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말이라 술자리 많으시죠? 술 얘기 좀 해볼까 합니다.

독일 맥주축제는 지역마다 명칭이 다른데, 뮌헨의‘옥토버페스트’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요. 제가 있었던 슈투트가르트에도 '칸슈타트 축제 (Cannstatter Wasen)'라는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맥주축제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마시는 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세 잔의 맥주는 한끼의 식사와 같다.”라는 독일속담처럼 독일사람들의 맥주사랑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모 CF에서도 열심히 외쳐대던‘라인하이츠게봇 (Reinheitsgebot, 맥주순수령)’은 1516년 독일 바이에른 왕국 빌헬름 4세가 맥주 품질유지를 위해 공표한 법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맥아, 물, 호프, 효모’ 4가지 이외에는 어떤 화학첨가물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오늘날 정직하고 품질 좋은 독일맥주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맥주를 매우 좋아하는지라 제가 직접 수제맥주를 만들어보기도 하였는데, 여기서는 공정은 생략하겠습니다만, 보통 제조 직후 10일 정도 사전 발효과정을 거치고 1개월 정도의 후(後)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후에 마십니다.  

독일에는“맥주는 양조장 굴뚝 그늘 아래서 마셔야 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맥주를 생산하고 나서 바로 마셔야 그만큼 신선도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맥주가 생산된 ‘현시점’을 기준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맥주의 신선한 맛과 거품의 향이 떨어지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숙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요.

‘현재지향적 시간문화’를 지닌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 시간의 지나친 흐름이나 오래된 과거의 의미는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서 마실 수 없는 신선도가 떨어진 맥주처럼 때로는 쓸모없거나 낡음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좀 더 가치를 두고 의미 부여를 합니다.  

이번엔 포도주 한번 보실까요? 독일의 이웃 나라인 프랑스는 보로도, 보로고뉴, 론, 루아르, 상파뉴 등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하고 다채로운 종류의 포도주를 전국 산지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포도주는 포도를 수확해 으깨고 압착하여 포도즙을 내어 발효작업을 진행하고,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병에 저장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보통 포도주를 만드는데 몇 주의 발효기간을 거치고, 포도 품종에 따라 몇 개월에서 몇 년의 숙성기간을 거치게 됩니다. 적포도주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 맛과 값어치가 올라가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와인 맛을 숙성시켜주는‘시간’이 제조과정의‘필수요소’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인들에게 시간의 흐름은 단순히 오래됨이나 낡음의 의미보다는 과거가 현재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현재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며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주는 필수적 요소로 인식됩니다.  

한 국가나 지역의 사람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중에서 어느 시간에 더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지에 따라 “과거지향적, 현재지향적, 미래지향적 시간문화”로 나뉩니다.

맥주의 나라 독일과 맥주 벨트 (Beer belt) 지역에 속하는 영-미와 게르만계 국가들은‘현재지향적 시간문화’에 속하며, 현재의 시간에 좀 더 의미를 두고‘바로 지금, 바로 여기’즉, 현재에 대해 좀 더 가치를 부여합니다. 

반면에 와인의 나라 프랑스와 와인 벨트 (Wine belt) 지역에 속하는 라틴국가들은‘과거지향적 시간문화’에 속합니다. 전통, 역사를 중시하고, 조상, 연장자에 존경을 표하며 과거의 영광을 재연하는데 동기부여를 하죠. 이 문화에서는 모든 것들이 전통이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해석되고 역사는 현재 행동을 위한 중요한 배경과 맥락을 제공하는 의미있는 역할을 합니다. 

자, 이쯤되면 여러분들이 지금 지인들과 좋은 자리에서 손에 들고 계신 것이 단순한 맥주, 와인이 아니란 것 눈치채셨겠죠? “네, 여러분들은 지금‘술’이 아니라‘시간’을 마시고 계신 겁니다!”  

“자, 우리의 품위있는 비즈니스를 위해 건배! (美: Cheers!, 獨: zum Wohl!, 佛: San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