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스승이라고 여기는 선생께서 투병 중에 있습니다.

얼마 전 문병 차 방문해서 긴 시간을 얘기 나누고,

정말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연락 달라는 위로의 말을 남기고 왔습니다

와병 중이지만 정신은 여전히 또렸했고, 관심사도 많았습니다.

내가 인생 후반전을 위해 나무를 공부하겠다고 하자,

선생은 나무의 인문학으로 범위를 넓혀 고민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며 부산에 ‘화승원’이라는 개인 정원을 40년 가꾼 분을 소개해주고,

그 자리서 전화로 좋은 사람이 방문할 테니 각별히 얘기해주라는 부탁까지 하는 겁니다.

화승원 주인장이 나무와 함께 한 40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이 정원을 외부에 공개하며

펴낸 특별한 책도 받아왔습니다. 마침 선생이 그 책에 ‘화승원의 숲에 밑줄 긋기’라는 축하와 격려의 글을 쓴 인연이 있어 선생님으로부터 책을 받게 되었지요.

돌아와서 ‘사랑과 자비의 정원, 화승원 이야기’라는 정원 주인의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책을 펴내며’라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특이한 인사말을 발견했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준 나무들과 수목원을 지켜준 따사로운 햇살과 틈틈이 내려준 빗줄기와

한줄기 바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개 그 공간은 책이 나오기까지 애써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맺기 마련인데,

그분의 마지막 인사 대상은 우리가 잊고 지낸 ‘자연에게’였습니다.

감동이었고, 나무와 함께 한 40년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위해 나무를 공부하겠다고 했는데,

그분 같은 자세는 책상 머리 공부 가지고는 안되겠지요?

선생님은 또 큰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나무의 덕성(德性).

나무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죽을 수는 있지만, 그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생명을 갖고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는 거죠.

향나무가 자신을 찍은 도끼에 향을 묻혀주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나무는 죽어 도끼의 자루가 되고, 도끼의 날을 만드는 쇠를 녹이는 숯이 된다는 나무.

사는 집의 기둥이 되고, 땔감이 되고,

재는 다시 대지로 돌아가 새 생명을 키우는 나무의 덕성, 순환고리..

나무를 보면 숲이 안 보이고, 숲을 보면 나무를 보지 못하는

세상사의 혼돈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겨울 초입이라 나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숲 또한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나무 공부를 시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