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31일 SEA GUAIBA호 명명식의 기념촬영. 추성엽 팬오션 대표(왼쪽에서 세번째) 및 SEA GUAIBA호의 대모인 Vale의 Mrs. Michelle Gonzalez(오른쪽에서 세번째). 출처=팬오션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팬오션이 2015년 하림그룹에 인수된 후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영업익을 달성해 시선을 끈다. 이는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깜짝 성적으로, 최근 악화되고 있는 하림그룹의 재무악화를 방어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32분기 연속 흑자…BDI·환율 상승 덕분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팬오션은 올 3분기 매출 6822억원, 영업이익 634억원을 기록해 3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6% 하락한 반면 영업이익은 10.2% 증가했다. 전분기와 비교할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8%, 25.5%씩 상승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증권사들의 전망치(608억원)를 웃돈 ‘깜짝 실적’으로, 2015년 하림그룹이 팬오션을 인수한 이래 분기별로는 가장 좋은 성적이다. 

발틱운임지수(BDI)의 상승과 우호적 환율이 실적 요인으로 꼽힌다. 팬오션과 같은 벌크선사들은 BDI에 매출이 연동되는 구조다. BDI가 하락하면 매출이 줄어들고 상승하면 매출이 증가한다. 수익성도 BDI 지수와 연동되는 측면이 강하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3분기 평균 BDI 운임은 전년 동기 대비 26% 상승한 2030포인트를 기록했다. 분기별 BDI지수가 2000선을 넘어선 것은 2010년 이래 처음이다. 특히 지난 9월 4일엔 2518까지 피솟아 2010년 11월 3일(2542)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벌크선 영업이익률도 11.5%로 전년에 비해 1.3포인트(p) 개선됐다. 

연초 댐 붕괴로 철광석 생산에 차질을 입었던 브라질의 철광석 생산이 정상화되며 철광석 물동량이 증가한데다, 중국과 인도의 석탄 수입량 증가가 주된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중국이 남미산 곡물 수요 확보에 나서며 대서양 중심 선박 수요 증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년 동기 대비 껑충 뛰어 오른 환율도 실적에 기여했다. 해운업종은 원화가 약세일 때 수혜를 받는 대표적 업종으로 꼽힌다. 3분기 말 달러당 원화가치는 1196.4원으로 작년 대비 7.8% 하락했다. 

아울러 미중 무역분쟁 지속을 비롯한 무역 환경 악화에 따라 물동량이 위축됐음에도 불구, 남미지역 주요 장기운송계약이 정상 수행되면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창출한 점도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서양 수역을 중심으로 한 오픈 선대를 효율적으로 운영한 점도 수익 증대로 이어졌다. 

▲ 팬오션의 경영실적 추이. 출처=팬오션

그룹 내 ‘황금알 낳는 거위’로… 비결은 ‘장기운송계약’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에 힘입어 그룹에서 차지하는 팬오션의 기여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대규모기업집단 현황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팬오션 매출액은 2조3375억원(31.9%)으로 하림그룹 계열사 가운데 매출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 측면에서도 팬오션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기준 팬오션의 영업이익은 2030억원으로 하림그룹의 53.4%를 기록했다. 그룹의 간판 사업으로 불리는 닭고기 생산업체 하림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9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할 경우 225배나 높다. 

당기순이익으로 보면 그룹 내 팬오션의 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하림그룹이 지난해 기록한 계열사 전체 당기순이익 2391억원 가운데 60.3%(1442억원)가 팬오션에서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16년 40.5%였던 팬오션의 그룹 EBIT(금리·세전 손익) 기여도는 2017년 44.6%, 지난해 60%까지 치솟았다. 팬오션이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STX그룹의 계열사였던 팬오션은 산업 호황기에 계약한 장기용선 선박에 대한 비용지불이 어려워지면서 지난 2013년 회생절차가 개시되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2015년 하림그룹에 인수되면서 모회사의 곡물유통업을 담당, 같은 해 7월 법정관리를 공식 종결했다. 

2013년 이후 벌크선 운임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시황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 팬오션은 빠르게 영업정상화를 이뤄냈다. 

▲ 하림그룹 사업부문별 비중. 출처=NICE신용평가

2014년 이후 3000억원대의 EBIT를 꾸준히 거뒀고 조정영업현금흐름(OCF)도 2016년 2539억원에서 지난해 2718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1분기 EBIT는 917억원, 조정영업현금흐름은 954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증가했다. 연결기준 순차입금/EBIT는 2017년부터 3배에 못 미치면서 신용등급 상향 요건까지 충족했다.

