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이 돈을 빌리기 쉬운 초저금리 시기에도 기업들은 생각만큼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지 않았다.    출처= Fine Art America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지난 10년 동안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중 하나는 역사상 가장 낮은 초저금리 시기에도 왜 기업들이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들이 있다. 기업들이 싸게 빌린 돈으로 투자 대신 주식매수에 사용했다거나, 주주들이 단기 이익을 선호했다거나, 기업들의 독점적 행태 때문이라거나, CEO들의 탐욕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대부분 틀린 것 같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음 두 가지는 분명하다. 성장 둔화로 인해 제조 기업들에게 새로운 공장을 만드는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유치한 기술 회사들은 정작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싼 돈(저금리 자금)이 기업을 통해 실물 경제로 이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려면, 주식시장의 승자와 패자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경제가 반세기 만에 가장 낮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주주들이 경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혁신적 기술에는 지나칠 정도로 흥분했다. 선진국들의 경제가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그들에게 크게 의존하던 제조업들은 당연히 실적 전망이 나빠졌고 그에 따라 자본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새로운 기술 회사들에게는 현금이 쏟아졌다. 그러나 기술 회사들의 상당 수는 프로그래머, 브랜드 구축, 고객 보조금 등과 같은, 투자로 간주되지 않는 분야에 돈을 썼다.

주식시장에서의 승자들은 주로, 저위험 기업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끄떡없이 걸어갈 수 견고한 운영을 하는 회사들, 그리고 이른 바 FANG으로 불리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들,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FANGs; Facebook, Amazon, Netflix, Google) 같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들이었다.

제조업이나 이런 기술 기업들 모두 자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주주들은 기술 기업들만이 자본을 사용하도록 권장했고, 사실 신기술은 대부분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통 안전한 ‘좋은 실적’ 회사의 주식을 산다. 주주들은 네슬레, 펩시코, 프록터앤갬블 같은 안정적인 회사의 주식을 사는 데 특별한 예지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기대치도 매우 절제적이다. 그러나 이런 ‘실적주’(quality stock)의 매력 중 하나는 그런 회사들은 CEO의 허황된 프로젝트에 주주의 현금을 날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인데, 이는 자본 지출이 낮은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실적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학문적 이론에도 부합된다.

이런 회사의 주주들(그리고 CEO들)은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으면서 순전히 재정적 이익의 목적으로 싼 부채를 이용했다. 이들은 저금리 돈으로 비공개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큰 차익을 챙기거나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특별 배당금을 지급하는 데 사용했다. 그런 다음 이 돈을 다른 주식으로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워렌 버핏의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 투자처럼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크래프트 하인즈는 차입한 돈을 브랜드를 유지하는데 너무 쓰지 않았다. 사실 일반적으로 안전하지만 지루한 느낌을 주는 이런 회사들은 많은 돈을 빌려 투자할 정도의 훌륭한 매력은 갖지 못한다. 게다가 경기 침체 전망은 경기에 민감한 이런 기업들에게 이렇다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반면 ‘성장주’(growth stock)는 이와 정반대다. 성장 기업의 창업자나 최고경영자에게 돈을 주면, 그들은 그것을 사용할 엄청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성장 기업의 매력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런 성장 기업들은 저금리 부채보다는 사모를 통한 자금 조달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일부 성장 회사들은 엄청난 부채를 안기도 했지만 이는 예외에 해당된다.

지난 10년간 성장주의 큰 승자는 FANG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혁신적 기술 회사들이다. 그러나 주주들은 그러는 와중에도 기꺼이 다른 성장 스토리들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가 실물 경제로 빠르게 빠져나갔는데, 그 중 꽤 많은 수가 미국 밖으로 나갔다.

▲ 기술 회사들은 싼 돈보다는 사모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했으며 투자 규모도 크지 않았다.    출처= Business First Online

달러 낭비 측면에서 가장 큰 실수는, 투자자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중국이 잘 나갈 때 중국 기업의 주식에 많은 돈을 쏟아붓도록 장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자 총대를 멨던 CEO들은 쫓겨나고 주가가 폭락하며 투자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싼 돈은 부채로 자금을 조달한 미국의 셰일 업계에도 쏟아져 들어왔지만, 유가가 폭락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투자 자금은 증발했다.

또 대체 에너지, 3D 프린팅, 런던의 고급 아파트, 희토류 금속, 심지어 가장 극단적인 비트코인이 유망하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투자자들은 이 분야에 몰려 일련의 미니붐을 일으켰다.

정치인들은 한탄해 마지 않는 이른 바 단기 한탕주의에서는 이들 중 돈을 버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이런 싼 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한 것의 문제는 미국 공장들의 성장 스토리가 부족한 때문이지, 이익만 좆는 투자자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거시경제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투자 자체만 보면 특별히 낮은 것도 아니다. 3분기에 민간 비주거용 고정자산투자(PNFI) 비중은 국내총생산의 13%를 차지했는데, 이는 경기 사이클의 최고치였던 2014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987년, 1997년, 2007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저금리 시대에도 기업들의 자본 지출이 증가하지 않는 것은 경제 성장이 과거 사이클보다 느려 졌고, 저금리로 인출된 자본들이 투자로 간주되지 않는 곳에 사용되고 있으며, 불투명한 전망으로 제조업들이 시설 투자에 대한 매력을 상실한 데다, 그나마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신기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자본이 적게 들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