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한국항공협회가 주최한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및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의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한일 갈등에 따른 보이콧 재팬, 보잉 787NG 계열의 제작결함 등으로 국내 항공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에 놓인 가운데, 정부가 장기적 생존과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1일 한국항공협회가 주최한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및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토론회에서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일본 여행 급감 등 상황 이전부터 항공업계는 상당히 어려운 조짐이 있었다”며 “지금은 저비용항공사(LCC)와 대형항공사(FSC) 가릴 것 없이 항공업계 전반의 경영환경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우 대표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악재의 영향과 더불어 이전부터 국제기준 대비 과도한 각종 규제가 국내 항공업계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항공산업 규제는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 유례없는 수준이다”며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항공사 운영과 관련한 인허가, 보고제도 등 자율스러운 경영을 힘들게 하는 제도를 줄인다면 외국 항공사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현 정부 항공정책이 너무 소비자 중심으로 쏠렸다고 주장했다. 우 대표는 “마일리지 제도, 운임 제도 등이 소비자 위주다”며 “이런 요인들과 정부 규제 등이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상황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성토했다.

‘보이콧 재팬’ 여파… 연말까지 피해액 약 8000억원 예상

최근 국내 항공산업은 안팎으로 전례 없는 위기에 맞닥뜨렸다. 일본 수출 규제 영향으로 인한 ‘보이콧 재팬’ 운동이 대표적이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올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일본 노선 여객 운송 실적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7월 162만5000명에서 8월 136만1000명, 9월 94만20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협회는 10월의 일본 노선 여객이 82만7000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전년 145만8000명과 비교할 경우 무려 43.3% 감소한 수준이다. 

특히, 일본 노선 비중이 높은 LCC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국내 6개 LCC의 일본 노선 여객은 지난해(89만7000명)와 비교할 경우 반토막이 난 42만2000명에 그쳤다. 항공사별로 살펴보면 에어서울은 지난해 10월 15만5000명에서 올해 10월 3만8000명으로 75.2%나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진에어와 에어서울도 각각 62.9%, 60.5% 급감했으며, 이스타항공(52.3%)과 제주항공(40.8%), 티웨이(33.1%)도 큰폭으로 줄어들었다. 

일본 노선을 이용하면 여객이 줄면서 항공사들도 앞 다퉈 공급석 감소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165만석(29.1%)이었던 일본 공급석은 올해 9월 143만석(24.4%)으로 4.7%포인트 줄었다. 항공업계는 여객 감소로 인해 올해 말까지 최소 7829억원의 매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동북아 허브공항 경쟁 심화와 중동 항공사들의 불공정 경쟁 및 항공시장 잠식, 홍콩과 중국 등 대외변수의 불확실성 증대로 노선다변화와 신규시장 개척이 제한, 보잉사의 보잉 737 맥스 8기종과 737NG기종의 결함 발생, 이에 따른 운항중단으로 적자가 더 확대될 위기에 놓였다. 

실제 일본발 악재 이후 LCC가운데는 가장 먼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티웨이항공은 성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저비용항공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갈라파고스 규제 항공산업 옥죄”… 취득세·재산세 없애고, MRO시장 키워야

업계는 국내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항공산업을 옥죄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국적 항공사들이 외항사들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 이에 정부가 즉각적인 지원과 성장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학계를 대표에 토론회 참석한 김병재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이같은 업계의 목소리에 동의했다. 김 교수는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해운산업의 사례가 항공업계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부의 정책 운영이 필요하다”며 “외국에서 부과되지 않는 항공기 취득세와 재산세의 면제가 필요하고, 중동·중국항공사가 정부 불법보조금에 힘입어 저가 공세를 통한 노선 확장에 나서는 등의 대응을 위해 항공협정과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보이콧 재팬 여파와 관련해서는 2017년 사드(THH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생시와 같은 범정부 차원의 즉각적 지원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드 사태 당시 중국 단체관광 제한 조치 등으로 방한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면서 정부는 ▲대체노선 신설·증편 ▲중국노선 운수권 의무사용기간 제한 완화 ▲지방공항 전세편 유치 지원금 확대 ▲이용률 저조 지방공항 시설이용료 감면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서는 눈에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국내선 항공유 할당관세 적용이나 항공유 석유수입부과금 한시적 면제, 공항시설사용료 한시적 감면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특히 항공운송사업에서 유류비가 40%에 달하는 만큼, 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항공산업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항공기 투자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항공협회에 따르면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많은 국가들이 항공기 취득세와 재산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지난해 지방세법을 개정, 자산규모 5조원 이상 항공사는 취득세와 재산세를 납부토록 했다. 이에 따라 국적항공사 중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 취득시 재산세와 취득세를 100% 내야 한다. 이전에는 취득세 60%, 재산세 50%를 감면받았다.

▲ 11일 한국항공협회가 주최한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및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토론회. 토론에 참여한 항공업계 관계자들의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아울러 WTO 민간항공기 협정(TCA) 가입 등으로 부품 교역 무관세 추진, 양자 또는 다자간 조인트 벤처 권장, 항공기 MRO(항공 유지보수운영) 산업 육성 등의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국내 MRO시장은 2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나 이 가운데 1조2000억원을 해외 정비로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주요 경쟁국은 엔진제작사와 조인트 벤처 혹은 파트너십을 통해 MRO를 적극 육성 중이다. 국내서 MRO산업을 육성할 경우 연간 1조원 이상의 국내 항공사 정비 비용을 외화 지출에서 내수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 항공산업 생존을 위해 과감한 구조재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대형항공사가 3개, 저비용항공사가 4개인데 이것도 1970년대 많은 항공사들이 난립하면서 파산과 인수합병을 통해 정리된 것”이라며  “1980년대 은행들이 난립했지만 결국 IMF를 겪으며 현재의 안정적인 체제로 돌아온 만큼 항공업계에서도 반드시 중장기적 산업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항공업계 관계자들도 이번 위기가 항공산업 생존과 직결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하나같이 정부의 제도개선과 정책적 지원이 절실함을 피력했다. 

김태영 아시아나항공 상무는 “우리 국적사들은 국제항공시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항공기를 구매할 시 부과하는 재산세·취득세 등 지방세를 면제하고 항공기 부품 구매 시에도 부과하는 관세를 면제해 항공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복 대한항공 상무도 “외국항공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국제선 가경정책은 여전히 동결되어 있다”며 “국내선 부분도 항공사들이 적자를 감소하며 운영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정부지원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광 진에어 본부장은 국토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이 본부장은 “다른 LCC들은 일본 노선을 줄이고 다른 노선에 취향하고 있지만 진에어는 대체 노선을 활용하는 데 제한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토부에서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