부채비율도 꾸준히 줄고 있다. 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2013년 부채비율 1925%, 순차입금비율 988%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 220.4%, 하림그룹에 편입된 2015년 말에는 회생채무 조기 변제 및 증자를 통해 77.4%로 급감, 지난해에는 55%까지 떨어지며 해운업계에서 부채부담이 가장 적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차입금 규모도 2013년 2조5600억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1조1300억원까지 1조원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팬오션의 신용등급은 해운업계에서 가장 높은 A-(안정적)을 기록했다. 

그룹 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환골탈태한 팬오션은 올 6월 6년만에 자본시장에 노크를 두드렸다. 당시 1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연 2.3% 금리에 발행한 것. 팬오션은 애초 500억원 규모로 계획했으나 수요예측에서 모집금액의 8배에 가까운 기관 수요가 몰려 발행금액을 1000억원으로 늘렸다. 

팬오션 실적의 일등공신은 장기운송계약(CVC)으로 꼽힌다. 장기운송계약은 고정운임이 적용돼 수익성이 좋다. 아울러 글로벌 해운업계의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적인 매출 성장을 이끌 수도 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팬오션의 장기화물운송계약 수행 현황을 보면 Vale 8척, 발전자회사 7척, Suzano 8척, 포스코 4척, 현대제철 3척 총 30척으로 등으로 잔여기간은 약 14년에 달한다. 

4Q영향 제한적… 내년도 ‘호실적’ 기대 

최근 BDI 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팬오션의 성장 여력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4분기는 물론 내년도 전망도 밝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BDI는 올 9월 2518까지 치솟아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달 20일 기준 BDI는 1260까지 하락, 연중 최고치 보다 2배가량 하락했다. 철강 가격 인상 실패로 중국 철강 기업 고로가동률이 하락했고 중국 정부의 석탄 수입 제한 정책으로 4분기 석탄 수요가 둔화된 게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연말까지 BDI 약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로 인한 팬오션의 부담은 제한적 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운송계약 선박이 넉넉해 BDI와 관계없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팬오션의 장기운송계약 선박은 올 3분기 기준 30척이고, 2020년 4분기까지 39척에 달한다. 특히, 이는 대부분 대형선으로 척당 이익도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내년도 전망도 밝다. 우선 팬오션의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BDI의 상승이 점쳐진다. 

한국해양진흥공사의 ‘2020년 해운 시황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BDI는 올해 1349포인트에서 내년엔 6.7% 개선된 1440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동량과 선박 공급량 수급 비율은 올해와 비슷하나 그간 주춤했던 브라질 철광석 수출이 정상화되고 시황도 올 하반기부터 서서히 회복되면서 내년에는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 출처=팬오션

아울러 내년부터 선박들은 저유황유를 쓰거나 탈황장치(스크러버)를 부착해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도록 하는 IMO의 규제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개조 비용이 많이 들거나 연비가 떨어지는 노후 선박은 차라리 폐선하는 것이 나아 BDI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소 선사들이 환경 규제에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 대형 선사인 팬오션은 오히려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팬오션은 저유황연료유(LSFO)를 사용하거나, 스크러버(탈황설비)를 장착해 IMO2020에 대응하고 있다. 보유 사선 85척 가운데 17척이 스크러버가 장착돼 있으며, 도입 예정 선박은 총 17척 가운데 11척에 스크러버를 장착했다.

여기에 미중 무역갈등 완화, 영국의 브렉시트 연기 등으로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줄고 있다는 점도 팬오션에는 호재다. 무역갈등이 합의점을 찾는 경우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일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2019년 4분기~2020년 1분기는 해상 벙커유 가격 및 스크러버 설치 선박에 대한 검증 기간”이라며 “해당 기간 동안 선사와 화주 모두 용선 및 화물 운임료 산정에 있어서의 불확실성으로 영업활동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나, IMO의 황산함유량 규제가 발효되는 2020년 1월부터 점차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IMO 2020 규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용 선복량 축소, 노후선박 폐선 증가 등 공급조절 효과로 벌크시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존 전망엔 변함이 없다"며 "내년 패오션 8척의 장기운송계약 선박들도 순차적으로 운항을 시작하면서 이익개선에 기여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 또한 “2020년 브라질 철광석 수출 회복에 따른 건화물선 해상물동량 증가와 노후 선박들의 해체 가속화로 BDI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말부터 인도받을 예정인 초대형광석운반선(VLOC) 6척을 비롯해 장기화물 운송계약의 본격적인 시행도 매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팬오션 관계자는 신사업계획과 관련 “규제나 사안들이 있는 만큼 경영방침을 안정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며 “특히, 카타르 LNG 프로젝트가 장기운송으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컨소시엄을 꾸리는 등 심도있게 지켜보고 있다. LNG사업 부분을 사업기회 주어질 경우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