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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꿈꿨던 부침의 경영자,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샐러리맨 신화에서 해외 도피, 투병과 사망까지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특별한 유언은 없었다.

김 전 회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3월 대우그룹 창업 51주년 기념행사가 마지막이다. 고인은 약 1년간의 투병생활을 했으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는 설명이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재계에는 애도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논평을 통해 "우리기업의 글로벌 경영의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 성공의 주역이신 김우중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김우중 회장님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셨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김우중 회장은 세계 경영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해외수출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대우그룹을 국내 정상의 기업으로 이끌었다"며 "자동차·조선·중공업 산업 분야에서 고도화의 내실을 다지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회장은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강조한 대로 세계경영을 꿈꿨던 경제계의 거물이자 대표적인 1.5세대 기업인이면서 '샐러리맨 신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그룹이 해체된 후 분식회계 혐의를 받아 약 1년 반동안 복역하는 등 부침이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역사의 공과가 크게 엇갈리는 이유다.

▲ 김우중 전 회장이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출처=뉴시스

세계경영, 세계웅비
김우중 전 회장은 183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부친은 대구사범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은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60년 한성실업에 입사한 김 전 회장은 1966년까지 일하다 1967년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 도재환씨와 의기투합해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大宇)라는 사명은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들었다. 이어 1970년 대우실업 사장 자리에 오르며 본격적인 경영인의 길에 들어선다.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변신시키고 이를 대우실업과 합쳐 (주)대우를 출범시킨다. 1976년에는 한국기계 사장과 대우중공업 사장을 역임하며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74년 대우전자를 인수했으며, 1979년 대우개발 사장 자리에 올랐다. 자동차와 중공업 및 조선, 전자와 통신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몸집을 키우는 것에 성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1969년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건설했고 1975년 종합상사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다. 1976년 에콰도르, 1977년 수단, 1978년 리비아에도 연속적으로 진출했다. 세계경영의 시작이다.

1981년부터 대우그룹 회장이 된 고 김우중 회장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동유럽이 몰락하자 세계경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지에 공격적으로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거나 인수하며 1998년 말 기준 무려 396개의 현지 법인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해외 고용인력만 15만명을 넘겼고 김우중 전 회장은 연간 280일을 해외에서 보내는 '세계인'이 됐다.

1998년 당시 자산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에 이르렀다. 당시 대우그룹은 현대에 이어 국내 재계 2위였다.

▲ 고인이 동유럽 시장을 시찰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출처=뉴시스

외환위기, 그리고 김대중 정부와의 마찰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세계경제포럼(WEF)의 자문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고인의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1998년 대우차 제너럴모터스 합작추진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후 그룹 전체가 급격하게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 회사채 발행제한은 결정타를 날렸다.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구조조정을 발표했으나 유동성 악화에 따른 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채 규모가 89조원에 달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원의 세금까지 투입됐으나 회생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대우그룹은 1998년 8월 채권단 워크아웃 절차를 밟으며 해체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해 2006년 복역한 후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 1990년대 세계경영을 꿈꾸던 당시의 고인이 지구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일각에서는 대우그룹 해체와 '세계인' 김우중 전 회장의 수난을 두고 당시 김대중 정부와의 마찰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고인은 2014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대우그룹의 해체는 경제관료들의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이라며 대우그룹 기획 해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대안신당 소속 박지원 의원은 김 전 회장과 당시 정부와의 마찰에 선을 그었다. 박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당시 최종현 전경련 회장님 등 5대 그룹 회장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기로 했으나 김 회장님께서는 당시 동구권 자동차 수출시장 개척차 출장 중이셨지만 당장 귀국해서 간담회에 참석하시겠다 하셨다"면서 "(귀국한) 회장님이 준비하신 자료를 갖고 외환위기 극복은 수출만이라며 혼신을 바쳐 당선자께 브리핑하시던 열정적 모습에서 '아하 저러한 실력과 열정이 대우를 창업 성장시켰구나'하고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김 전 대통령은) 대우그룹 소생방안을 검토해 직보하라 하셨으나 정부부처 장관들은 김 회장님과 대립했고 보고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 김 회장님은 사실이라 주장, 결국 대우자동차 등 6개사만 회생방침을 결정했다"며 "이 과정에서 불행한 일이 생겨 대우는 완전히 김 회장님의 손을 떠나게 되었고 김 회장님은 외유를 떠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 퇴임 후 회장님께서 서울구치소에서, 저도 대북송금특검으로 구치소에서 조우했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도 옆방에 입원해 병원생활도 함께 했다"면서 "완전히 법적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도 자주 뵙고 많은 담소도 나눴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회장님은 김대중 대통령님과도 각별하신 관계이셨으며 야당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다"면서 "하늘나라에서 김 전 대통령 내외를 만나셔서 드리고 싶었던 말씀도 많이 나누시라. 거듭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은 출소 후 제2의 고향인 베트남으로 넘어가 후진양성에 힘쓰며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에 주력해왔다. 최근까지도 GYBM에 머물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지난해 12월 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김우중 전 회장이 국내 경제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한다. 특히 '세계인'의 꿈을 키웠던 고인의 행보는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동남아시아 진출에 매진했던 김 전 회장의 행보는 현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도 궤를 함께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만 대우그룹이 해체되며 재계 2위 총수에서 차가운 감옥까지 경험한 그의 부침도, 현재의 재계 후배들에게도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인'의 빛과 그림자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19.12.10  12: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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