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한국 연구진이 방광암으로 발전하는 ‘암 줄기세포’ 병리기전을 명확히 규명해 재발과 전이가 많은 방광암 치료 실마리를 풀었다. 서울아산병원 연구진이 직장암 재발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새 항암치료법을 마련했다.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이 사망위험을 감소시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방광암 발전 ‘암 줄기세포’ 규명…표적치료제 개발 기대

8일 의약업계에 따르면 울산의대 의생명과학교실 신동명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조영미 교수 연구진은 줄기세포의 특정 단백질인 CDK1과 TFCP2L1의 이상이 방광암으로 발전하는 ‘방광암 줄기세포성’을 일으키는 기전을 최초로 규명해냈다.

연구진은 또 방광암 줄기세포성은 결국 방광암의 악성도, 림프절과 다른 장기로의 전이, 환자 사망률에 영향을 미쳐 방광암의 불량한 예후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입증했다.

암 줄기세포는 종양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줄기세포들을 뜻한다. 이러한 암 줄기세포의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을 ‘줄기세포성’이라고 한다.

그동안 방광암 줄기세포가 방광암의 높은 재발률과 항암치료 내성의 주요 원인으로 제기돼 왔지만 줄기세포성이 형성되는 정확한 기전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줄기세포성 기전이 밝혀짐으로써 표적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높여 난치성 방광암 치료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 배아줄기세포에서의 줄기세포성 기전이 방광암 조직에서도 거울을 보듯이 똑같이 나타난다. 방광암 줄기세포성은 방광암 악성도, 전이, 환자의 사망률에 영향을 미친다. 출처=서울아산병원

방광암은 남성에서 4번째로 흔히 발생하는 악성종양으로 서구화된 식습관과 환경오염, 고령화로 인해 국내에서도 발생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방광암은 치료 후에도 재발이 많아서 평생 동안 주기적으로 암 재발 검사를 시행하고 치료를 받아야하므로 모든 암 중 치료비용이 가장 높은 암이다.

방광암의 75%는 표재성 방광암이다. 이는 재발이 잦고 진행성 방광암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전이가 진행된 방광암은 예후가 좋지 않아 생존율이 5%에 불과하다. 

신동명․조영미 교수 연구진은 먼저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의 줄기세포성 조절에 TFCP2L1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며,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단백질인 CDK1가 TFCP2L1단백질을 직접 인산화해 줄기세포성과 세포주기 관련 유전자 발현을 강화하고 세포분화 유전자들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를 기반에 두고 방광암 환자 400명의 방광암 조직에서 면역조직화학염색을 통해 CDK1과 TFCP2L1의 과다 발현 현상과 TFCP2L1의 인산화를 확인한 결과 방광암의 악성도, 근육 침윤성, 림프절 전이, 다른 장기로의 전이에 영향을 미쳤으며 환자 사망률 증가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또 미국국립보건원(NIH)에 등록된 방광암 데이터베이스에서도 CDK1과 TFCP2L1 단백질이 방광암 환자의 악성도와 전이, 사망률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동일한 결과를 확인해 연구의 신뢰성을 더욱 높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배아줄기세포의 이상이 암과 같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신동명 울산의대 의생명과학교실 교수는 “방광암의 높은 재발률과 항암 치료 후 내성을 설명하는 가장 주목되는 이론으로 줄기세포성의 중요성이 제시되고 있는 만큼 이번 연구를 통해 방광암 줄기세포성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방광암 치료법들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영미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그동안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던 방광암의 병리기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더 나아가 방광암 치료법의 반응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개발에도 기여해 방광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연구성과는 유럽분자생물학회(EMBO)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엠보 분자의학(Embo Molecular Medicine, Impact Factor : 10.293)’ 최신호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첨단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과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태원, 홍용상, 김선영 교수. 출처=서울아산병원

직장암 재발 위험 낮출 새 항암치료법 마련

직장암은 방사선이나 항암제로 암 크기를 줄인 다음 수술을 한다. 재발을 막기 위한 보조항암치료도 진행하지만 치료 후에도 암이 국소적으로 재발하는 경우가 잦아 불안해하는 환자들이 많다.

한국 연구진이 방사선치료와 수술 후 암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에 따라 보조항암치료 강도를 조절해 적용한 결과 재발 위험은 줄어들고 생존율은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태원·홍용상·김선영 교수 연구진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6개 의료기관이 참여한 임상연구에서 직장암 2~3기 환자 321명을 대상으로 수술 후 병기에 따라 보조항암치료 강도를 달리 적용한 뒤 6년 후 경과를 분석했다.

