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은 이제 그만할 때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가 업황 악화 속 보험사들의 출혈경쟁을 두고 개탄했다. 보험사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엔 손해율이 높아 취급하지 않던 담보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으며, 고객 몰이를 위한 절판마케팅은 이제 일상이 된 모양새다.

설계사 유치전도 뜨겁다. 신인 설계사 모집을 위해 수수료 체제를 개편하는가 하면, 법인보험대리점(GA)에 파격적인 시책을 내세워 무리한 사업비를 지출하기도 했다.

포화된 보험시장 속 고객 유치가 쉽지 않은 실정에서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보험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수익성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두고 가타부타 할 순 없다.

문제는 보험사들의 실적도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점이다. 생보사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2조1283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204억원 대비 32.4% 감소했다. 손보사 상반기 순이익 역시 1조48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1069억원 보다 29.5% 줄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들의 경우 순익이 개선된 경우도 있지만, 이는 일회성 요인이거나 마른수건을 짜내듯 비용을 절감한 효과다. 영업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보사는 장기보험의 판매사업비 지출 등으로 보험영업손실액이 크게 늘었다. 올 상반기 손보사 보험영업손실액은 2조2585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1132억원 대비103% 급증했다. 같은 기간 생보사 역시 보험영업손실액이 전년 동기보다 4540억원 확대됐다.

향후 전망은 더욱 어둡다. 보험업계는 저금리‧고령화‧저성장 늪에 빠진 상태다.

생보사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금리 역마진 리스크로 자본 부담이 크다. 저금리로 인해 자산운용수익률은 감소하고 있는데, 과거 예정이율은 고금리로 책정돼있어 이차역마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저출산 기조에 생보사들의 실적을 견인하던 종신보험 판매 동력도 떨어지고 있다.

손보사는 국민보험으로 일컬어지는 자동차보험‧실손의료보험 손해율에 골치다. 지난달 주요 손보사들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100%에 달했다. 업계에서 보는 적정 손해율 77~78%를 훌쩍 넘은 것이다. 실손보험 손해율도 최근 130%를 넘겼다.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의 올해 연간 적자규모는 각각 1조원, 1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보험소비자들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겠다. 보험사들의 출혈경쟁에 상품 보장성이 좋아지고 있으며, 손해율이 높다는 점 역시 그만큼 가입자들에게 보험금 지급이 많이 이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악순환의 시발점이다. 선량한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험업계에 긴 겨울이 오고 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대사가 떠오른다. “겨울이 오고 있다. 서로 싸울 때가 아니다. 다 같이 힘을 합쳐 백귀들을 물리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