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팔수록 적자인데, 그렇다고 안 팔 수도 없어 난감할 따름”. 보험사들이 사상 최악의 길로 내딛고 있는 자동차‧실손의료보험의 치솟는 손해율(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에 신음하고 있다.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은 일명 ‘국민보험’으로 불린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라 운전자들이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 실손보험은 일반 건강보험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험료에 실제 의료비를 지급하다 보니 가입자가 3800만 명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험사들은 적자를 보면서도 금융당국‧보험소비자 눈치에 쉽사리 보험을 개정하거나 상품판매를 중단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정부 역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당장의 보험료 인상으로만은 한계가 있다”며 “보험사기를 근절하고 인슈어테크 등을 활용해 손해율을 관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출처=각 사

◇ 손해율 역대 ‘최고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역대 최악이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상위 손보사 4곳의 지난달 잠정 손해율은 각각 100.8%, 100.5%, 100.8%, 99.6%로 집계됐다. 사업비 등을 고려해 업계에서 보는 적정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76~68% 수준이다. 지난 10월 자동차보험 누계 손해율은 90.6%로 전년 동기 대비 6.1%포인트 증가했다.

중소형사들의 손해율은 더욱 심각하다. 같은 기간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더케이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의 손해율은 각각 144%, 123.4%, 112.5%, 102.8%로 일제히 100%를 훌쩍 상회했다. 치솟는 자동차보험 손해율에는 정비수가 인상, 육체노동 가동 연한 정년 연장, 한방 추나요법 건보 적용, 연이은 태풍 등이 영향을 끼쳤다.

국민 3분의 2가 가입한 실손보험도 골칫덩이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130%를 상회하며, 이로 인한 올해 연간 적자규모는 1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액은 8조7300억원으로 전년 보다 15.7% 증가했으며, 올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9% 올랐다.

최근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 요인으로는 ‘문재인 케어’의 풍선효과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케어에 따라 의료이용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과잉 진료 등으로 인한 비급여 진료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 케어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 금융당국 눈치에 보험료 인상 ‘쩔쩔’

이처럼 ‘국민보험’ 손해율 늪에 빠진 손보사들이 쉽사리 보험료 인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간접적인 제동이 크게 작용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등의 보험료 인상은 보험사들의 자유라고 하나 사실상 금융당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손해를 보전할 만큼의 보험료를 보험사들 마음대로 올린다면 금융당국과 보험소비자들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생활물가 상승, 보험금 누수 방지 등을 고려해 자동차 보험료 인상 폭을 조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쳐왔다. 실손보험의 경우 정부가 문케어로 인한 반사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간접적 보험료 인하 압박을 주기도 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손해율을 보전할 만큼의 보험료 인상이 쉽지 않다보니 고객 민원을 감수하고서라도 언더라이팅 강화 등 원론적인 방법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생존을 위해 보험료 인상을 추진 중이다. KB손해보험을 시작으로 현대해상,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롯데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이 보험료 인상을 위해 보험개발원에 보험료율 검증을 요청했다. 인상폭은 4~5%수준으로 점쳐지나 이 역시 손해율을 보전하기엔 한참 모자란 수준이라는 평가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역시 대규모 손실이 예상됨에 따라 최대 25%가량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당장의 손해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소폭일지라도 보험료를 올려놔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근본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보험료 인상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일회성 요인으 보다는 보험사기, 과잉진료 등에 따른 근본적인 손해율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도 손해율을 낮추기 위한 주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이는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라며 “이보다 보험금 누수를 막는 일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4134억원이다. 이는 반기기준 역대 최고치다. 같은 기간 적발인원은 4만309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4% 증가했다. 적발된 보험 사기의 대부분은 자동차보험 등 손보 종목이다. 주요 보험사기 적발 유형은  △허위‧과다 입원 △허위·과다 청구 △자동차 고의 접촉사고 유발 등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 금융당국에서 매년 보험사기 적발 금액을 밝히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당국에서 직접 적발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기 적발을 위한 강력한 제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출처=보험개발원

◇ 인슈테크 활용한다

이에 보험사기 적발을 위한 보험업계의 움직임도 가속화 하고 있다. 손보협회는 지난 7월 기존 보험사기조사팀을 장기‧자동차보험사기 조사팀으로 확대해 전담 조직을 강화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보험사기 적발 시스템도 개발되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AI 기반 자동차견적시스템 ‘AOS 알파’ 서비스를 가동 중이며, ABL생명은 최근 보험사기 예측시스템에 머신러닝 기법의 AI 기능을 도입하기도 했다.

실손보험의 역선택 관리를 위해 보험료 차등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인별 보험금 실적(의료이용량)과 연계해 보험료가 차별적으로 책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손해보험연구실 실장은 지난 9월 ‘실손보험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도덕적 해이 관리를 위해 포괄적 보장구조를 급여·비급여 상품으로 분리하고, 비급여의 보장영역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특히, 오·남용 사례가 심각한 진료영역에 대해서는 기존 실손상품의 보장구조 변경 등 정책적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도 보험금 누수를 잡을 수 있는 한 방법으로 거론된다. 청구간소화 도입시 단기적으론 보험금 청구건수가 많아져 손해율에 악영향을 끼칠 순 있으나,  전산화된 진료기록으로 과잉 진료 및 보험사기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개인정보 유출 등의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를 반대하고 있는 의료계의 문턱을 넘어서는 게 관건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을 토로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 등의 이유를 대고 있지만, 실상 진료수가 노출을 우려하고 있어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며 “의료계가 워낙 막강해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 진 모르겠으나, 청구간소화가 현실화되면 보험산업의 발전에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