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경제 위기가 모든 국가를 공포로 몰아넣던 2008년 10월. 정체불명의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9쪽의 논문을 웹에 공개했다. 그는 논문을 통해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뢰할 수 있어야하지만, 화폐 통화의 역사는 그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하다"며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중앙 집중형 금융권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트코인의 등장이다.

비트코인의 등장과 함께 촉발된 암호화폐, 나아가 다양한 논란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엇갈린 욕망은 '사기'와 '혁명'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전쟁의 패권경쟁적 측면에서 해석하면, 이는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전쟁이다.

▲ 암호화폐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출처=갈무리

혁명, 그리고 고난
캐시리스(현금없는 사회)가 화두로 부상하며 핀테크 시대가 열리는 가운데, 사토시의 후예들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프라인 현금이 필요없다면, 디지털로 행해지는 모든 화폐 단위를 암호화폐로 환치시키면 어떨까. 지금의 핀테크도 모두 각 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한 오프라인 현금, 즉 통화를 바탕으로 하며 이는 곧 중앙은행의 폐혜가 ICT로 영토를 확장한 것일 뿐 진정한 혁명은 아니라는 논리다. "아예 현존하는 화폐를 대체하는 새로운 화폐가 등장하면, 중앙은행 체제의 현 경제구조를 혁신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

두 가지 무기가 있다. 하나는 토큰 이코노미다. 자전거를 공유할 때 돈이나 암호화폐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자전거 공유 플랫폼을 외부에 홍보하거나 혹은 자전거를 이용하며 발생하는 데이터를 플랫폼에 제공해 서비스 고도화에 기여를 할 경우 암호화폐를 무료로 받는 방식, 이를 바탕으로 플랫폼을 더 강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여기서 암호화폐는 화폐라기 보다 '보상이자 재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된다. 돈의 기능을 하면서, 획득하고 쓰는 방식은 다르다. 자연스럽게 암호화폐와 토큰 이코노미로 구축된 생태계는 '마이크로 리코드'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도 보여줄 수 있다. 블록체인 등 탈 중앙화의 개념에서 나온 논리다.

그리고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새로운 꿈을, 현실과 최대한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진행시킬 수 있는 규모의 플랫폼이다. 자체 암호화폐를 바탕으로 플랫폼 내부에서 거래 및 결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존 실물경제와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블록체인 기술로 탈 중앙화 및 마이크로 리코드의 기능을 살리고 토큰 이코노미를 구동하면, 페이스북 내부에서 모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꿈은 아니다.

▲ 리브라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페이스북은 6월 18일 리브라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암호화폐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백서를 발행한 후 출시 시기는 2020년으로 잡았다. 파트너들은 지난 10월 14일 스위스에서 리브라 프로젝트 협정식까지 열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와 바이낸스의 비너스는 모두 스테이블코인이다. 즉, 일정부분 현실경제에 영향을 받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암호화폐라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기들의 거대한 생태계에서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 사실상 '탈'달러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도발에 달러 등 기존 기축통화를 가진 기득권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당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리브라의 존재가 알려지자 7월 12일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가능성에 부정적인 트윗을 남겼다. 그는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면서 “규제없는 암호화폐는 불법적인 활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도 견제하며 "신뢰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트럼프 대통령이 비트코인을 비판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파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가 자금세탁의 원흉이 될 수 있다며 “상용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금세탁은 물론 개인정보보호 및 소비자 보호 등에 있어 문제가 있다”면서 “페이스북이 부작용을 차단할 수 없다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페이스북 리브라는 미 하원의 반대에도 직면했고, 연내 출시가 불투명해졌다. 많은 국가에서 암호화폐 발행에 엄격한 제한을 거는 장면의 연장선이다.

기득권, 즉 제도권이 리브라의 비전을 두고 우려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시장 질서의 교란이다. FATA의 주장처럼 리브라가 자금세탁의 창구로 활용되며 소위 그림자 은행으로 변신할 경우 세계 통화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여기에 이용자 정보 유용 논란에 휘말린 페이스북이 민감한 화폐경제에 진출할 경우 세계 실물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통화의 사유화(私有化)'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페이스북에게 엄청난 통화권력을 내어줄 수 없다는 미 하원 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다만 핵심에는 제도권의 화폐권력 상실에 대한 공포가 더욱 크다. 물론 리브라가 2020년 등장해도 당장 기축통화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되지만, 만일의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23억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통해 기축통화의 가능성을 노리는 것은 제도권 입장에서 공포 그 자체다.

기득권과 비 기득권의 싸움, 결국 국가?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기술전쟁의 최초 불꽃은 한 혁명가의 손에서, 즉 민간의 손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현재의 전쟁은 이제 국가와 국가의 전투로 비화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 리브라의 페이스북이 결국 꺾이고, 그 자리를 국가가 차지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이 유력한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전쟁 플레이어 후보군이다. 당장 중국은 인민은행 주도의 암호화폐 발행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는 암호화폐 상장을 업격하게 제한하는 중국 정부의 특성과도 배치되는 미묘한 지점이다. 미국도 리브라를 막으면서도 국가 차원의 대응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업계에서 보면 이 기술전투가 민간의 영역이 아닌, 국가의 영역에서 벌어지면 더 유리하다. 가뜩이나 암호화폐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증폭되며 투자자들이 떠나는 상황에서, 국가가 이를 맡아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면 시장은 더욱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호화폐와 그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이 중앙 집중형 플랫폼에 대한 반격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기득권에 대한 비기득권의 통렬한 반격 시도도 기존 권력의 체계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