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국내 ICT 업계에서 합종연횡은 물론, 하나의 진영을 이뤘던 이들이 갈라져 새로운 도전을 타진하는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치열한 비즈니스의 세계. 먼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장면을 살펴보자. 5부작이다.

▲ T맵 택시가 보인다. 출처=SKT

SKT와 카카오의 '브로맨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지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충돌해왔다. 특히 SK텔레콤이 4G 시절부터 탈통신 전략을 구사하며 ICT 서비스에 관심을 두자 카카오와의 충돌지점은 더욱 늘어났다. 카카오톡의 등장으로 문자메시지의 쇠락을 경험했던 순간부터, SK텔레콤과 카카오의 관계는 원만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충돌지점은 모빌리티였다.

카카오는 내비게이션 스타트업인 김기사의 록앤올을 인수해 카카오내비를 완성했고, 이를 카카오 모빌리티로 확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SK플래닛과 충돌한 전적이 있다. 당시 록앤올이 T맵을 서비스하던 SK플래닛의 데이터베이스를 탈취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SK플래닛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했다. 2015년 10월 SK플래닛은 록앤올을 상대로 T맵 지식재산권 침해 중단을 요청하는 민사소송까지 낸 바 있다.

▲ SK플래닛과 록앤올의 분쟁이 벌어진 바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SK텔레콤과 카카오의 직접적인 모빌리티 충돌은 최근에 벌어졌다.

현재 국토교통부의 플랫폼 택시 로드맵이 국회 입법 절차를 시작한 가운데 카카오 모빌리티는 카풀 논쟁을 거친 후 택시업계와 협력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는 SK텔레콤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카카오 모빌리티가 택시업계와 만나기 전부터 이미 업계와 협력해 T맵택시의 로드맵을 키워온 바 있다. 

한 때 카카오 모빌리티가 카풀 로드맵을 가동하자 택시업계가 반발했을 때, SK텔레콤 T맵직원들이 택시업계의 시위현장에 나타나 자사 홍보 전단지를 돌린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역대급 사건이다. 두 회사는 카 인포테인먼트 지점에서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음원 플랫폼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2005년 당시 국내 최대 음반사인 서울음반사를 인수하며 음반 시장에 진입한 바 있다. 이후 음반 시장이 음원 스트리밍 시장으로 변하며 서울음반사는 로엔엔터테인먼트(로엔)로 사명이 변경된 상태에서 SK플래닛의 자회사가 된다.

로엔의 멜론은 한 때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의 절반을 장악할정도로 승승장구했으나 SK텔레콤은 2013년 로엔 지분 61.4%를 2972억원에 홍콩의 사모펀드인 스타인베스트홀딩스로 넘기고 말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분 규제에 걸려 로엔의 지분을 100% 가지거나 모두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고심을 거듭한 후 지분 매각을 선택했다. 이후 카카오가 로엔을 2016년 인수한 후 사명까지 카카오M으로 바꾸는 한편 국내 스트리밍 시장의 존재감을 강화하자, SK텔레콤은 올해 초 플로를 런칭하며 맞불을 놨다. 최근 플로는 바이럴 광고 영상을 통해 멜론을 '디스'하는 장면까지 연출하며 한 때 자사의 품에 안겼던 멜론을 공략하는 중이다.

콘텐츠도 접점이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텐센트와 제휴를 맺는 한편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 개척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지상파와 함께 웨이브 OTT를 출범하며 기세를 올리는 중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카카오의 핵심 경쟁력인 모바일 메신저에서, SK텔레콤은 다른 통신사들과 함께 RCS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자체 모바일 메신저까지 내놨다.

최근에는 제로레이팅 및 네트워크 슬라이스 등 통신사의 콘텐츠 플랫폼 전략이 기존 콘텐츠 및 플랫폼 전략과 충돌하는 일도 잦다. CP와 ISP의 충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SK텔레콤과 카카오도 ‘마냥 편한 사이’는 아니다. 나아가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에서도 SK텔레콤의 누구와 카카오의 카카오미니는 엄연한 경쟁자다.

이렇듯 다양한 영역에서 충돌을 거듭하던 두 기업은, 지난달 28일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카카오와 SK텔레콤은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약 3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상호 교환한다. 카카오는 SK텔레콤에게 신주를 발행하고, SK텔레콤은 자사주를 카카오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카카오는 SK텔레콤 지분 1.6%, SK텔레콤은 카카오 지분 2.5%를 보유하게 된다.

SK텔레콤 유영상 사업부장은 "카카오와의 이번 파트너십은 미래 ICT의 핵심이 될 5G, 모바일 플랫폼 분야의 대표 기업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 ICT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국내 ICT 산업 전반과 고객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국내 ICT 기술과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카카오 여민수 공동대표는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국내 ICT 대표기업인 양사가 글로벌 업체와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ICT 생태계 혁신을 가져올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 SKT와 카카오가 만났다. 출처=카카오

"너 때문에 아팠어, 그래도..난 너가 좋아!"
네이버와 야후재팬의 극적인 만남도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격이다.

네이버는 국내 IT 업계에서 포털의 왕자로 군림하며 승승장구했으나, 모바일 시장에서는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한 때 이해진 창업주가 "네이버는 모바일에서 아무것도 아니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네이버는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카카오톡에 완전히 내어준 상태에서 네이버톡을 출시하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완전히' 잊혀졌다.

결국 카카오톡이 점령한 국내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타깃은 일본. 네이버는 당장 모바일로 현지 시장을 공략하기보다 일단 '내가 잘 하는 것'으로 승부를 거는 로드맵을 택했다. 한게임 인수 직후인 2000년 9월 일본에 한게임재팬을 설립한 후 네이버재팬까지 만들어 2001년 현지 검색 사업을 시작한다.

