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출처= 롯데면세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난 정부에 대한 롯데 신동빈 회장의 뇌물공여가 유죄로 인정된 가운데 사건과 연관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특허 적합성에 대한 관세청의 판단이 면세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당초 관세청이 사안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힌 일정은 11월이다. 그러나 특허권 취소에 대한 롯데 측의 강한 항변과 더불어 점포 임직원 약 1500명의 일자리가 달려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여론이 움직이면서 관세청은 결론을 미루고 있다. 

'법대로' 하자면

보세(면세)사업 운영에 대한 규범이 포함된 관세법 제178조 2항은 “특허보세구역(면세점)의 운영인이 사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에는 세관장의 관한으로 부여된 특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법원은 상고심 판결에서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원이 신규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을 롯데가 획득하는 조건이 있는 대가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현행법의 조항과 대법원의 판단을 고려하면 관세청이 롯데의 사업권을 회수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롯데가 사업권 획득 과정에서 얻은 특혜와 그를 위한 뇌물수수 정황이 이미 수차례의 재판을 통해 유죄로 인정됐고, 롯데도 이에 대해 추가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망설임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에 관세청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롯데 측도 항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관세법 제178조 2항은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권을 획득한 주체가 특허보세구역(면세점)의 ‘운영인’일 때를 전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신규 사업권을 획득하고 월드타워점 운영을 시작할 당시 롯데의 면세점 사업부문이 속해 있는 호텔롯데의 대표이사는 신동빈 회장이었던 것은 맞다”면서 “그러나 면세점 사업부문은 독자적 법인으로, 면세사업의 직접적인 운영인 역할을 맡은 대표이사(장선욱 前 롯데면세점 대표이사)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롯데 측은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은 신규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에 대한 입찰 공고가 나기 이전에 있었던 일이기에 이는 ‘사업권 취득 과정 중 부정한 행위’를 전제한 관세법 조항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 관세법 제 178조 조항. 위법 사항에 대한 처벌적 조치의 근거가 되는 조항(빨강색 네모)과 롯데 측 항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항(파랑색 네모).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두 번째는 사업권 취소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롯데가 2016년 사업권을 획득해 2017년 1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매장이다. 지난해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을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국내 면세점 업계 전체의 회복세와 같이 성장하며 2018년을 기준으로 1조20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만약 관세청이 롯데의 사업권을 취소하면 일차적으로는 롯데에게 엄청난 피해가 돌아간다. 연간 약 1조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장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법에 대한 처분이라는 명분이 있다고 한다면 롯데에게는 뼈아픈 일이나 관세청에게는 결단을 망설일 정도의 일은 아니다. 관세청이 더 크게 고려하는 문제는 현재 월드타워점에서 일하고 있는 약 1500명에 이르는 월드타워점 임직원들이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롯데가 아닌 다른 기업이 사업권을 가져가 면세점을 운영하는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두산, 한화 등 주요 대기업들도 서울시내 면세점의 사업권을 포기하거나 신규 사업권에 무관심한 판에 막대한 운영비용을 들여가며 사업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기업은 찾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설사 사업권을 획득을 희망하는 기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쟁 입찰을 통한 절차가 있기에 적어도 수개월이 이상이 소요된다. 그 기간 동안 기존 임직원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    
  
무시할 수 없는 ‘경기 침체’ 
  
관세청이 고려해야 할 것은 또 있다. 바로 최근의 경기침체를 반영한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국내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을 포함해 814곳의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의 구조조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올해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이 있었다”라고 답한 기업은 약 170개로 전체의 21%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규모별 구분으로는 대기업의 33%, 중견기업의 25%, 중소기업의 20%, 영세기업의 15%가 올해 직원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각 기업들이 밝힌 구조조정의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인 21%를 차지한 응답은 ‘경기 침체로 인한 경영난 심화’였다.  

▲ 출처= 인크루트

이처럼 경기 침체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몸집 줄이기로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1000명이 넘는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가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뜩이나 지금은 장기적 경기 침체에 대한 현 정부의 책임론이 점점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관세청의 결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면세점 업계의 전문가는 “현 정권이 추구하는 기조를 감안하면 이번 사안에 대해 관세청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겠지만, 경제 침체로 인한 일자리 문제 등 이번 정권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문제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정책 기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그간 반(反)기업의 정서가 강했던 여론이 이제는 롯데면세점의 사업권 취소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인 의견을 강조하고 있는 것 역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