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중에 ‘착한 남자는 매력 없다’는 말이 있다. 남자가 너무 착하거나 바른생활 위주로 살면 왠지 싱거워 보이고 긴장감이 떨어져 연애하는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개인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흔한 클리셰(Cliché·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캐릭터나 스토리 등을 표현하는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 꾸준히 인기가 있기는 한가보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서 보면 약간 다르다. 소비자들은 갈수록 ‘착한 기업’을 원한다. 과거에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게 기업의 책임이었다면, 요즘 들어서는 법적·사회적·환경적 책임 등 보다 폭넓은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기업이 선행을 베풀고 기업평판을 올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보다 기업이 경제·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동시에 비즈니스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SK그룹이 그 선봉장에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2014년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사회적 가치’를 SK의 신성장 동력으로 천명했다. 이후 굵직한 포럼이나 강연 자리에선 항상 사회적 가치를 화두로 던졌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지난 3일 포스코의 ‘2019 기업시민 포스코 성과공유의 장’에 깜짝 등장해 사회적 가치에 대해 설파하고 나섰다. 

최 회장은 연단에 올라 “포스코의 경영이념인 기업시민은 브레이크쓰루(breakthrough, 돌파구)로 SK와 함께라면 그 스피드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최정우 포스코 회장 또한 “포스코와 SK 두 기업의 노력이 합해지고 협력한다면 기업시민이 기업 차원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혁신운동으로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이번 만남은 SK의 경영이념인 ‘사회적가치’와 포스코의 ‘기업시민’ 이념이 궤를 같이 한다는 판단에 따라 마련됐다. 양사는 지난 8월 첫 회동을 이후로 지속적으로 CSV에 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SK는 그간 사회적 가치를 실천해오면서 느꼈던 노하우와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 등을 포스코에 전수했으며, 차후 양사는 사회적 가치의 ‘글로벌 표준화’ 작업 등 다양한 협력을 함께 해나갈 예정이다.

양사의 행보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간 국내 기업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등의 활동을 해온 적은 많지만 비전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연대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점에서다. 

이제 막 시작된 단계라지만 양사의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경우 한국형 CSV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막대한 자본과 체계가 갖춰진 대기업 두 곳이 뛰어든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간 CSR과 CSV는 기원을 해외에 두고 있어 국내 기업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다보니 기업에서도 정확한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단기적인 활동에 그치는 등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최태원 SK회장의 ‘사회적 가치’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만큼 차후 한국형 CSV가 정립, 글로벌 기업에 전파되는 그림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성장의 국면에서 CSV가 가지는 함의는 남다르다. 새로운 성장동력과 기회를 각종 사회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무리한 경제성장으로 비롯된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다시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정상 궤도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다. SK와 포스코의 가치 공유를 시작으로 한국형 CSV가 정립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