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카카오는 다음 포털의 연예뉴스 댓글란을 전격 폐지했습니다. 이어 인물 관련 검색어와 실시간 이슈 검색어에도 대규모 개편을 예고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배우 설리의 안타까운 죽음 후 악성댓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며 나온 정책입니다.

 

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카카오의 전격적인 판단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카카오는 이용자들의 체류시간 및 이슈성에 따른 효과를 포기하고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단을 내렸으니, 쏟아지는 찬사의 타당성은 충분한 편입니다. 

모바일 메신저 기반의 카카오톡 서비스로 핵심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포털의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한 것은 ‘큰 일이 아니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래도 대단한 결단임에는 분명합니다. 모두가 카카오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카카오가 해냈다’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카카오의 결단에 찬사를 보내며 ‘엄지척’을 보내는 이 상황이, 그리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카카오의 결단은 그 자체로 용기있고 의미있는 행동이지만, 이는 곧 우리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론의 장에서 완벽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악성댓글, 즉 악플과의 전쟁을 보면 우리는 철저하게 패배하고 있습니다. 일부 자정을 위한 노력들이 벌어지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그 확장성은 제한적이고 장기간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 뉴스 댓글 폐지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업계 관계자도, 사람들도, 카카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인터넷 댓글창을 폐지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더 큰 문제는 이제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선플운동을 펼쳐도, 악플러들을 비판하고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일부 언론이기를 포기한 매체들을 규탄해도 잡초는 여전히 자라나고 그 뿌리는 징그럽고 탐스럽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는 기어이 특정 뉴스의 댓글란을 없애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찾아낸 겁니다. 이제 이런 말도 않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자인한 셈입니다.

▲ 출처=갈무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올바른 문화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더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더 적극적인 자정의지를 보이면 조금 더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현실의 지옥에서 살며 가상의 지옥을 끌어안고 분노와 절망을 패스트푸드처럼 소비하면서 ‘모든 플랫폼을 꺼버리자’는 극단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이걸 원하는 겁니까?

다만, 한 가지는 제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던 한 웹툰이 작가의 건강문제로 연재가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그 건강을 해친 것 중 하나가 악플이라는 말이 들립니다. 다소 성의없어 보이는 그림체에서 시작된 누군가의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인격을 모독하고 거짓을 부풀리며 종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비난’으로 증폭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논란을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의견충돌을 보면서 눈길을 끄는 주장을 봤습니다. 악플러는 말합니다. “엉망인 그림실력으로 국내 최고 웹툰 플랫폼에서 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우리(악플러)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고객으로서 있을 수 없는 처사에 분노하는 것” 이 말에는 다양한 감정이 솟아납니다. 상대적 박탈감도 보이고, 고객의 권리를 확실하게 지켜 대접받으려는 의사도 존재합니다. 연예인을 향한 악플과 그 성격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 외 여러 가지 감정의 표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또 당신은 누군가의 인격을 짓밟으며 다른 누군가를 비판할 자격은 없으며, 그 누구도 그럴 자격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아가 사회정의구현에 대한 들끓는 열망은 알겠으니, 그 넘치는 에너지를 더 건설적인 부분에 쏟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서운 인상의 근육질 아저씨가 운영하는 맛없는 국밥집에서 한 숟가락 맛을 보고는 “맛 더럽게 없네 개##야”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면,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못하는 일각의 일탈덕분에 건전한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완전히 닫힐 수 있다는 이 짜증나는 상황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스스로가, 참 슬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