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머스 프리즈(Farmer’s Fridge)는 즉석 샌드위치, 샐러드 등 매일 새로 만드는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자판기 수 백대를 운영한다.   출처= Kiosk Marketplac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과거에 자동판매기로 음식과 음료를 팔던 식당 오토매트(Automat)의 정신이, 즉석 샌드위치, 샐러드 등 매일 새로 만드는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자판기 파머스 프리즈(Farmer’s Fridge)로 되살아 났다.

루크 손더스는 영업사원으로 몇 년간 미국 중서부 지방 출장을 다니면서 패스트푸드 밖에는 먹을 곳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고객들은 7달러만 내면 자판기의 터치 스크린을 눌러 자신이 원하는 맛있고 신선한 메뉴를 고를 수 있다. 그의 회사는 시카고에 있다. 시카고의 널찍한 부엌에서 밤 사이 음식을 만들어 밀워키와 뉴욕 등의 도시에 있는 냉장 자판기에 음식을 공급한다.

그는 사무실 건물 로비나 병원 같은 공공 장소에 수 백개의 자판기를 설치했다. 올해 말까지 맨하튼과 뉴저지에 100개 정도 더 설치할 계획이다. 그런데 잘 나가던 파머스 프리즈가 복병을 만났다.

뉴욕시 보건위생과(Department of Health and Mental Hygiene)의 한 조사관이 지난 10월 30일 도시 순찰을 하다가 전에 보지 못했던 자동판매기를 발견했다. 파머스 프리라고 써 있는 이 자판기는 깨끗한 흰 나무로 만들어졌고, 커다란 터치 스크린과 재활용 쓰레기통이 내장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사탕이나 음료수가 아니라 신선한 샐러드, 타이 국수, 팔라펠, 요거트 파르페 등 신선한 음식이 피트가 한 가득 들어 있는 높은 항아리들이 들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편리하고 건강한 식사로 보였겠지만 이 조사관의 눈에는 곧 터질 것 같은 식품안전 시한폭탄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 조사관은 몇 시간도 안돼 이를 부서 책임자에게 보고했고, 이틀 후, 시카고의 스타트업 파머스 프리지는 뉴욕에 있는 자판기 55대를 모두 자발적으로 폐쇄했다.

한 달 동안의 협상 끝에 시 보건위생과와 회사는, 파머스 프리지 자판기를 보건 규정에 따라 식당 또는 식품서비스시설로 취급하기로 합의했다. 모든 기계에는 허가서와 검사 뿐 아니라 맥도날드와 동일한 문자 등급(A,B,C 등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협정은 신선하고 편리한 식품을 판매하기 위한 새로운 첨단 기술을 추구하는 많은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뉴욕시 보건위생과는 "파머스 프리지 같은 회사들은 뉴욕시 식품 공간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으며 우리는 뉴욕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고의 단속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시 보건법 제81조에는 ‘자판기는 개별적 허가나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대부분의 자판기는 사탕, 과자, 음료수 같은 유효기간이 긴 식품을 판매하며, 이런 식품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공중 보건에 위험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규정은 포장된 샌드위치나 샐러드 같은 부패하기 쉬운 음식을 파는 자동판매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식당들을 대변하는 제임스 디파스퀘일 변호사는 "자판기에 대해 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며 "시 보건위생과가 여기에 새 규칙을 적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자판기에 허가가 필요하다면 적어도 뉴욕주 농무부(New York State Department of Agriculture)가 개입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시 보건위생과는 "자판기에서 조리된 특정 식품을 파는 것은 식품으로 인한 질병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시 당국은 파머스 프리지와 협의해 그들의 장비가 안전한 온도를 유지하는지, 라벨이 제대로 붙여졌는지, 공급원은 승인된 곳인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 맨하튼의 파머스 프리즈 자판기. 회사는 뉴욕시의 조치에 따라 55개 자판기를 잠정 폐쇄했다.   출처= Tech Crunch

신선 식품이 가득한 자판기에 당황한 곳은 뉴욕시가 처음이 아니다. 루크 손더스 CEO는 “6년 전 파머스 프리지가 시카고에 처음 선보였을 때에도 시 보건당국자들은 허가가 필요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리처드 M 데일리 시장이 서명한 스티커를 모든 자판기에 부착하는 조건으로 운영 라이선스를 받았다. 이후 회사는 필라델피아, 밀워키, 인디애나폴리스에도 자판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7월부터 뉴욕과 뉴저지에서도 영업을 시작했다.

기업 식당이나 병원에 있는 이 회사의 자판기는 일반적인 자동판매기보다 더 많은 식품안전 기능을 갖추고 있다. 자판기 내부 온도를 5분마다 측정해 회사 서버에 업로드하는데, 안전하지 않은 온도로 인식되면 자동으로 음식의 배출을 중단한다. 이 자판기들은 또 음식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판기 안에 있었는지 추적하고, 판매일이 지난 제품은 배출하지 않는다.

지난 주 뉴욕시가 파머스 프리지의 자판기를 식품서비스시설이라고 판결함에 따라 이 회사는 식당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자판기 한 대마다 개별 식당들이 내는 것과 동일한 금액인 28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뉴욕시 보건위생과는 식당이 갖춰야 할 몇 가지 기준에 대해서는 융통성을 두었다. 예를 들어 파머스 프리지 자판기 하나 하나마다 식당 설치 요건의 하나인 화장실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자판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볼 일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시 당국에 제공해야한다(자판기가 공공 건물 로비에 있는 경우 인근 잡화점의 화장실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회사는 또 검사관들이 서버가 있는 회사까지 오지 않고 현장에서 자판기 내의 온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자판기에 온도계를 추가했다.

이 부서의 움직임은 뉴욕 소재 신선식품 자판 회사인 프레시 볼과 같은 다른 신생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회사 대표는 프레쉬볼이 보건부와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현재 허가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 되면, 파머스 프리지는 다음 주부터 자판기를 재가동해 뉴욕과 뉴저지에서 계속 영업을 할 계획이다. 손더스 CEO는 이번 영업 중단으로 회사가 약 15만 달러의 매출 손실과 법적 비용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힘든 일이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나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뉴욕시 당국은 시민들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으니까요. 새롭고 색다른 일을 할 때는 언제나 혼란을 겪게 마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