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대 정기국회가 12월 10일 끝나는 가운데 IT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기대했던 법안 통과가 줄줄이 좌초되며 위기감마저 높아지고 있다. 여야가 정치적 논란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 반드시 통과되거나 논의되어야 할 법안들이 표류하며 IT 업계에서는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 국회 공전에 IT업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데이터 3법 '삐끗'
신용정보법을 비롯한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일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소방공무원법 등 총 89건의 비쟁점 법안이 우선 처리된 가운데 여야 3당이 합의한 데이터 3법은 상임위 심사 지연으로 본회의 상정이 불발됐다.

사실 이번 국회에서 데이터 3법이 처리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오랜 시간 상임위에 계류돼 왔으나, 14일 모법인 개인정보보호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하며 데이터 3법의 본회의 상정 및 통과에 청신호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은 '불발'이었다.

업계는 실망하고 있다. 데이터 3법을 통해 빅데이터의 유연한 활용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도 이미 미국과 중국 등 데이터 강대국과 비교하면 늦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데이터 3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업계에서는 허탈함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3법은 1년 넘게 계류된 상태였고, 심지어 여야 3당이 모두 본회의 상정을 합의한 법안임에도 결국 국회 문턱에서 미끄러졌다"면서 "이 정도 되면 국회가 대한민국을 IT 후진국으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업계의 분노는 당연하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에 따르면 2017년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 기준, 국내기업의 빅데이터 이용률은 7.5%로 조사대상 63개국 중 56위로 꼴찌 수준이다. 2018년 입법조사처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기관들의 빅데이터 도입률도 10%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는 기어이 '빅데이터로 가는 문'을 닫아버린 셈이다.

▲ 데이터 3법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출처=갈무리

빅데이터가 인공지능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점도 중요하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확보해 분석, 이를 바탕으로 학습을 통해 작동된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의 유연한 활용을 전제한 데이터 3법 국회 통과가 불발되자 업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데이터 3법이 막히며 향후 국내 인공지능 업계도 '골든타임'을 놓칠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미국과 중국, 유럽은 모두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기술력을 높여 다양한 산업 현장에 이입시키는 작업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은 데이터 3법도 처리하지 못해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성장판을 닫아버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네이버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이 만나는 장면을 두고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라인과 야후재팬의 만남은 엄연히 일본을 무대로 벌어지는 상황이고, 이는 결국 '일본 시장을 무대로 아시아에 도전한다'는 전제가 성립된다. 보기에 따라 라인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일본에 빼앗겼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데이터 3법 국회 처리 불발로 업계에서는 "일본에 빼앗겨도 어쩔 수 없다"는 자조섞인 말도 나온다.

물론 데이터 3법 처리를 두고 아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가 이달 말 한 번 더 본회의를 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20대 정기국회가 종료되며 데이터 3법은 폐기된다.

▲ 플랫폼 택시 로드맵에 제동이 걸렸다. 출처=카카오

그렇게 싸웠는데...잠자는 플랫폼 택시
모빌리티 업계와 카카오 모빌리티 등 ICT 업계의 극적인 만남으로 끌어낸 플랫폼 택시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플랫폼 택시를 두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전방위적으로 충돌해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으나, 막상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사장될 위기가 벌어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일 국회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13일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를 규정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상정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 심의 절차를 두고 여야의 이견이 커지며 국토위 전체회의가 아예 파행됐기 때문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소위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택시와 관련된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한편 가맹, 중개, 혁신형 플랫폼 택시 서비스 모델을 구체화시킨 것이 골자다. 요금은 신고제를 기반으로 한다.

박 의원의 개정안에는 VCNC 타다 서비스를 원천차단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타다가 렌터카 유상 운송사업의 근거로 활용한 여객운수법 시행령 18조를 수정해 허용범위를 명확하게 한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18조 1항에 등장하는 운수목적을 관광목적으로 제한해 6시간 이상 대여하는 것을 막는 한편, 반납 장소를 공항과 항만으로 한정한 것은 타다 유사 서비스의 등장까지 막아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사실 박 의원의 법안이 나오기까지 모빌리티 업계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카풀 논쟁으로 촉발된 전투가 플랫폼 택시 로드맵으로 간신히 수렴됐으나, 아직도 이와 관련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의원의 법안이 국토위 전체회의를 넘지 못하자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VCNC는 시간을 벌 수 있을 전망이다. 만약 박 의원의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넘어가면 바로 총선 국면이고, 그러면 VCNC는 타다 서비스의 보강이나 발전적 유지를 시도하는 한편 새로운 전략을 짤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