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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기록이 있어야 역사가 되고 명예가 쌓인다
   

태극마크는 ‘가문의 영광’이 될 명예이자 한없이 무거운 책임감이다.

배구판은 예외였다. 예전 일년 동안 프로배구단을 운영해본 경험으로 본다면 모든 구단에서는 국가대표 소집이라는 말만 들어도 인상을 찌푸렸다. 소집 공문이 하달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팀들 눈치 보기에 바빴다. 프런트 입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선수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팀에서 보면 한창 리그 중일 때 핵심 전력이 빠져나가 리그 성적을 망칠 우려가 컸고, 선수 입장에서는 국내 리그도 힘겨운 판에 원거리로 이동하여 빡빡하게 소화해야만 하는 체력적인 부담도 컸다.

남자 배구는 언제부턴가 국제 무대에서 하위권으로 쳐져 버린 상황이라, 늘 성적도 부진했고 국민들의 관심도 약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 먹는 신세였다. 거기에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경기를 소화해 내야 하기에 부상이라는 암초에 걸려 침몰할 수도 있었다. 수 억 원씩의 연봉도 불사하며 오랜 동안 다듬고 가꾸어 온 선수가 국제 무대에서 무리하게 시합을 뛰다가 골절이라도 당하면 선수 개인도 그렇고 구단에서도 한 해 농사가 엉망이 된다. 그래서 심할 경우 핵심 선수는 보호차원에서 부상을 핑계로 국가 대표 차출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체계적인 기록관리 시스템이 없기 때문인 탓이 크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국가대표 기록관리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곳은 축구 쪽이 아닌가 싶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경기를 A매치라 하는데, 이런 경기를 위해 차출한 선수들에 대한 모든 기록을 관리한다고 한다.

 

기록이 쌓여야 역사가 되고 전설이 탄생하게 돼

기록이라 해서 단순히 숫자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A매치 경기에 얼마나 출전했고, 골을 비롯해서 각각의 분야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가 모두 반영된다. 가령 A매치 경기를 100번을 소화하면 ‘센추리 클럽’이라고 칭하고 이런 선수는 체육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국가 대표 중에서도 간판 스타가 된다. 선수들이 은퇴를 하더라도 그 기록은 남아서 예우를 받는다. 우리 같은 문외한들조차도 귀에 익은 차범근, 박지성, 홍명보 같은 선수들은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을 더한다. 그래서 그들은 대한민국 축구계의 전설이 된다. 그 뒤를 이어 손흥민 선수가 그런 전설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기록이 모이면 역사가 되고, 기록이 쌓이면 명예로 이어진다.

배구는 축구계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사실상 우리나라 축구에서는 메시 같은 선수는 없지만 우리나라가 가진 방대한 기록만으로도 훌륭하게 인정받을 만한 선수는 충분히 나온다. 이에 비해 배구에는 이미 메시급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김연경 선수가 바로 그런 선수인데, 중학생 때만해도 키가 작아서 세터나 수비 위주의 훈련을 주로 받았는데, 고등학교 시절에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더 많이 컸다. 덕분에 수비력을 갖춘 수준급의 공격력으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거의 모든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늘 뛰고 있지만, 해설되는 내용을 들어보면 ‘혹사 당하고 있다’는 얘기뿐, 통산 올림픽 출전 기록이 어땠는지, 발리볼네이션스리그, 아신안게임 등등 몇 경기에 출전을 했고, 얼마나 점수를 올렸으며, 경기를 소화한 시간이 얼마나 오랜지에 대한 내용은 들을 수가 없다.

