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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진의 중년톡 ‘뒤돌아보는 시선’] "‘천천히’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하루에 손 글씨를 얼마나 쓰는지요?

대부분 손 글씨 쓸 일이 별로 없는 요즘인데,

늦은 나이에 공부하다보니 나는 제법 많이 쓰고 있습니다.

같이 강의 듣는 아주 어린 후배가 내 글씨가 악필이라고 놀려 댑니다.

생긴 모습이나 옷 입고 다니는 것이 모범생 이미지라서, 그거라도 개성 있게 하는 거라고

우기고, 또 옛날 자기소개서를 손 글씨로 써서 대기업에 합격한 전력을 얘기해도

시큰둥해 합니다.

내 경우도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글자를 찍고 있는 일이 많으니, 시간이 더 지난다 해도

글씨를 잘 쓸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데, 만회할 길이 없는 건가요?

최근 태안에 국립 해양 유물 전시관이 개관되었는데, 800년 전의 고려 선박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시관 개관 소식과 함께 박물관 학예사들이 서해에서 난파한 고려 선박들로부터 나온 유물들, 특히 목간을 해독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얘기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고려시대 난파선이 서해에서 발견되었고, 선박마다 나무에 글을 적은 목간이 나왔답니다.

다른 유물들과 함께 그 글씨를 해독해야만 사연을 추정하고,

제대로 역사를 복원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오랜 시간 바다 뻘밭에 묻혀있어 글씨가 지워지거나 흐려진 거죠.

그나마 남은 글씨도 악필인 경우는 판독이 어려웠다는 겁니다.

바로 그 대목을 듣는 순간 한 대 느낌과 함께

앞으로라도 제대로 글씨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고치려니 내 경우, 왜 악필이 되었는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건 단연 급한 마음에서였습니다.

지금도 외출 준비를 급하게라도 할라치면, 가방에 지퍼를 채우다 걸려 애를 먹거나,

음료수를 먹고는 마개를 급히 막다가 엇갈려 아내가 마무리하며

핀잔을 먹을 때가 많으니까요.

노르웨이 어느 시인의 삶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연이어 형제를 세 명이나 잃고, 깊은 우울에 빠져 정신병원을 오갔다고 합니다.

그때 그를 살린 건 수많은 책의 독서, 또 원예학교에 입학, 노동을 하면서 시를 쓴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엄청난 정신적 질환의 공격에 속도를 늦추어 책을 읽고, 노동을 하며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도 천천히만 하면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천천히 생각하고, 소리 내며, 글씨를 써보는 겁니다.

악필에서 갑자기 벗어나 예쁜 글씨로의 반짝 변신은 어려울지라도,

다른 사람이 충분히 읽을 수만 있으면 오케이 일듯 합니다.

어디 악필만 그럴까요?

삶의 구석구석이 나아지는 쪽으로 희망이 반짝일 것 같습니다.

오각진 기업인/오화통 작가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11.25  08: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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