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바람이 불고 있다. 전자청구부터 자동송금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한 실손보험 청구 서비스가 전국의 병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하는 의료계의 문턱이 높아 실손보험 간편 청구 서비스가 활성화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활발’

NH농협생명은 지난 25일 서울성모병원과 ‘실손보험금 전자청구’ 활성화를 위한 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협약식은 지난해 말 도입했던 실손보험 전자청구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차원이다. 농협생명은 실손보험금을 넘어 암 진단비와 같은 정액보험금도 간편하게 청구할 수 있도록 서비스 이용 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는 주로 핀테크 업체가 운영하는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레몬헬스케어가 제휴하고 있는 병원은 △서울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중앙대학교병원 △건국대학교병원 △한양대학교병원 △인제대학교상계백병원 △인제대학교서울백병원 등이며, 이 외에도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9월엔 레몬헬스케어가 삼성화재와 손을 잡고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는 지난해 KB손해보험, NH농협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에 이은 협약이다.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는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모든 진료증빙자료를 앱상에서 전자데이터(EDI) 형태로 보험사에 바로 전송할 수 있다.

DB손해보험도 올 상반기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위해 핀테크 업체 지앤넷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병원 내 설치된 키오스크(무인자동화장치)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하면 자동으로 관련 서류가 보험사로 전송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교보생명도 전국 8개 병원에서 보험금 자동청구시스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보험금 자동청구시스템은 보험 가입 시 블록체인에 진료기록 송부 승인 정보를 기록해 병원과 보험사가 실시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은 휴대폰으로 전송된 교보생명 보험금 청구 안내 문자의 확인 버튼만 누르면 계좌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왼쪽 두 번째)이 홍재은 NH농협생명 대표이사(왼쪽 첫 번째), 김용식 서울성모병원 병원장(왼쪽 세 번째), 이지열 서울성모병원 스마트병원 병원장과 25일 서울성모병원 회의실에서 실손보험 전자청구 활성화를 위한 협약식을 갖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NH농협생명

◇ 보험사와 고객 ‘윈윈’ 효과

실손보험 청구가 간소화되면 보험사들에게도 이점이 크다. 우선 복잡한 서류 작업 등이 없어져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생기는 민원도 감소한다. 진료기록도 전산화 돼있어 과잉 진료 및 보험사기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비급여 진료를 줄여 보험금 누수를 막는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고객 편의성도 크게 올라간다. 실손보험은 소비자가 실제 부담한 의료비를 보장하다 보니 다른 보험상품 대비 보험금 청구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연구원에서 발간한 ‘실손보험금 미청구 실태 및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실손보험금 미청구의 주된 이유로 ‘청구의 번거로움’이 꼽히기도 했다.

◇ 의료계 반발에 답보상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10년 전부터 이어졌다. 하지만 매번 의료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지난 21일에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미뤄졌다. 이를 두고 국회가 의료계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1월 고용진‧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환자의 요청이 있을 시 병원이 의료비 증명 서류를 보험사에 의무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에 의료계는 환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악용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의료계가 진료수가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 중이라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비급여 등의 진료수가가 노출되면 병원 매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보상 청구 절차 자체를 떠안아 부담이 가중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반대로 실손보험 간편 청구 활성화 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현재 일부 대형병원에서만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으며, 서비스 확대 범위조차 당초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교보생명의 경우 자동청구 서비스를 시작한지 2년가량 지났지만 해당 서비스가 가능한 병원은 8곳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교보생명이 목표한 실손보험 자동청구 가능 병원은 2018년 20곳, 2020년 600곳이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의료업계 안에서도 한쪽에서는 반대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인 것 같다”며 “특히 비급여 진료 수가 노출을 꺼리는 개인 병원들의 반발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의료계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제대로 이뤄지기는 사실상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