그녀는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인데도 불구하고 따라 다니는 닉네임은 ‘식빵’과 같은 수준이 머물러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터키리그를 제패하다시피 세계를 돌며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 글로벌 스타임에도 아는 사람만 알아주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바로 기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배구협회의 행정력의 부족으로 기록관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이것은 세계적인 스타급의 선수도 식빵이나 운운하는 동네 처녀 수준으로 전락시켰고, 결과적으로 한국 배구계 전체의 흥행을 끌어올릴 힘으로 승화되지 못했고,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실력 향상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기록의 금자탑은 조선왕조실록을 꼽을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방대한 역사의 기록을 우리는 보유하고 있다. 당대의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기록했다. 마치 현장중계를 하듯이 왕과 신하들이 주고 받은 말은 물론, 동작까지 묘사되어 있다. 사관은 좌사(左史)와 우사(右史)로 나뉘는데, 좌사는 움직임을 우사는 말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기록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했던 점은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왕이 정사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승정원 같은 관리를 시켜 해당 부분만 등서해서 볼 수 있었다. 때문에 사관이 기록하는 업을 신성하게 생각했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사관들이 고위 관료나 왕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필할 수 있는 권리를 철저히 보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종대왕의 일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정을 베풀어 추앙 받았던 세종대왕도 실록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궁금하여 몇 번씩이나 사서를 보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상이었던 황희가 그때마다 단념할 것을 권했고, 끝내는 사서를 보지 못했고, 포기했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사실 스포츠와 국정관련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기록은 중요하다. 단순히 회계 장부를 잘 정리하는 것이 기록의 다가 아니다. 당시 사업을 진행할 때는 어떤 사회 경제적 배경이 있었는지, 업계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사 내의 세세한 기록들이 다음 그리고 그 다음의 결정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촉’에 따른 결정이고, 검증할 수 없는 성공이다.

회사 내부의 기록 역시 말의 기록과 움직임의 기록이 있을 수 있겠다.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이 대부분 큰 회사의 경우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하루 이틀 사업할 것이 아니라면 기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회의를 운영할 때는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행사를 기록해 두는 것은, 사업적인 면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몸을 담았던 대부분의 회사들에서 없던 커뮤니케이션팀을 만들고 정착시켜왔다. 때문에 초기부터 비용이 좀 들더라도 고성능의 카메라 구입을 제안하면 난색부터 표명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반대를 무릅써서라도 제대로 된 기록 장비를 갖추었다. 처음에는 ‘이런 회사에서 무슨 그런 비싼 카메라야?”하는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입장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행사에서 사진을 찍고 이렇게 쌓인 사진들을 활용해서 홈페이지나 보도용 사진이나 하다못해 사내 행사에서 활용을 하게 되니 내용이 풍성해지게 되었다.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의 기억만큼 믿을 수 없는 것도 없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모든 상황을 자기 위주로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그의 저서 ‘자서전 비슷한 것’에서 ‘인간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허식 없이는 절대로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죽어서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1951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1952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그 유명한 영화, 라쇼몽에서 허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냈다. 꼭 ‘라쇼몽 효과’라 부르지 않더라도, 기억이라는 것은 단편적일 수 밖에 없고 전달 중간에 반드시 단절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전에 모 시중은행에서 사사작업을 하면서 온 세상천지에 옛날 자료를 모은다는 광고를 한 적이 있었다. 은퇴한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 전 찍었던 사진부터 유니폼, 사원증, 하다 못해 혹시라도 보관중인 월급봉투에 이르기까지 자료가 될만한 모든 것들을 애타게 찾는다는 광고였다. 신문지상에도 실렸고, 시내 버스나 택시에도 붙어있었다.

“사사가 그냥 대충 써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군요?”

후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저렇게 광고한다면 비용이 엄청날 텐데, 그런 비용을 들여서 고작 예전 사진 몇 장에, 낡아빠진 사원증이나 헤진 월급봉투를 왜 찾냐는 것이었다.

“보관하고 있거나 기록이 없으니까, 역사의 실물을 찾기 위해 비용을 들일 수 밖에 없지.” 비용보다 역사의 실체를 찾는다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내 의견에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봤다.

현재를 기록하는 것이 하찮고 사사로워 보일 수 있기도 하다. 굳이 뭐 하러 그런 것을 기록하고 찍어두려 하냐고 핀잔도 많이 받아봤다. 하지만 기록이 있어야 역사가 되고 명예가 쌓인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오늘의 기록 없이 내일의 영광은 없다는 것이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12.10  16: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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