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동안의 쉬운 돈 덕택에 전세계는 현재 250조 달러의 기록적인 정부·기업·가계 부채를 지고 있다.    출처= Business Lin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중국의 좀비 회사들, 치솟는 미국 학자금 대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을 방불케 하는 호주의 주택담보대출, 아르헨티나의 또 한 번의 디폴트 공포.

전세계에 부채 지뢰가 널려 있다.

10년 동안의 쉬운 돈 덕택에 전세계는 현재 250조 달러의 기록적인 정부·기업·가계 부채를 지고 있다. 이는 세계 경제생산의 거의 세 배에 달하며, 어린이까지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인구 한 명당 약 3만 25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유산을 이어받은 가장 큰 이유는 금융위기에서 세계 경제가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 세계각국이 의도적으로 대출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이후 십 년간 사상 최저 금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채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는 결국 부채를 계속 증가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각국 정책 입안자들이 그 시대 이후 가장 느린 성장과 씨름하면서 자국의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일련의 선택들이 한결같이 부채를 더 늘리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른 바 그린 뉴딜(Green New Deal)에서 현대 통화 이론(Modern Monetary Theory)에 이르기까지 적자 재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앙은행들의 통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기업과 가계들을 두려움에서 구해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정 긴축 강경파들은 그런 주장들은 결국 더 많은 문제의 씨앗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한 국가가 안전하게 짊어질 수 있는 부채 규모의 기준이 변하고 있는 것일까?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부터 국제통화기금(IMF)에 이르기까지 중앙은행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이야말로 경제의 결실을 맺을 프로젝트를 위해 돈을 대출해 주어야 할 적기라고 주장하며 각국 정부들로 하여금 더 많은 재정 지출을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였던 마크 소벨은 "선진국들의 GDP 대비 부채 비율에 대한 기존의 통념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금리와 안전자산에 대한 시장의 억눌린 수요를 감안할 때, 주요 선진국들은 기존의 통념보다 더 높은 부채 부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저금리 대출 확대로 인한 전세계적 신용 악화는 정책 입안자에게 제약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부채의 경우, 아르헨티나의 새 정부는 IMF와 사상 최대인 560억 달러의 채무 상환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2001년 이 나라 경제 붕괴와 채무 불이행에 대한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IMF 구제 금융을 받은 다른 나라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업 부채의 경우, 미국이 사상 최장 기간 경제 성장을 구가하는 와중에도 올해 세계 전체 기업 디폴트 중 미국 기업들이 70%를 차지한다. S&P 글로벌 신용평가(Global Ratings)에 따르면, 중국 역내 시장에서 디폴트 기업은 내년에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장기간에 걸쳐 영업이익으로 부채관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성장 전망도 어두운 이른 바 좀비 기업들의 수가 선진국 비금융 상장 기업의 6%를 차지했는데, 이는 수 십년 만에 최고치다. 이것은 건강한 경쟁 회사들과 생산성 모두를 해친다.

가계 부채의 경우 가장 부채가 많은 나라는 호주와 한국이다. 가계 부채는 현 세대 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압박을 줄 것이다. 미국의 학생들은 현재 1조 5천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주택 대출을 받기도 전에 학자금 부채를 지고 있어 상환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아무리 이자가 싸더라도 일단 짐이 무거워지면 탈출하기 힘들 수 있다. 견고한 경제 성장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그것은 항상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정책 입안자들은 재정 긴축,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해 시장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현상.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했다면 다른 곳으로 향했을 자금을 정부가 정책 수단을 동원해 정부의 목표 달성을 위해 끌어오는 경우를 말함), 채무 불이행, 채무 탕감 등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절충해야 한다.

알리안츠(Allianz SE)의 모하메드 엘-에리안 경제자문관은 "가장 좋은 것은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채무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물론 정책 입안자들은 그런 결과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 회복을 위해 연방 정부가 감세를 시행했고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5%에 달하도록 과감한 재정부양책을 펼쳤으면서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인하했다. 그리고 영국의 양대 정당은 모두 1970년대 이후 볼 수 없었던 수준의 공공 지출을 약속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로서는 전면적인 금융완화를 시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동성 투입을 조금씩 늘리면서 부채의 고삐를 늦추려고 애쓰고 있다. 재정 측면에서는, 과거처럼 재정 지출에 의존하기 보다는 세금을 인하하고 채권 발행을 앞당기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적자의 세계에 익숙해짐에 따라, 위험에 대한 평가를 완화하면서 이 또한 부채 거품을 부풀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약 12조 달러의 채권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델리티 자산운용(Fidelity International)의 앤 리차드 최고경영자(CEO)는 마이너스 수익률의 보이는 채권이 이제 채권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앙은행 금리가 최저 수준이고, 미국 재무부 채권이 100년 만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확실히 우리는 버블 영토에 근접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거품이 어떻게, 언제 터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IMF는 지난 10월, 채권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보험회사나 연기금 같은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해 더 위험하고 덜 유동적인 증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스페인 중앙은행(Bank of Spain)에서 일한 적이 있는 프랑스 금융회사 나티시스(나틱시스 SA) 홍콩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아시아태평양 이코노미스트는 "지속될 수 있는(sustainable) 부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짜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막대한 부채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으로 전환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