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억 달러(33조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해 파산 신청한 보하이 철강그룹(Bohai Steel Group).    출처= China Money Network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빚더미 경제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 정부가 전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바로 회사들이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채권자들은 분노하고 있고 채무자들은 회사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판사들은 파산의 이점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경제 성장을 떠받치고 근로자들을 살리기 위해 수년간 재정 지원을 쏟아 부었던 중국 정부가 이제 부채 계산을 시작했다. 중국이 채무 불이행 기업으로부터 그나마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서 파산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은 현재 90개가 넘는 미국식 파산전문법원을 운영하며, 최근까지만 해도 국영 은행이나 시중은행들이 떠안았을 부실 기업을 정리하느라 애쓰고 있다.

변호사들이나 외국인 투자자들, 그리고 그런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이 제도가, 그동안 그런 기업에 대한 구제금융 자원이 부족한 지방정부의 압박을 덜어주는 좋은 제도라고 입을 모은다.

미 연방파산법 챕터 11을 본 딴 중국의 파산제도는, 기업들이 생존을 유지하고 채권자들에게 시간을 두고 돈을 갚을 수 있도록 법원 보호 하에 구조조정을 하게 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제도는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 미국과 크게 다르다. 중국의 파산법원은 사회적 불안을 막기 위해 채권자들보다는 주주들을 보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이나 청산 과정에서 시위나 혼란 등 사회적 불안이 나타나는 것을 여러 차례 학습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파산법이 공식 도입된 것은 2007년이었지만, 법원은 사회적 불안과 대규모 해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과 채권자들의 파산신청을 대부분 기각했다. 이로 인해 많은 부실기업들이 국고보조금과 국유은행 대출금으로 연명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이제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2015년 이후 많은 파산법원이 생겨났다.  법원은 법원이 임명한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들의 도움을 받아 많은 사건을 보다 빨리 처리하려고 애쓴다. 이 과정에서 최근 부상한 중국의 온라인 문화도 큰 역할을 한다. 중국의 파산 법원은 2018년에 1만 9000여 건의 기업파산 신청이 접수되었는데 이는 2년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숫자다.

이들 중에는 2000억 위안(33조원)이 넘는 부채를 떠안고 있는 국영 보하이 철강그룹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국영기업 중 가장 큰 실패 사례로 꼽힌다. 보하이 자산 중 일부는 다른 철강회사가 인수할 예정이며 채권단은 일부 또는 전액 상환 절차를 밟고 있다.

금융 데이터 제공업체 윈드(Wind)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총 은행 대출은 17조 달러(2경원)가 넘는다. 규제당국은 은행들에게 연체일수가 90일 이상 지난 대출을 부실 채권으로 인정하라고 말해왔지만, 공식 자료에 따르면 부실채권은 3190억 달러로 1.8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낮게 나타난 이유는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얼마나 과소평가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의 파산법원에 접수되는 파산 신청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예밍쿤 판사가 주재하는 남동부 샤먼 시의 경우, 2012년 파산 법원이 생기기 전까지 10년 동안 지방법원에 접수된 파산 신청 건수는 80건도 안됐지만 지난 한 해 동안 파산 법원은 96건을 처리했다.

중국의 디지털 문화도 큰 역할을 한다. 법원은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오픈마켓 타오바오(Taobao)의 인터넷 경매로 호텔, 기계, 기타 파산한 회사의 자산을 판매하고 있다. 파산 관리자는 텐센트 홀딩스의 위챗 앱을 통해 채권자와 일반 대중을 위해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한다. 일부 시민들의 청문회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온라인 비디오 링크를 사용하는 법원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모든 당사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여전히 걱정거리다. 중국 법원은 채권자 배상 명령을 무시하기도 한다.

북경대학교 쉬 데펑 법학교수는 “상장기업과 관련된 일부 사건에서 법원은 배상 우선순위가 높은 채권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키지 않기 위해 손실을 입은 소액 투자자들에게 우선권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 채권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소액 주주들을 보호하는 비정통적인 법원의 결정은 채권자들의 권리를 손상시킬 뿐 아니라 파산제도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2014년에 중국 산시성 서안(西安)에 21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이예팡’(Yihefang)이 건설회사의 파산 신청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분양을 받은 사람들과 채권단은 지방정부에 공사를 재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달라고 간청했다.

공무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업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람도 있었고, 지방정부 청사 밖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돌려 달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개발 사업은 이 지역의 명망 있는 여성 사업가 자오옌친이 28.7 에이커(3만 5000평)의 땅에 21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야심찬 사업으로 유치원과 정원, 상점 등이 입점될 예정이었다.

▲ 중국 산시성 서안(西安)에 짓고 있는 21층짜리 주상복합센터가, 건설회사가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몇 년째 방치되고 있다.    출처= Yihefang

재정난에 빠진 많은 민간 기업들이 그렇듯이 자오옌친의 회사도 20%가 넘는 금리를 부과하는 비은행권 대출자들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회사는 높은 금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2018년 여름, 서안의 법원이 이예팡의 채권자 중 한 명이 신청한 파산 신청을 받아들여 구조조정 절차가 시작되었다. 자오옌친은 개발권을 양도했고, 이 사건의 관리자로 국내 법률회사가 임명되었다.

입찰에서 6명의 투자자가 새로 들어왔고 지난 4월 다른 개발자가 선정되어 프로젝트를 인수하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국영건설회사의 자회사인 새 개발회사는 이 사업을 완성하는 데 3억 5천만 위안(58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달, 이 프로젝트의 공사가 재개되어 노동자들이 건물의 외벽을 칠하고 있었고 새 건축 자재들이 그 현장에 들어왔다.

한 여성은 이 건물에서 식당을 열기위해 매장을 분양받느라 그녀의 가족의 평생 저축을 썼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침에 많은 통근자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이 단지의 위치가 큰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파산법은 기업에게만 파산 신청을 허용하며 개인에게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샤먼시의 예빙쿤 판사는 "미국에서는 파산 신청으로 기업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에서는 파산이라는 오명 때문에 채권자와 대출자들이 소송을 꺼리게 만든다. 그것이 미국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예 판사는 "인간의 청렴이 한 사람의 삶의 토대인 중국에서, 채무 불이행은 도덕적 실패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파산했다는 말을 들으면 중국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간주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