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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스팸과 산낙지
   

쓸데없는 메일을 스팸메일, 불필요한 전화를 스팸전화라고 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용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대량으로 전달되는 광고성 메일, SMS, 전화 등을 말하는데, 스팸이라는 이름의 미국산 햄통조림 광고가 지나치게 많았던 것에 빗대어 이런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메뉴를 알아서 바꿔가며 배달해주는 오늘의 점심도시락 메뉴는 스팸 김치찜이었다. 좋아하는 메뉴다. 소위 ‘초딩’ 입맛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쭙잖은 B급 돼지고기를 쓴 김치찜보다 차라리 품질이 일정하게 보장(?)된 스팸김치찜이 더 낫다. 물론 몇 천원하는 도시락에 오리지널 스팸을 쓰기는 어려울테니, 아마 공장에서 대량 공급받는 스팸ST(스타일) 햄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스팸을 올려 먹는 TV광고가 있었는데 요즘은 사라졌다. 광고는 사라졌지만 스팸은 건재하다. 경기가 안 좋으면 스팸 선물세트가 잘 팔린다는 속설도 있다. 밥과 스팸에 김 한 장을 곁들이면 맛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하와이에 가면 ‘스팸무스비’라는 초밥형 주먹밥을 편의점에서 판다.

스팸 또는 스팸스타일의 햄은 부대찌개에도 들어간다. 찌개에 넣는 주재료를 햄과 소시지로 만든 역사적인 배경은 6·25전쟁 직후, 미군부대에서 쓰고 남은 잉여 음식을 이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스팸은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며, 코카콜라보다 더 인기가 높다고 한다. 가장 쓸모없는 것을 의미하는 스팸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와 문화에서 다양한 조리법과 요리로 변모해 쓰이고 있는 것은 참 역설적이다.

*   *   *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자신의 고국 친구 두세 명을 한국에 초청하는 일종의 투어 다큐 프로그램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한국음식 메뉴는 물론 코리안 바비큐나 삼겹살이겠지만, 모험심 강한 여행자라면 산낙지에 도전한다. 신기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는 이에게는 재미다.

마침 얼마 전 지방의 한 토속음식점에 갔더니 산낙지가 나왔다.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동영상으로 찍어, 몇몇 외국인 의사친구들에게 보내주면서 한국에 오면 같이 먹어보자고 했더니, 기겁을 한다. 자기 입으로 저걸 가져가는 건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도와 줄테니 걱정 말라고 너스레를 떨긴 했지만, 너무 짓궂은 장난이었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즐겁지 않고 괴로운 영상이었을 수도 있다. 원숭이 골을 숟가락으로 파먹는 영상을 누군가 필자에게 보냈으면, 그 영상 때문에 하루 종일 속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대만에 가면 취두부 향 때문에 괴로워하는 한국인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삭힌 홍어나 청국장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있듯이, 대만에도 취두부 싫어하는 대만인이 있을 것이다. 산낙지 못먹는 한국인도 물론 있고, 심지어 김치 싫어하는 한국인도 있다.

한 나라의 식생활은 문화적인 큰 틀 안에서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   *   *

20년 가까이 돌출입수술을 하면서, 천착하게 되는 돌출입수술의 완성단계는 역시 턱끝수술이다. 돌출입수술에 있어서 턱끝수술을, 용의 그림에 마지막으로 눈을 찍는 화룡점정[畵龍點睛]과도 같다고 여러 번 강조해왔는데, 혹자는 필자가 이 고사성어 한 개 밖에 모르나 싶겠지만, 달리 더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다.

