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퀄컴이 3일(현지시간)부터 미국 하와이에서 테크서밋을 열어 스냅드래곤 875 및 765 등 자사의 5G 플랫폼 기술을 발표한 가운데, 중국과의 밀월에 가까운 협력이 눈길을 끕니다. 5G 상용화 시대를 맞아 중국을 바탕으로 ‘기술 표준’이 되려는 퀄컴의 야망과, 도래하는 5G 시장의 주역이 되고싶은 중국의 복심이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퀄컴과 중국의 스킨십

테크서밋의 첫 날부터 이러한 기조는 돋보였습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사장을 시작으로 다양한 퀄컴 내외부 인사들이 등장한 가운데 린 빈 샤오미 창업주와 알렌 우 오포 부사장 및 글로벌 영업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린 빈 샤오미 창업주의 경우 지난해에도 테크서밋에 참여했기 때문에 ‘익숙한 얼굴’이지만, 올해는 퀄컴과 더욱 돈독한 모습을 연출해 많은 집중을 받았습니다.

린 빈 창업주는 실제로 테크서밋에서 “2010년 샤오미가 창립된 후 퀄컴은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라면서 “지금까지 4억 2700만개의 퀄컴 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무대에 올라 샤오미 스마트폰의 역사를 이미지로 설명하면서 ‘넘치는 스냅드래곤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샤오미의 미1부터 최근의 미9까지 모든 프리미엄 제품군은 모두 스냅드래곤 시리즈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스냅드래곤 875가 내년 1분기 상용화되는 가운데 샤오미는 차세대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미10에 875를 탑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 린 빈 샤오미 창업주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샤오미의 스마트워치인 미워치에도 스냅드래곤 3100이 지원될 전망입니다. 스냅드래곤 3100은 퀄컴이 웨어러블 시장에 진출하며 초기부터 스마트워치 최적화를 위해 구글과도 적극 협력한 플랫폼입니다. 퀄컴 웨어러블의 주력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4개의 A7 코어와 초 저전력 보조 프로세서 QCC1110, 디지털 신호 프로세서(DSP)를 탑재했기 때문에 성능이나 소모전력 부분에서 강점을 가지며 글로벌 명품 시계업체 몽블랑 서밋2에 탑재되며 큰 관심을 받은 바 있습니다.

▲ 스냅드래곤 3100이 들어간 몽블랑 서밋2. 출처=갈무리

퀄컴과의 돈독함을 자랑한 것은 오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렌 우 오포 부사장 및 글로벌 영업 사장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5위, 중국 2위의 존재감 뒤에는 스냅드래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는 “2018년 오포 파인드 X (Find X)에 스냅드래곤 855를 탑재했다”면서 “올해는 레노 5G(Reno 5G)에 스냅드래곤 855를 탑재했으며 내년 신제품에도 스냅드래곤 865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레노버가 인수한 모토로라의 세르지오 부니악(Sergio Buniac) 사장도 스냅드래곤과의 스킨십을 강조했습니다. 모토로라 레이저 등 폴더블 스마트폰의 영역으로까지 뻗어나가는 상황에서 스냅드래곤 765를 바탕으로 6GHz 이하 및 밀리미터파에서 5G 폰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테크서밋 전반을 봐도 양측의 ‘러브러브 광선’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현재 테크서밋에 참석한 중국 기자의 숫자는 50여명을 넘겼으며, 이는 한국과 일본 기자단의 숫자를 크게 압도합니다. 그 만큼 중국에서도 퀄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테크서밋 현장 곳곳에는 중국어로 된 안내판들이 설치되었고, 기조연설이 이어지는 컨퍼런스홀에는 유일하게 영어-중국어 번역기만 비치되었습니다. 테크서밋 2일차인 4일에는 지아드 아스가 퀄컴 인공지능 전략 프로덕트 부문 부사장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음성 인식 및 텍스트 변환 시연을 하며 중국어를 택하기도 했습니다.

▲ 인공지능 기술으로 음성을 중국어 및 영어 텍스트로 변환시키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서로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퀄컴이 태평양 건너 하와이에서 스냅드래곤 875 및 765를 공개하며 5G 로드맵을 발표하던 날, 한국에서는 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와 퀄컴의 ‘신경전’을 두고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노태악)이 선고 기일을 열어 퀄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공정위가 퀄컴에 부과한 1조원대 과징금은 정당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원이 퀄컴의 혐의를 모든 휴대폰 제조사로 확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퀄컴 입장에서는 ‘살(과징금)을 내어주고 뼈(특허 라이선스 모델)를 취한’ 격이 됐습니다만, 최소한 한국 정부와 퀄컴이 다소 껄끄러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퀄컴과 중국의 ‘밀월’이 짙어지는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물론 한국에는 엑시노스를 생산하는 삼성전자가 존재하는 등 중국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다만 중국이 퀄컴의 손을 잡고 5G 시장에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거나, 혹은 적절히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한국은 그 이상의 액션플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연구개발의 화신이자 5G 시대의 중요한 플레이어면서, 한 때 CDMA 시대를 맞아 무엇보다 한국과 협력했던 퀄컴과 이대로 멀어지는 것이 맞을까요?

기회는 있습니다. 무조건 퀄컴에만 의지해 모든 산업을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퀄컴과의 협력을 확대해 서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합니다. 서로 철저하게 이용해야 합니다.

▲ 테크서밋 안내판. 아래 중국어가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퀄컴이 밀리미터파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6GHz 대역을 중심으로 5G 로드맵이 구성되는 상황이지만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실외 기준으로 전체 5G 중 밀리미터파 비중이 65%에 이를 정도로, 그 기능은 증명되어 있습니다. 물론 밀리미터파의 약점도 뚜렷하기 때문에 한국 지형에는 걸맞지 않다는 반박도 나오지만, 이 무한의 가능성에 집중해 한국과 퀄컴이 만나 ‘서로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도 고려할 때가 왔습니다.

그렇게 서로 이용하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만나기라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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