원 수준이었던 유사암 진단비를 올해 상반기 5000만원 수준으로 대폭 올린 것이다. 유사암은 일반암 대비 발병률이 높고 치료비가 적게 들어 통상 진단비는 일반암의 10~20% 수준인 200만원 내외였다. 유사암은 갑상선암, 기타피부암, 경계성종양, 제자리암 등이 해당한다.

치매보험 경쟁도 치열했다. 올 초부터 치매보험 보장을 경증치매까지 확대한 상품들이 줄지어 출시됐다. 경증치매에 해당하는 치매임상평가척도(CDR)1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기억장애를 의미한다. 국내 전체 치매환자 중 대다수가 경증치매를 앓고 있다는 점에서 경증치매 담보는 손해율 리스크가 상품으로 꼽힌다. 특히, 경증치매 환자는 정상생활은 가능하다 보니 실제 치매 환자가 아님에도 경증치매 환자인척 연기해 보험금을 타내는 모럴해저드 우려도 크다.

늘어나는 펫팸족을 잡기위한 펫보험 경쟁도 뜨겁다. 손해율이 높다고 알려진 슬개구 탈구는 물론 반려동물 등록증이 없어도 가입이 가능한 상품들이 지난해 말부터 잇달아 출시했다. 펫보험은 손해율이 높은 상품으로 과거에도 상품 중단에 나선 보험사들이 여럿 등장한 바 있다. 손해율을 감수하더라도 반려견 면책질병까지 보장을 확대하며 고객 몰이에 나선 것이다. 이 외에도 어린이보험‧유병자보험 등의 보장성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보험영업손실 급증

문제는 사업비를 많이 쓰다 보니 보험영업손실 폭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손보사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6% 감소했다. 보험영업손실은 3조7000억원으로 손실규모가 전년 동기(1조8000억원) 대비 1조9000억원(106.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장기보험은 손실규모가 1조1000억원(48.1%) 증가했다. 이는 △판매경쟁에 따른 사업비 지출 △보험금지급 증가로 인한 손해율 상승 등이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생보사 역시 올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3조573억원으로 전년 동기 4조384억원 보다 24.3% 감소했으며, 보험영업부문에서는 18조457억원 손실이 발생했다.

한 대형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출혈경쟁으로 보험영업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며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은 이제 지양할 때”라고 말했다.

▲ 출처=경영공시

◇ 신 시장 개척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숫자는 거의 변함이 없는데, 먹을 수 있는 시장의 파이는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며 “새로운 개념의 보험들이 나와 신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생활수준이 바뀌고 있는 만큼 상품도 그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보험사들은 2030세대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필요한 보장만 선택 가입 할 수 있는 DIY(Do It Yourself) 보험을 출시하는가 하면, 간단한 보장에 저렴한 보험료를 내세운 ‘미니보험’ 상품도 줄지어 선보이고 있다. 최근엔 정보통신(ICT)‧플랫폼업체들과 보험사들의 컬래버도 이어지고 있다. 보험개시‧종료를 스위치처럼 끄고 켜는 일명 ‘스위치 보험’ 상품들이 대표적 예다.

헬스케어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걸을수록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건강증진형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고객 건강관리와 더불어 우량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 전략이라는평가다. 금융당국 역시 최근 헬스케어 시장 확대를 위해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 출처=경영공시

◇ 법제도에 막혀 혁신 상품 개발 더뎌

그러나 선진 보험상품을 개발하기엔 아직까지도 장애물이 너무 많다는 것이 보험업계 중론이다. 우선 의료법에 막혀 헬스케어 관련 보험상품 개발이 더디다는 지적이다. 의료법 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의료계는 의료기록 등을 활용한 보험사의 헬스케어 서비스에 반발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융당국이 보험사들의 건강관리 기기 제공 서비스를 어느 정도 허용해줬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그 정도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며 “의료법 개정 등을 통해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일명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도 조속히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보험개발에 적극 나설 수 있어 미래먹거리 발굴에 주효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특히 보험업계는 신정법 개정안에 주목하고 있다. 신정법 개정안에 따라 가명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보험사는 개별적인 고객 동의 없이도 축적돼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상품‧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가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을 위해 수집하는 피보험자 등의 건강 관련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 및 신정법상 질병정보에 해당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민감정보는 소정의 고지사항을 밝히고 별도 동의를 받으면 되나, 신용정보법상 질병정보는 보험사가 보험업 외의 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 보험사 입장에선 무궁무진한 상품 개발이 가능해 진다. 아무리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빅데이터 등만 잘 활용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며 “일단 고객정보 활용에 동의를 받지 않는 것만 해도 보험사 입장에서는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