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 후, 글로벌 경제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전면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숙명적으로 중국과 승부를 벌이게 된다. 그 이면에는 기술 패권경쟁이 있다.

▲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초기 해외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압박했다. 자국 일자리 창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가 애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이폰 생산 시설의 미국 이전을 집요하게 주장하며 애플을 흔들었다.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는 기업에는 세금 폭탄을 운운하며 압박했다. 다음 타깃은 미국에서 사업하는 외국기업이었다. 미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손해를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공장 건설에 나서기도 했다.

▲ 삼성전자 미국 공장. 출처=삼성

다만 트럼트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로부터 짝퉁 판매 악덕 시장으로 지정되고, 중국 정부가 미국 GM 합작법인인 SAIC GM에 2억100만위안의 과징금을 매기는 등 신경전이 일부 벌어졌으나 큰 틀에서 문제는 없어보였다. 미국에 진출한 100여개 중국 기업들은 2017년 2월2일 뉴욕 한복판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대형 광고판을 전시했다. 광고판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祝特朗普和美國人民新春快樂)'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2018년 초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향한 관세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등 전방위적인 난타전에 빌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말 G20 회의를 기점으로 두 수퍼파워는 잠시 화해하기도 했으나 직후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캐나다 당국에 전격 체포되며 분위기는 험악하게 돌아갔다. 미국은 중국이 화웨이를 통해 백도어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국의 안보를 위해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사이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최근 두 수퍼파워는 다시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 몇 차례 협상이 롤러코스터를 탄 상태에서 '일단 확전을 자제해야 한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아직은 100% 장담할 수 없지만 미중 무역전쟁도 소강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 때 두 수퍼파워의 전투가 무역은 물론 화폐분야로 옮겨가며 확전양상을 보였으나 간신히 수습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잔불은 여전하다.

화웨이 전쟁
미중 경제전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이면에 깔린 기술전쟁의 흐름을 간파해야 한다. 즉, 두 수퍼파워의 격돌은 단순히 상대방 국가의 경제를 꺾는다는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더 내밀한 기술굴기의 향배에 있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의 기술굴기를 미국이 꺾겠다는 의지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18년 초 미중 경제전쟁을 언급하며 "미국의 조치가 중국의 산업 진흥책인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정조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지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제조 2025는 중국 국무원이 2015년 양회를 통해 발표한 개념이다. 총 3단계로 이어진 중국 제조업 발전 계획이자 국가 혁신 계획으로 볼 수 있다.

1단계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양적인 제조강국에서 벗어나 질적인 스마트 제조 플랫폼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제조국가에서 스마트 팩토리 등 자동화, 인공지능 전략을 구사해 제조 인프라를 개선하는 방향이다. 2단계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글로벌 스마트 제조 시장에서 최소한 중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며 3단계는 2036년부터 2045년까지 글로벌 무대를 석권하는 것이다. 중국은 스마트제조 2025를 위해 9개의 세부목표를 세웠다. 제조업 혁신력을 제고하고 IT기술과 제조업의 융합, 친환경 제조업 육성 등이 포함됐다. 10대 전략사업은 IT와 로봇, 에너지, 스마트팜 등 미래IT기술을 총망라하며 5대 중점 프로젝트를 통해 큰 그림을 그렸다.

중국 제조 2025의 핵심이자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이 바로 화웨이다. 통신 네트워크의 강자이자 글로벌 ICT 전자 업계의 큰 손인 화웨이는 그 자체로 '중국의 비상'을 상징하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았다.

그 압박의 역사는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미국 하원은 이미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들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한편, 미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상태였다. 그 연장선에서 미중 경제전쟁이 터지자 말 그대로 화웨이는 위기의 연속으로 몰렸다. 미국은 화웨이와 자국 기업의 거래에 규제를 두기 시작했으며, 이는 당장 화웨이에게 타격으로 돌아왔다. 현재 구글 안드로이드가 화웨이에 제공되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두고 북한과 이란에 통신장비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독재정권에 대한 부역행위라는 주장이 나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월 화웨이가 북한의 3G 통신망 구축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최근 미 국무부는 이를 재차 확인하며 화웨이에 대한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소리는 미 국무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 화웨이가 여전히 이란과 북한의 통신 네트워크 지원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결국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국가 보안에 균열이 간다는 논리가 나온다.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이며, 런청페이 회장의 지분이 1%에 불과할 정도로 소유 구조가 독특하다. 대부분의 지분을 '화웨이 노동자'로 명시된 이들이 확보하고 있는데 그 뒷배경이 중국 정부라는 말이 있다. 이사회는 공개되지 않고 주주 정보도 베일에 쌓여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인민해방군 출신이어서 이른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풀면 곤란하며, 화웨이를 '위험한 경쟁자'라고 지목한 이유다.

