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그동안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공상과학영화의 주요 소재였다.

물론 2019년 12월 현재에도,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서처럼 네온 불빛의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며 미래의 기계를 타고 날아다니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대했던 자동차와 항공기의 여행 융합이 마침내 곧 펼쳐지는 것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제 새로운 자동화 및 전기 기술들이 한 세기 전에 태동한 자동차라는 사업 모델의 붕괴를 위협하며 자동차 산업의 전화기적 시점을 맞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주요 이름들이 개인용 공중 이동(personal air mobility)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늘을 날며 도시 교통의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대담한 목표를 추구하는 스타트업들의 뒤에는 포르쉐, 다임러, 도요타 같은 기업들이 막 떠오르는 전기수직이착륙 자동차(eVTOL) 산업에 그 이름을 내밀고 있다. CNN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플라잉 카 회사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자동차 회사들을 소개했다.

▲ 자동차의 선구자를 자처하는 다임러는 도시 환경에서 비행하도록 특수 설계된 2인승 전기수직리프트기(all-electric vertical lift aircraft)인 볼로콥터에 투자하며 옛 명성을 다시 한번 세상에 떨치려고 한다.    출처= Volocopter

볼로콥터(Volocopter)

메르세데스라는 고급 브랜드로 가장 잘 알려진 다임러는, 1885년 세계 최초의 공장 생산 자동차로 평가받는 페이턴트 모터바겐(Benz Patent-Motorwagen)을 만든 칼 프리드리히 벤츠와의 역사적 관계(그가 설립한 벤츠 자동차는 훗날 다임러와 합병해 다임러 벤츠 자동차가 되었고 이곳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가 탄생했다)에 비추어 볼 때, 자동차 제조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선구자다.

이제 다임러가 도시 환경에서 비행하도록 특수 설계된 2인승 전기수직리프트기(all-electric vertical lift aircraft)인 볼로콥터에 투자하며 옛 명성을 다시 한번 세상에 떨치려고 한다. 다임러는 랩1886(Lab1886)이라고 불리는 혁신 자회사를 통해 볼로콥터에 투자했다.

볼로콥터는 유럽 도시에서 이미 첫 비행을 완료했고, 조만간 두바이의 출시를 앞두고 있는 플라잉카의 선두 주자다.

볼로콥터는 다임러 외에도 스웨덴 볼보의 주인이며 다임러 대주주이기도 한 중국 지리(吉利 Geely) 자동차로부터도 5000만 유로(65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테라퓨지아(Terrafugia)

지리자동차가 공중 이동 분야에 투자한 곳은 볼로콥터 만이 아니다. 이 중국 자동차회사는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또 다른 플라잉 카 스타트업 테라퓨지아에도 투자했다.

놀랍게도 테라퓨지아의 개념은 과거의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이 상상했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똑같이 닮았다.

테라퓨지아의 플라잉 카 테라퓨지아 트랜지션(Terrafugia Transition)은 일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도로 위를 주행할 수 있고 차고에도 주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날개를 펼치면 비행기처럼 이륙해 하늘을 날 수 있다.

테라푸지아는 지난 2018년 11월에 2019년부터 첫 차량의 생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 테라퓨지아의 플라잉 카 테라퓨지아 트랜지션(Terrafugia Transition)은 일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도로 위를 주행할 수 있고 차고에도 주차할 수도 있다.    출처= Terrafugia

조비 항공(Joby Aviation)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토요타 AI 벤처스(Toyota AI Ventures)는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조비 항공에 투자했다. 조비 항공은 1회 충전으로 5명의 승객을 태우고 150마일(240km)을 날 수 있는 eVTOL를 개발하고 있다. 조비 항공은 설명회에서 자사의 플라잉 카가 다른 회사 제품보다 속도가 빠르며 정숙함을 자랑한다고 강조한다.

이 스타트업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지만 1억 3천만 달러의 벤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의 투자자들 가운데에는 몇몇 유명한 실리콘 밸리 투자자들과 함께 미국의 저가 항공사 제트블루의 벤처 캐피털 자회사인 제트블루 테크놀로지 벤처스(JetBlue Technology Ventures)도 포함되어 있다.

제트블루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보니 시미 대표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초기 eVTOL 산업에는 자동화와 항공우주 분야의 전문 지식이 총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거기에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도 직결되어 있는 핵심 요소인 배터리도 관련돼 있다.

"지금 eVTOL 시장에서 이만한 발전을 볼 수 있는 것은 배터리 기술의 발전 때문입니다. 전기로 구동되는 설계에 따라 eVTOL의 핵심 요소인 안전, 소음, 비용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애스턴 마틴과 포르쉐

영국의 크랜필드 대학교(Cranfield University)는 제임스 본드가 타는 자동차 제조사인 애스턴 마틴(Aston Martin)과 항공엔진 제조사 롤스로이스(Rolls-Royce)와 손잡고 볼란테 비전 컨셉(Volante Vision Concept)이라는 고급스러운 자율 하이브리드 eVTOL를 개발했다.

롤스로이스는 2018년에 자체 개발한 eVTOL 컨셉트를 공개하면서 2020년 초에 출시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롤스로이스의 플라잉 카에는 경사진 날개와 6개의 프로펠러가 달려있는데, 순항 고도에서는 이중 4개의 프로펠러가 날개 안 쪽으로 접히게 되어 있다.

고성능 슈퍼카의 대명사 포르쉐(Porsche)도 항공사 거인 보잉과 제휴해 플라잉 카에 발을 들여 놓고 있다.

포르쉐는 보잉의 혁신 및 연구 자회사인 보잉 넥스트(Boeing NeXt)와 오로라 플라이트 서비스(Aurora Flight Services)와 제휴해 플라잉 카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이 프로젝트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지금까지 선보인 초기 렌더링 작품들을 보면 멋진 배트맨 풍의 분위기를 보인다.

보잉의 라이벌인 에어버스(Airbus)도 자체 개발한 eVTOL 바하나(Vahana)가 있다. 바하나는 2018년 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00회의 시험 비행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 애스턴 마틴(Aston Martin)과 항공엔진 제조사 롤스로이스(Rolls-Royce)이 손잡고 개발한 볼란테 비전 컨셉(Volante Vision Concept).    출처= Cranfield University

앞으로 10년 후

포르쉐 컨설팅(Porsche Consulting)의 예측에 따르면 2035년까지 eVTOL 시장은 2만 3000대, 금액으로 320억 달러(38조원)에 달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그에 앞서 향후 10년 동안 초도 출시와 실험 비행을 통해 기술적, 재정적, 운영적 관점에서 누가 승자인지 가려질 것이다.

사람을 태운 드론이 머리 위에서 윙윙거리는 것을 걱정한다면, 아직 당황할 필요는 없다.

포르쉐의 연구에 따르면, 최초의 비행 택시는 이르면 2025년에 정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할 수 있겠지만, 초기에는 대부분 공항과 대형 메트로폴리스 도심 사이의 간단한 이동만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2035년쯤 되면 업계가 통합 정리되면서 대부분의 비행 이동은 기존의 다른 운송 수단과의 연결되는, 사전 설정된 허브 사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어쨌든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등장은 거의 불가피해 보인다. 가장 큰 관심사는 이 혁명의 주역들이 오늘날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바로 그 기업들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