결과는 참패였다. 일본인은 갑자기 나타난 네이버 검색 포털을 믿지 않았고, 네이버도 국내에서 보여주던 강력한 위력을 일본에서 재연하지 못했다. 1위 검색 포털인 야후재팬의 벽은 높았고, 네이버는 2005년 일본 검색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대신 2006년 검색엔진 첫눈 인수를 바탕으로 확보한 개발자 신중호가 2008년 일본에 투입된다. 네이버의 강점인 검색 인프라를 완전히 버리고, 전혀 새로운 접근으로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선 셈이다. 그 결과가 라인이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일본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석권했고, 이를 태국과 대만 등 다양한 나라로 확산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이어 간편결제 플랫폼인 라인페이를 가동하며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야후재팬과 만났다. 실제로 네이버는 18일 자회사 라인이 야후재팬, 금융지주회사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Z홀딩스와 경영통합(business integration)에 돌입한다고 공시했다. 라인과 Z홀딩스의 모회사인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주식회사가 50:50으로 조인트벤처(JV, Joint Venture)를 만들어 Z홀딩스의 공동 최대 주주가 된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일본 진출 당시 자사를 패퇴시켰던 야후재팬과 다시 만나 새로운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됐다는 상징성이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됐다.

▲ 라인이 가동되고 있다. 출처=갈무리

"죽도록 미웠다, 그러나..사랑한다!"
지상파 방송사와 SK텔레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최초 두 진영은 적이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직접수신율이 바닥을 기는 상태에서, 케이블과 함께 통신사의 IPTV는 반드시 꺾어야 하는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은 2015년 당시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카드를 선택한다. 방통융합의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구축한다는 출사표다.

지상파는 맹렬하게 반대했다. 당장 한국방송협회는 2015년 12월 1일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합병을 위한 인가신청서를 제출하자 "재벌기업의 방송시장 독과점 방지를 위한 엄정한 대책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협회는 "방송 산업은 경제적 효율성보다 공익성·다양성 등의 공공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 "방송과 인터넷, 케이블까지 몸집을 불린 SK텔레콤과 이에 맞선 경쟁사들이 지금보다 더 노골적으로 국내 방송 콘텐츠를 마케팅 수단으로만 이용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6년 2월에도 성명을 내어 공세의 수위를 올렸다. 협회는 "자사 이익을 안정적으로 극대화하려는 재계 3위 거대 통신재벌의 M&A 머니게임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정부는 이 점을 명심하고 보정자료 요구 절차 등을 활용해 1년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사를 진행하여, 이번 인수합병을 전면 불허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후로도 협회는 지속적으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시도를 규탄했고, 심지어 KBS 및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저녁 황금시간대 뉴스에 SK텔레콤은 물론 SK그룹 전체를 겨냥한 비판보도까지 쏟아냈다. 결국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 인수를 포기했다.

두 진영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올해 1월 깜짝뉴스가 등장했다. 그토록 SK텔레콤을 '저주'하던 지상파 사장들이 나란히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만나 미디어 협력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통합 OTT 웨이브라는 결실을 맺었다. SK텔레콤 산하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와 지상파 OTT인 푹과 연합하는 모델이다.

지난 9월 웨이브 출범식 당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지상파 3사 사장들은 화기애애한 얼굴로 덕담을 나눴다. 양승동 KBS 사장은 “지난 1월 지상파 방송사와 SK텔레콤이 업무협약을 맺었고 8개월만에 웨이브 출범에 나서게 됐다”면서 "사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웨이브 출범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고 말했다. 최승호 MBC 사장은 “지상파와 SK텔레콤이 OTT를 위해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면서도 "자본력과 마케팅 능력을 가진 SK텔레콤과 협력해 미래를 향한 모험을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정훈 SBS 사장은 “한류라는 파도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웨이브는 남이 만든 파도에 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한류를 다시 만드는 파도 제조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반도체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콘텐츠 역량도 매우 중요하고 강하다”면서 “SK텔레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됐다.

▲ 웨이브가 가동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양다리지만..이런 나라도 사랑해줄래?"
넷플릭스와 CJ ENM의 만남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는 21일 CJ ENM 및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과 함께 향후 수년 간 콘텐츠 제작 및 글로벌 유통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이번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2020년부터 3년간에 걸쳐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들이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며, 넷플릭스는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하고 CJ ENM이 유통권을 보유한 한국 콘텐츠 일부를 전 세계에 선보이는 권리를 보유하게 된다. 3년간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하는 콘텐츠는 넷플릭스에 서비스되며, 넷플릭스는 스튜디오드래곤의 3대 주주가 된다.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는 '묘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국내 OTT 시장은 넷플릭스와 함께 토종 OTT인 웨이브, 전통의 왓챠 등이 경쟁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CJ ENM은 JTBC와 만나 통합 OTT 구성을 별도로 논의하고 있다. CJ ENM과 넷플릭스는 OTT 시장 측면에서는 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CJ ENM은 콘텐츠적 측면의 협력을 위해 넷플릭스와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됐다. 다만 CJ ENM 입장에서는 넷플릭스가 미래에는 적이자 동지가 되는 미묘한 상황이다.

"우리, 잘 해보자"

카카오 모빌리티는 한 때 카풀 논쟁을 거치며 택시업계와 충돌을 거듭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사회적 대타협 후 7월 국토부 주관의 플랫폼 택시 로드맵이 나오면서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치열하게 싸웠으나, 지금은 친구가 됐다. 카카오는 아예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택시회사가 되어 내부로부터의 변혁이라는 큰 꿈까지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