이제 필자의 관심은 돌출입수술과 동시 턱끝수술의 기술적인 부분, 즉 수술테크닉에 대한 부분이 아니고, 어느 지점에 턱끝을 위치시켜야 환자가 만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경기에는 기술점수과 예술점수가 있다. 필자는 돌출입수술 및 턱끝수술의 예술점수에 집중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과연 어떤 입술의 위치, 어떤 턱끝의 위치 및 길이가 가장 예술적이고 아름다울까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고도 스팸이나 산낙지 같은 음식에 대한 생각처럼 문화적인 큰 틀 안에서 개인차가 있고 취향이 다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한국에서 특히 여성이 선호하는 입매는 10여 년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쪽으로 변화해왔다. 즉, 입은 조금 덜 넣어 미세한 돌출감이 남는 것을 선호하고, 턱끝은 앞으로 덜 전진시켜 아담하고 귀여운 턱끝으로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느끼한 스팸이 찌개에 들어가서 담백한 맛이 되었듯이, 1968년 작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 올리비아핫세로 대표되는 서양 인형처럼 쏙 들어간 입과 찔릴 것 같은 날렵한 턱끝이 주는 아름다움은 한국에 들어와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동양적인 아름다움 쪽으로 그 기준이 바뀌어온 셈이다.

이런 아름다움의 기준에 있어서, 시간적인 트렌드 변화뿐만 아니라 지역적, 문화적인 온도차이도 존재한다. 일례로 중국인이나 태국인들은 대체로 한국인에 비해 더 서구적인 입매를 선호한다. 즉, 더 쏙 들어간 입과 다소 더 길고 전진된 위치의 강한 턱끝을 원한다.

이런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기 때문에 필자는 돌출입수술을 하는 환자에게 원하는 바를 꼭 물어본다. 원하는 연예인 옆모습 사진이 있다면 가져오라고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준비해오는 환자는 생각 외로 많지 않다. 가끔 연예인 사진을 두세 장 가져왔다고 해서 보면, 서로 전혀 딴 판인 입매와 턱끝 위치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꼭 한 장만 정해서 가지고 오라고 한다.

결국 돌출입수술 직전에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첫째, “제 얼굴에 맞는 턱끝으로 해주세요”, 둘째, “원장님이 잘 하시니까 알아서 해주세요”다. 둘 다 참, 말은 쉽다.

우선 누군가의 얼굴에 어울리는 턱끝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올리비아핫세의 턱끝이 2㎜ 정도 길이가 짧고, 턱끝 전후위치가 2~3㎜ 쯤 뒤에 있었다면, 필자는 더 아름답고 귀엽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턱끝이 그녀 얼굴에 딱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필자가 한국인이고 미학적인 관점도 한국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알아서 해달라는 것은 주방장 추천메뉴 같은 것인데, 믿을 만한 쉐프가 알아서 만들어준 음식이 가장 맛있을 거라는 믿음처럼 필자와 필자의 수술에 대한 신뢰는 고마운 일이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환자가 어떤 정도의 입매와 턱끝을 더 좋아할지 오히려 필자가 예측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이럴 때 집도의로서 가장 선호하고 추천하는 턱끝 위치가 동양적인 턱끝과 서구적인 턱끝의 중간지점이다. 동서양이 섞인 혼혈의 얼굴이 묘하게 아름다운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그런 기준으로 수술하더라도 미세하게 더 서구적이거나 동양적인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1㎜ 전진, 후진과 같은 수학적인 분석이나 계측보다는 실제로 수술 중에 턱끝의 위치를 조금씩 옮겨가면서 눈으로 확인해서 느낌으로 결정한다. ‘딱, 이 지점이 예쁘네. 환자가 좋아하겠군' 이라는 혼잣말이 나올 때까지 말이다.

다비드나 피에타와 같은 불멸의 조각상을 남긴 화가이자 건축가,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늘 천사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돌출입수술과 턱끝수술을 한다.

그러나 대리석과 달리 인체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깎아낼 수도 없다. 해부학이 허용해주는 안전한 범위에서만 군더더기 없이 최선의 조각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점수를 중요시하는 필자의 수술이 즐겁지만 한편 고독한 이유다.

 

한상백 서울제일성형외과 원장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11.30  08: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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