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올해 임상 실패의 쓴맛을 본 바이오 기업들이 여전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반 토막 났던 주가가 일정 부분 회복된 것도 잠시, 이번엔 빚 독촉에 시달릴 위기에 내몰렸다. 과거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했던 전환사채(CB)가 높은 이율과 함께 상당한 부채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CB 조기 상환 리스크'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신라젠은 지난달 말 키움증권 등을 상대로 발행한 1100억원 규모의 CB를 조기상환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항암 신약 '펙사벡'의 임상 3상 기대감 속에 대규모 CB를 발행한 지 7개월 만이다. 회사 측은 6%에 달하는 높은 이자 부담에 조기상환을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투자금 손실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요구에 백기를 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펙사백 임상 3상이 중단된 상황에서 신라젠이 투자자의 CB 조기상환 요청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는 신라젠의 CB 조기상환을 두고 여전히 리스크 압박이 크다는 입장이다. 올해 초 신라젠이 CB를 발행할 당시만 해도 전환가액은 7만111원이었다. 그러나 지난 8월 '펙사벡' 임상 3상이 좌절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거듭되는 주가 하락 속에 신라젠은 2차례에 걸쳐 전환가액을 조정한도인 4만9078원까지 낮췄지만 투자자를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주가가 전환가액보다 낮아진 상황에서 주식전환을 통한 차익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신라젠뿐만 아니라 헬릭스미스도 CB 조기상환 부담을 안고 있다. 내년 3월이면 1000억원 규모의 CB 조기상환청구권 기일이 돌아온다. 문제는 이 회사가 조기상환에 나설 경우 추가 자금 조달 압박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재도전을 예고한 ‘VM202’의 임상 3상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흔히 CB는 ‘주식과 채권의 두 얼굴’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수단인 주식과 채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처음 발행한 CB는 보통의 회사채 성격을 띤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주식전환권이 발동하면 채권을 주식처럼 바꿔 사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CB는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나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는 투자자들에게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CB는 이자비용을 줄이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식전환권리를 제공하는 대신 이자율이 일반 채권에 비해 낮은 편이다. 반대로 투자자는 CB 매입을 통해 일정한 이자 수익을 보장받으면서도 기업의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전환권을 행사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기업과 투자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CB 발행이 바이오 업계의 연이은 악재로 인해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향후 CB 만기 전 조기상환을 요구하는 사례가 계속해서 나온다면 자금 사정이 어려운 영세한 바이오 기업들은 존속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투자 수익은 고사하고 원금 회수 자체가 어려운 상황까지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렇다고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수익을 실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이오 업계의 특성을 투자자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평소 바이오 기업들이 경영 투명성과 신뢰 회복을 위해 힘써왔다면 위기 속에서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는 사태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바이오 업체 대표는 최근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임상 실패에 대해 해명하고 떨어진 주가를 되살리기 위함이다. 뒤늦은 그의 노력이 눈물겹지만 투자자들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상당한 내공이 쌓였다. 이젠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로 회사 가치를 증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