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 황대영 기자

[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과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초기 대결을 그린 영화가 바로 영화 ‘300’이다. 300은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인의 전사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진격해온 ‘크세르크세스’ 황제를 막는 과정을 그렸다. 이 영화는 픽션이 가미돼 과장된 내용을 품고 있더라도 훌륭한 연출과 생생한 묘사로 당시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300’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물론 영화 300이 아닌 숫자 300이다. 바로 노동정책에서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적용 범위를 놓고 300인 이상 사업장과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구분하는 데 있어서 300이 중요한 척도로 작용되고 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시기부터 진통을 겪은 대한민국은 범위 확장을 놓고 다시 분열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전체로 확산하기 위해 경영 측에 지지를 구하는 모양새지만, 경영 측은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이 적극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을 가로막는 것’ 이라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경기 위축으로 경영계 불안까지 가중돼 합의점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또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규제 등 대내외적인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역효과도 커지고 있다. 앞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올 것이라며 대대적인 선전과 연구개발을 독려하면서도, 뒤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노동정책으로 옥죄는 이중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작은 아이디어로 출발해 ICT 산업 주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편법적인 현상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하청 구조를 띠고 있는 일부 ICT 산업의 프로젝트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영향을 받는 대형 기업이 곧바로 인수하지 않고 프로젝트 완성 후 자회사로 편입하는 기이한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ICT 산업의 경쟁력인 ‘시간’을 맞추기 위함이다. 승자독식 플랫폼 시대에서 늦은 플랫폼 출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 친화적인 정부의 정책이 그렇다고 노동계에서 환영을 받는 것도 아니다. 당장 노동계는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보완책으로 내놓은 특별연장근로 확대 방침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양대 노조는 헌법소원을 비롯한 행정소송까지 추진하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업장을 가려내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정부가 근로자의 삶의 질을 재고하고자 내놓은 주 52시간 근무제는 참극으로 빚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일관적이지 못하고 과정에서 수정, 변경을 거듭하는 정부의 노동정책은 경영계와 노동계 양측의 대립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불신만 키우고 있다. 개인, 기업 성장을 위한 일을 하고, 일을 시킬 때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한 번 만들어진 규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런 규제에 앞서 이해관계자와의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최악의 상황은 아노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