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 정부가 한국을 대상으로 액체 불화수소(불산액) 수출을 허가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에 이어 액체 불화수소까지 수출길을 열어준 일본의 노림수에 시선이 집중된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을 염두에 둔 행보이면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압박, 나아가 삼성 및 LG, SK의 소재 국산화 작업의 성공에 따른 일본 내부의 초조함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출길 모두 풀렸다...왜?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최근 한국을 대상으로 액체 불화수소 수출길을 전격 열어줬다. 일본의 스텔라케미파의 물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허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지난 7월 수출규제 발표 직후 주문한 물량이다.

업계에서는 일본의 전격적 판단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은 G20 정상회의가 끝난 후 7월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한편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막판까지 두 나라 정재계 인사들이 만나 물밑협상을 벌였으나 한일 경제전쟁의 불길은 막을 수 없었다.

이후로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당장 국내에서는 반일감정이 고조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강하게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초강수를 뒀으며 아예 지소미아 중단을 선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내 대기업들도 비상등이 들어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급거 일본으로 날아가 현지 파트너와 접촉했으며, 컨틴전시 플랜까지 가동했다. 협력사들이 재고 확보와 관련해 보관비 등 비용이 발생할경우 이를 삼성전자가 책임지겠다는 파격적인 결단이다. 나아가 물량이 예상처럼 소진되지 않아도 그 부담은 온전히 삼성전자가 책임지겠다는 뜻도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이 전격적인 금수조치까지 취하지는 않아도,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액체 불화수소 활로를 열어주자 업계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지난 8월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전격 승인했으며 9월에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까지 수출길을 열어준 바 있다.

일본의 이러한 판단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먼저 WTO 분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한일 두 나라는 경제전쟁을 벌이는 한편 WTO를 무대로 여론전에 돌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이 마냥 핵심 소재 수출을 막으면 '수출통제'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압박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소미아가 오는 23일 0시 종료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한국 정부는 일관된 자세로 지소미아 종료에 무게를 두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방한해 방위비분담금과 함께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를 우려하는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고 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소미아 파기에 무게를 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 및 SK, LG 등이 핵심 소재에 있어 국산화에 속속 성공하는 지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입장에서 수출 규제를 통해 한국 기업들의 목줄을 잡으려고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기업들은 오히려 탈일본 로드맵을 적극적으로 가동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렇게 되면 핵심 소재 시장의 강자인 일본이 궁극적으로 공급처를 상실하는 일이 벌어지며, 이는 일본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 이재용 부회장의 현장경영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삼성

방심은 금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핵심 소재 수출길을 열어주고 있으나, 역시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장 이번 액체 불화수소 수출도 한일 경제전쟁 직후인 7월에 신청된 물량이다. 조만간 수출 심사 과정을 90일로 규정한 기일을 넘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일본이 '어쩔 수 없이' 수출길을 열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일본이 '경제전쟁을 당분간 이어갈 것'임을 시사한다는 말이 나온다.

WTO와 지소미아와 관련된 압박 요인도 장기적으로는 단기적인 효과다. 특히 지소미아의 경우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 유용한 카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