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 성장 둔화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출처= BOF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래리 서머스 전 미재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집착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 년 동안 관세 장벽을 낮추려고 노력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을 뒤집고 이번 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프랑스에까지 관세 부과를 위협하며 무역 전쟁을 확산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는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서머스 전 장관은 관세 전쟁으로 미국 경제가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서머스는 4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지금 제 발등을 찍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충격이 얼마나 클 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역효과를 낼 것만은 분명하다."며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비판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관세는 수입 원자재와 부품에 의존하는 미국 생산자들의 경쟁력을 해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동차 제조회사에서 와인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미국 소비자들에게 상품가격 인상과 실질소득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제조업은 이미 침체에 빠진 상태다. 공장 활동은 11월까지 4개월 연속 위축 국면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제조업 침체는 세계 성장 둔화의 영향이 큰데, 무역 전쟁이 세계 성장 둔화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기관 ADP에 따르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11월에 6000개나 감소했다. 공장 일자리 감소로 민간부문 임금 상승은 2010년 3월 이후 두 번째로 저조했다.

"이 같은 불확실성이 경제 활동을 마비시킬 수도 있습니다"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서머스는 그것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그는, 아시아 지역에 외환위기가 일어나고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 Term Capital Management)가 몰락했던 1990년대 후반에 미국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이후 금융위기로 최악의 경기 침체를 맞았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문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2018년 3월 "무역전쟁은 미국에게 이익이고 이기기 쉽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거의 2년이 지난 지금,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에 휘말렸고 트럼프는 이번 주, "2020년 선거 때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4년 국회 연두 국정연설에서 언급한 핵전쟁 발언은 무역전쟁보다 더 앞서 나간 것이었지만, 핵전쟁은 벌어지지도 않았고 결국 이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은 모처럼 맞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경제 성장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있다.

S&P 글로벌 신용평가(S&P Global Ratings)의 데이비드 테셔 전무는 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무역 불확실성이라는 먹구름이 기업 투자를 계속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S&P는 향후 12개월 동안 경기 침체 가능성을 25~30%로 보고 있는데, 그나마 이전 예측보다는 개선된 것이다.

▲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관세 전쟁으로 미국 경제가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Axios 캡처

증시, 사상 최고치에서 장기 하락세로 반전할 수도

미국 증시는 10월 초부터 과열되기 시작해 11월에만 S&P 500 지수의 사상 최고기록을 11 차례나 갈아치웠다. 미국 증시가 이렇게 달아오른 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잇따른 금리 인하로 인한 손쉬운 자금, 미국 경제의 안정 기미, 그리고 중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 기대 때문이었다.

서머스는 “미국 주식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10년에 걸쳐 회복해 왔지만, 이제 복잡한 순간에 와 있다”며 “세계와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만큼 위태위태하다”고 지적했다.

"시장은 앞으로 장기 하락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장세가 더 위험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번 주 들어 미중 무역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자 미 주식시장은 급락세를 보였다. 트럼프는 4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산 철강 수입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프랑스 샴페인, 핸드백, 치즈에 대해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도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거들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미국은 중국에 대해 더 많은 '공격 무기’를 비축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12월 15일부터 부과될 예정인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연기될 이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예정대로 발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에 대한 이 같은 공격적인 입장 표명은 협상에 임하는 중국의 무역 전략에 대한 미국의 불만의 표시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가 무역협상에서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도구로 관세를 사용한 것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지낸 해리 브로드먼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 정책이 친성장적이라는 신뢰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고 비판했다.

마이너스 금리 현금 사재기 유발할 것

투자자들은 연준이 중국과의 무역전쟁 확대로 인한 피해를 완화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서머스는 금리가 이미 충분히 낮아 연준의 불황 대처 수단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우려한다. 연준은 올해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함으로써 현재 연방기준금리는 1.5%에서 1.75%로 유지되고 있다.

서머스는 "연준이 과거처럼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한 번에 500 bp(5%) 인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의 전반적인 경제시스템은 수십 년 만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취약한 상태"라고 말했다.

만일 연준이 금리를 5% 포인트 인하한다면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 영역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물론 트럼프는 연준이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들처럼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한 연설에서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로 정부에 돈을 줘야 하는데 우리 연준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연준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는 유럽과 일본의 경제를 되살리는데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초저금리는 가계들로 하여금 현금을 소비하기 보다는 사재기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서머스는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로 가면 사람들은 말 그대로 매트리스 밑에 돈을 묻어둘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