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 교외의 기계 공장 파이오니어 서비스(Pioneer Service Inc.)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파란 작업복 대신 폴로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근무한다.    출처= Pioneer Service Inc.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 공장 현장에 대졸 근로자가 넘치고 있다.

미 연방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미국 공장에 고급 기술이 도입되면서 대학을 졸업한 근로자들이 과거 세대에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공장 현장 근로자들의 일을 대체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데이터에 따르면 향후 3년 이내에 미국의 공장에 대졸 근로자가 고졸학력 이하의 근로자보다 많아질 것이다. 자동화의 영향으로 공장 생산성은 높아지고 여성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이며 미숙련(lower-skilled) 근로자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시카고 대학교의 에릭 허스트 경제학 교수는 “과거에는 손 재주가 좋은 근로자들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기계를 잘 다룰 수 있는 근로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지적했다.

대졸자 근로자들이 많아지면서 미국 제조업체들은 금융위기 이후 대졸 학력의 근로자를 100만 명 이상 고용했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동안 고졸 학력의 근로자 고용은 크게 줄었다.

2012년과 2018년 사이에, 산업 엔지니어 같이 매우 복잡한 문제해결능력이 요구되는 제조업 일자리의 고용은 10% 늘어났지만 단순 노동 일자리는 3% 줄었다.

시카고 교외의 기계 공장 파이오니어 서비스(Pioneer Service Inc.)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파란 작업복 대신 폴로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근무한다. 이들은 말끔한 공장 현장에서 복잡한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로봇에게 명령 프로그램을 만든다. 물론 대학을 졸업한 고급 기술자들이다.

이런 모습은, 공장 근로자들이 기름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1960년대에 제작된 낡은 기계들로 냉난방 시스템 부품을 만들었던 1990년대 공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다. 파이오니어의 직원 수는 40명으로 2012년과 변함이 없지만 단순한 금속 부품을 손으로 가공했던 당시부터 일했던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테슬라 자동차와 다른 고급 자동차의 부품을 만드는 파이오니어는 지난해 회사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성공은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은 다른 제조업체들의 성공 사례와 다르지 않다.

변화하는 제조업 환경

제조업의 기술 발전으로 미국 공장은 그 어느 때보다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최근의 일자리 증가추세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은 피크였던 1979년의 2천만 명의 3분의 1이면 충분하다.

제조업계는 올해 5만 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이는 지난해 24만 4000개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저임금 국가의 노동력과 경쟁하기 위한 자동화는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문화된 직업 요건은 한때 중산층으로 가는 길로 여겨졌던 공장 노동자의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새롭고 더 발전된 제조업 일자리는 더 많은 돈을 벌지만 일찍 학교를 그만둔 근로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해 제조업 취업자의 40% 이상이 대학 졸업자로 조사됐는데, 이는 1991년의 22%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앞으로 갈수록 자동화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공장 생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일자리도 대졸자로 채워지면서 고졸 이하의 저학력자들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해고된 제조업 근로자들 역시 적절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수요를 연구해 온 시카고 대학교의 허스트 교수는 "제조업의 발전이 저기술 노동자들에게는 좋을 게 없다”고 지적했다.

로봇 카우보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어드밴티지 컨베이어(Advantage Conveyor Inc.)는 지난 10년 동안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기 위해 금속과 플라스틱을 절단하고 구부리는 기계에 2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이 새 기계로 직원들이 손으로 부품을 만들던 시대에 비해 기술자 일인당 더 많은 부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일부 근로자들은 재배치되었고, 다른 근로자들은 해고되었다.

대기업의 경우는 이런 흐름이 더 빠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클레이턴(Clayton)에 있는 캐터필러(Caterpillar Inc.) 공장에서는 기술 투자로, 4년 전에 2교대로 운영했던 소형 바퀴 로더 공정을 단일조로 바꿨다.

밀워키(Milwaukee)에 있는 할리데이비슨의 엔진 공장에서는 이전에는 직원들이 힘들게 반복했던오토바이 부품 운반 작업을 지금은 로봇 팔이 대신한다. 로봇 팔은 작업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2018년에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2003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할리데이비슨은 2018년 노조가입 공장 근로자가 2200명으로 2014년보다 400명 줄었다. 캐터필러도 2018년 노조원 수가 1만 명으로 2007년 1만 5000명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밝혔다.

캐터필러의 올해 미국 생산직 취업 공고를 보면 5명 중 4명 이상은 대학 학위를 요구하거나 선호한다. 생산직의 대다수에 학위나 전문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다.

▲ 파이오니어 공장의 같은 작업을 하는 이전 장비와 현대 장비 비교.   출처= Pioneer Service Inc.

가장 위험한 말

최근 어느 날 아침, 파이오니어 직원들은 밤새 홀로 작동한 자동화 장비가 만든 부품들을 검사했다. 그들은 부품이 고객이 원하는 사양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디지털 측정을 했다. 머리 위에 있는 화면에는 모든 기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기계 하나에 노란 불빛이 비치는 것이 이 회사의 기술자인 스테이시 시제브스키의 눈에 들어왔다. 절단 공구를 교체라는 신호였다. 그녀가 기계 덮개를 열자 기름과 금속 찌꺼기가 쌓여 있다. 그녀는 작은 알렌 렌치를 사용해 마모된 부품을 꺼내 교체하기로 했다. 그녀는 기계의 메모리 키패드에 코드를 입력하고 자신의 아이패드에 ‘수리 완료’라고 표시했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파이오니어의 로고가 새겨진 그의 검은 폴로 셔츠에는 티끌 하나 묻지 않았다.

시제브스키는 이전에 알트리아 그룹(Altria Group Inc.)의 씹는 담배 공장에서 5년 동안 장비 청소 일을 했다. 2017년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회사는 그녀가 파이오니어에서 사용하는 기계 조작법을 배우는 4개월간의 훈련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했다.

파이오니어 공장 중앙에 있는 한 방에서 래치스 티페리는 기계 프로그래밍에 사용하기 위해 고객 주문을 3D 청사진으로 전환한다. 그는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기계공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중 인턴으로 파이오니어에서 일을 시작했다. 티페리는 현대식 미국 공장에서 공장의 미래를 보았다.

파이오니어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시간당 14달러부터 시작해 경험이 쌓이면 시간당 27달러까지 올라간다. 현대식 기계에 투자하기 전인 2010년 무렵에는 최저임금에 가까운 시간당 8.25달러였다. 파이오니어 공장 벽에는 "가장 위험한 말은 ‘예전해도 항상 그렇게 해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글이 붙어있다. 현재 파이오니어의 직원 중 절반은 여성이다.

파이오니어의 대표이자 공동 소유주인 애니사 무타나는, 기술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노동자들을 찾기 위해 해마다 대학 진로 박람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회를 줄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변화할 의사가 없고, 익숙하고 편안함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다면 내가 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