연구결과 두 가지 항암제로 강도 높은 치료를 받은 그룹은 한 가지 항암제만 투여 받은 그룹에 비해 직장암 재발 위험도는 37% 감소했으며, 6년간 무재발 생존율은 1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방사선치료와 수술 후에도 종양이 상당부분 남아있을 만큼 수술 후 병기가 2~3기로 높은 환자들이었다. 연구진은 그에 맞게 보조항암치료를 고강도로 적용함으로써 재발 위험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 항암제 한 가지(플루오로우라실)만 투여한 그룹은 6년간 전체 생존율이 76.4%였고 동일기간 무재발 생존율은 56.8%로 나타났다.

약제 두 가지(플루오로우라실+옥살리플라틴)를 처방받은 그룹은 6년 전체 생존율 78.1%, 무재발 생존율 68.2%를 보이면서, 고위험군 직장암 환자에게는 고강도 보조항암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재발 위험도도 한 가지 약제 그룹을 1로 기준 잡았을 때, 두 가지 약제 그룹에서 0.63이라는 수치를 보여 재발위험이 37% 감소한 점이 확인됐다.

방사선 치료와 수술을 받았어도 종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혹시 남아있을 미세 암세포를 없애는 부가적인 치료가 이번 연구에서 활용된 보조항암치료다.

연구 전까지는 두 가지 약제를 병용한 보조항암치료가 암 재발 위험을 실제로 낮추는 효과가 있는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아 임상에서 잘 활용되지 못했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약제를 병용하는 보조항암치료가 전세계 임상종양분야의 표준 진료방침인 ‘미국암센터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에 인용됐을 뿐 아니라 국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기 시작하면서 임상현장에서 점차 활용되고 있다.

김태원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1만명의 직장암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고, 암이 국소적으로 재발하는 문제로 많은 직장암 환자들의 삶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약제를 병용한 보조항암치료의 효과가 입증됐으므로, 기존의 일률적인 치료로는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한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수술 후 병기에 맞춰 새 항암치료법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획일적인 항암치료에서 벗어나 환자 맞춤형 항암치료 지침을 제시한 이번 연구는 국제적인 치료 권고안 개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연구성과는 임상종양학분야 국제 학술지 ‘미국 임상암학회지(Journal of Clinical Oncology, 피인용지수: 28.3)’ 10월 호에 게재됐다.

▲ 아스피린 프로텍트 제품. 출처=바이엘코리아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 시 사망위험 감소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사망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홀리 루먼스, 크롭 박사 연구진은 65세 이상 남녀 14만 6152명을 대상으로 평균 12.5년(8.7~16.4년)에 걸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할 시 사망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저용량 아스피린을 일주일에 3번 이상 복용하는 사람은 전혀 복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암 사망위험이 15%, 모든 원인에 따른 사망위험이 19%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체질량지수(BMI)가 25~29.9로 과체중에 해당하는 사람이 저용량 아스피린을 주마다 3번 이상 복용할 시 위암 사망위험이 28%, 대장암 사망위험이 34% 낮았다.

연구진은 아스피린과 사망 위험감소 사이에 연관성은 알 수 없지만 아스피린의 염증 억제 효과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위암과 대장암등 소화관 암은 염증과 연관성이 큰 질병이므로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암 학회(ACS) 에릭 제이콥스 역학연구실장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혈소판이 활성화되면 종양 성장을 돕는 인자들이 방출된다. 혈소판 활성화는 암세포 전이를 도울 수도 있다”면서 “아스피린의 항혈소판 효과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는 출혈 위험이 높지 않은 50~59세 남녀는 대장암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다만 미국 심장병학회(ACC)와 미국 심장학회(AHA)는 올해 3월 아스피린 지침을 바꿔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 대상을 심장병이나 뇌졸중 위험이 높은 사람으로 제한했다. 두 학회는 건강한 사람이 아스피린을 복용할 시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아스피린 부작용인 내출혈 위험이 더 클 것으로 봤다.

미국 임상종양학회 대변인 메리 마크햄 박사는 “아스피린 복용 여부는 의사와 상의 후 개인의 건강 상태와 출혈 위험 등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성과는 미국 의학협회 학술지 ‘저널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