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 김 대리는 말 그대로 모범생이다. 업무에 임하며 절대 흐트러짐이 없고 항상 규격화된 스타일을 고수한다. 한 때 문서결제를 받을 때 부장님 사인이 칸을 넘자 새로 문서를 뽑아 공손히 올릴 정도로 '선을 넘지 않는 남자'다. 아무리 화가나도 큰 소리를 내지않고,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평온한 남자, 그가 바로 김 대리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같은 부서 조 대리가 창백한 얼굴로 출근해 자리에 앉는다. 이상함을 느낀 동료가 다가오자 조 대리가 말한다. "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어"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린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어제 클럽에서 DJ를 봤는데, 글쎄 우리 부장님 이름을 외치더라고" "뭐라고? 어떻게?" "제발 선을 넘지마 이 삐리리 부장아. 언제까지 결제서류 받아야 하냐" 두 사람의 수근거림이 이어지던 순간 김 대리가 나타난다. 언제나처럼 반듯하고 목석같은 사람. 김 대리는 부장님께 올릴 결제서류를 뽑으며 빙긋 웃는다.

▲ 버추얼 소셜 월드가 가동되고 있다. 출처=SKT

버추얼 소셜 월드...VR로 구현한 제2의 인생
SK텔레콤이 19일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현실판을 내놨다. 다수의 VR 이용자들이 시공간을 초월한 가상세계에서 커뮤니티 및 다양한 활동을 통해 타인들과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서비스인 버추얼 소셜 월드(Virtual Social World)를 공식 런칭한다고 발표했다.

본 서비스는 오큘러스나 기어VR을 가지고 있는 고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오큘러스 스토어 내 점프 VR앱을 통해 19일부터 이용 가능하다. 가상 인물(아바타), 가상 공간, 활동이 결합된 초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며 이용자들은 분신 역할을 하는 아바타의 머리 스타일, 눈코입, 복장 등을 꾸미고, 개인 공간인 마이룸(My Room)에서 VR영화를 보거나 동물을 키울 수 있다.

마이룸 외 7개 테마의 가상 공간에서 다양한 이용자와 교류할 수 있으며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클럽룸에서는 김 대리처럼 DJ로 변신해 레게 기반의 펑키리듬에 몸을 맡기며 선을 넘는 부장님을 디스할 수 있고 카페룸에서는 가상의 커피를 앞에 두고 두근두근 소개팅을 할 수도 있다. 공연장에서는 팬미팅이 가능하며 사무실에서는 원격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데 여기서도 회의라니 이건 약간 우려스럽다. 다만 모든 생활을 VR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현실을 VR로 구현하는 셈이다. 가상 세계에서 일어난 활동은 실제 SNS에 공유가 가능하다.

버추얼 소셜 월드의 지향점은 현실의 모든 활동을 가상 세계로 확장하는 데 있다. SK텔레콤은 국내 · 해외 이용자들이 시공간을 넘어 하나의 버추얼 소셜 월드에서 만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에 다국어 지원을 업데이트하고, 글로벌 이용자를 위한 클라우드 서버를 확대할 계획이다. VR을 매개로 세상만물을 모두 품겠다는 야심찬 각오다. 조만간 버추얼 소셜 월드에서 부동산을 판매하는 사업자도 등장할 기세다.

SK텔레콤은 버추얼 소셜 월드 기술을 5년 전부터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가상 세계를 만드는 저작도구 ‘T리얼 플랫폼’ 아바타를 만들고 조종하는 ‘아바타 프레임워크’ 다수 이용자의 활동을 실시간 동기화하는 ‘텔레프레즌스’ 현실적인 가상세계 구현을 위한 ‘실감 렌더링 기술’ 등이 서비스에 적용됐다. SK텔레콤이 관련 분야에 출원한 국내외 특허만 92건에 달한다.

▲ 버추얼 소셜 월드가 가동되고 있다. 출처=SKT

다양한 파트너 눈길
SK텔레콤은 버추얼 소셜 월드를 위해 다수의 파트너들과 연합했다. VR플랫폼 리더인 페이스북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VR기기 오큘러스를 19일 전격 출시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번에 출시한 모델은 스마트폰이나 PC가 필요 없는 독립형 HMD(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오큘러스Go’다. 그 동안 국내 고객들은 오큘러스Go를 구입할 때 해외 배송이나 직구를 이용해야 했지만 이제 모바일T월드 앱이나 SK텔레콤 T월드 대리점 등을 통해 쉽게 구입하고 국내에서 애프터서비스(AS)를 받을 수 있다.

SK텔레콤과 페이스북은 점프VR 등 SK텔레콤의 다양한 VR 서비스를 오큘러스 플랫폼과 연동하는 한편 오큘러스에 있는 양질의 VR 콘텐츠 1000여 개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콜란 시웰(Colan Sewell) 페이스북 VR·AR 디바이스 담당 부사장은 “오큘러스는 몰입 경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디바이스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SKT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더 많은 고객들이 VR 경험을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최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카카오와도 만났다. 가상체험 서비스 개발사 카카오 VX와 18일 VR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장면이 중요하다. 이번 제휴로 양사는 카카오 VX가 개발 중인 카카오프렌즈 IP를 활용 VR게임 ‘프렌즈 VR월드’도 연내 공개하고, 판매를 SK텔레콤이 담당하기로 했다. 또한 SK텔레콤의 버추얼 소셜 월드에 카카오프렌즈와 연결되는 별도의 공간도 새롭게 마련될 예정이다.

게임 및 콘텐츠 업계와 스킨십이 이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현재 게임사 넥슨의 인기게임 카트라이더, 크레이지아케이드, 버블파이터 캐릭터를 활용한 VR게임을 개발 중이다. 이용자들은 테니스, 양궁과 같은 다양한 미니 스포츠 게임을 1인칭 시점에서 즐길 수 있다. 나아가 국내 개발사, 스타트업와 기술 및 서비스 협력을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헤커톤 · 공모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내 VR생태계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SK텔레콤 전진수 5GX서비스사업단장은 “전세계 이용자가 만나는 가상 세계 구축을 위해 국내외 플랫폼 · 콘텐츠 기업과 편대를 구성해 VR시장을 함께 개척하고 있다”며, “‘가상 세계’를 빠르게 확장해 고객들에게 5G시대의 시공간을 초월한 초실감 경험을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버추얼 소셜 월드가 소개되고 있다. 출처=SKT

미묘한 점 세 가지
SK텔레콤의 버추얼 소셜 월드는 VR을 바탕으로 현실의 다양한 지점을 단박에 묶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SNS의 기본정신과 연결되어 있으며, 성공한다면 새로운 ICT 업계의 신기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빠르게 ICT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SK텔레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SK텔레콤은 버추얼 소셜 월드를 공개하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구현했다고 하지만, 해당 영화는 가상현실을 다뤘으나 그 끝은 '현실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로 끝난다. 미묘한 지점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VR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구글이 데이드림을 포기하며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구글은 여전히 VR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기업들이 VR에 투자하고 있다. SK텔레콤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