그러나 화웨이의 '스파이' 혐의가 입증되려면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타국의 정보 수집을 위해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화웨이 특유의 비밀스러운 지분구조로 일부 설득력을 가진다. 후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다. 화웨이는 "우리가 정보를 탈취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최근 화웨이 이슈는 다소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미국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으나 아시아와 유럽에서 5G 영토를 무난하게 넓히고 있으며,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의 견제에 맞서는 주도권을 쥐었다는 말이 나온다.

먼저 유화책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지난 9월 10일(현지시간) 미국의 뉴욕타임스 및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은 물론 서방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우리의 5G 기술과 노하우를 전면 개방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웨이 5G 플랫폼 전체의 사용권을 판매할 수 있다"면서 사실상 자사의 모든 것을 개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중 경제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최고조로 올라가고,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가 "우리를 믿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자사의 모든 핵심 기술을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화웨이는 자사의 지배구조를 상세히 설명해 중국 정부와의 연관성을 털어내는 한편 사이버 보안 문제를 공동으로 대응하는 국제 협약인 '파리 콜(Paris Call)'에 가입하는 성의까지 보인 상태다. 2018년 11월 프랑스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파리 콜은 사이버 보안을 위해 정부, 기관, 기업 등이 협업할 것을 약속하는 선언이다.

최근 미중 경제전쟁이 사실상 중국의 판정승으로 흘러가자 화웨이가 일부 강경책을 쓰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미 상무부는 17일(현지시간)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 제한 조치를 90일 유예했다. 사실상 화웨이에 대한 제제를 완화하는 제스쳐다. 그러나 화웨이는 이를 두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미 상무부의 결단이 화웨이와의 화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미국 기업의 편의를 봐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판단이 깔린 분위기다.

화웨이는 "미 상무부의 이번 임시 유예 기간 연장 조치가 화웨이 비즈니스에 어떠한 방향으로든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조치도 화웨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변화된 것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화웨이와 선라이즈가 만났다. 출처=화웨이

화웨이는 이어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 목록에 추가하는 것이 화웨이보다 미국에 더욱 큰 피해를 끼친다고 이미 오랫동안 말씀드리고 있다"면서 "이 결정으로 화웨이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기업들은 중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으며, 이미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한 기존의 협력은 중단됐고, 상호 신뢰관계 또한 약화됐다"고 꼬집었다. 화웨이는 마지막으로 "부당한 대우를 종식시키고, 거래 제한 기업 목록에서 화웨이를 제외할 것을 미국 정부에 요청하는 바이다"고 말했다.

기술전쟁은 국가의 충돌 대리인?
미중 경제전쟁의 핵심이 기술패권을 둘러싼 충돌로 해석되는 가운데, 일단 전체 경제전쟁에서는 중국이 승기를 잡는 분위기다. 여기에 중국의 기술굴기도 일부 성공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규제 완화에도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화웨이의 행보가 단적인 사례다.

중국의 기술굴기가 여전하다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벌어진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이 논의 아젠다로 원했던 중국 제조 2025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이는 결국 중국의 뜻대로 로드맵이 진행될 수 있도록 미국이 현안에서 한 발 물러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 때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경계하려 푸젠진화의 D램 생산을 막기도 했으나, 중국의 반도체 본능은 여전히 강하다는 평가다. 당장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7일 중국이 34조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영 담배회사 및 개발은행이 참여한 본 반도체 펀드는 액수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2개 라인을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다. WSJ는 이를 두고 “중국의 반도체 군자금”이라고 표현했다.

5G를 넘어 6G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행보도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6G 연구개발에 돌입하는 한편 칩 설계 및 컴퓨팅 파워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 3일에는 국가 6G 이동통신 기술 연구 업무 개시 선포식까지 열었다. 중국 과학기술부를 중심으로 중국과학원 등 많은 관련 기관들이 6G 기술개발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 골자다. 국가 6G 연구개발 업무팀과 전문가팀이 발족했으며, 이들은 사실상 중국의 6G 선봉장으로 여겨진다.

한편 업계에서는 미중 경제전쟁의 이면에 있는 기술전쟁을 두고 '국가의 대결에 기술 경쟁력이 무기화된 사례'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백도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까지 막으며 강공모드를 펴기에는, 미국 경제계가 받는 압박이 너무 큰 것이 사실이다. 미 상무부가 계속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유예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화웨이에 대한 규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기술'을 일종의 무기화, 전략화 시키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벌어지는 기술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