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2019년 한 해를 정리하는 뉴스 키워드들을 꼽는다면, 그 중 하나에는 반드시 ‘공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것이다.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논리로 악용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는 공정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 지난 수 십 년 이상의 세월동안 그 중요성이 강조돼왔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와 비교해 지금 살고 있는 사회는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충분히 공정한 사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젖어있었다. 

그러나 올해 우리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여러 사건들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강조된 공정의 가치가 어쩌면 허상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을 마주해야 했다.  

국회의원의 자녀가 공채 합격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아버지인 국회의원과 기업 임원이 연결된 모종의 관계로 대기업에 취직한 정황이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장관급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상위 학교 진학을 위한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부모의 입김이 작용했고 그로 인해 고교생인 자녀가 전문 의학 연구 논문의 제 1저자가 됐다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충격적인 일들은 정치권이라는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글로벌 K-POP 한류의 인기를 확산시키고자 팬들이 직접 차세대 한류를 이끌어 갈 아이돌 그룹들을 선발하는 콘셉트로 많은 관심을 불러 모은 한 음악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책임 프로듀서들은 다수의 연예기획사들에게서 자사 연습생들을 데뷔시켜 주는 조건으로 수 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 대의 유흥을 접대 받고 최종 투표결과를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조작했다. 팬들을 통한 의문 제기는 경찰 조사까지 이어졌고 결국 그 프로듀서들은 경찰에 체포됐다. 

사건들의 경과나 형태는 다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건을 일으킨 주체들은 하나같이 각자의 사회적 입지가 가진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악용해 공정함의 가치를 완전히 짓밟음과 동시에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수많은 이들의 희망을 빼앗았다는 점이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낙타의 심정으로 대기업 입사를 위해 인생을 걸다시피 하는 청년의 노력은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이의 혈연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것이 됐다. 의학 연구원이 되기 위해 밤낮을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다양한 노력으로 자신의 스펙을 꾸준히 쌓아 온 청소년의 시간 투자는 장관 아버지와 대학교수 어머니를 둔 이의 혈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것이 됐다. 

미래 K-POP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수년간의 고된 연습생 생활을 견디며 땀과 눈물을 흘려 온 소년·소녀들의 노력은 방송국 PD에게 뇌물을 찔러 줄 여유가 있는 연예기획사의 재력 앞에서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위 사건들은 올해 우리가 직접 눈으로 목격한 한없이 어둡고, 더러운 우리 사회의 ‘치부’들이다. 저 사건과 연루된 이들 중에서 아마 공정의 가치를 머리로 알지 못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란 듯이 공정함의 가치를 무시했다. 그들에게는 다른 이들의 기회를 빼앗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야 한다. 

일련의 사건들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기회의 공정함에 있어 우리 사회에 아직 후진적 인식들을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동일 선상에 시작된 경쟁에서 승리한 이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 열심히 노력한 자들이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정착되도록 해야한다. 그러한 개선이 없다면 장담컨대 우리나라가 지난 수 십년 동안 쌓아 온 국격은 무너지고 언젠가 전 세계로부터 조롱을 받을 정도로 추락할 것이다. 

역사는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다. 2019년 대한민국이 겪은 아픔 그리고 그를 치유하기 위한 반성들이 앞으로 우리 후세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공정하게, 더 아름답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