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약이나 주사 대신 디지털 기술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의약품에 칩셋을 장착하거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등 디지털 기술로 질병이나 장애를 치료하는 것을 일컫는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17년 기준으로 8억9천만 달러 규모를 형성했다. 2023년까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해 44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규모 전망 출처=Grand View Research,

기존 치료제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비슷한 치료 효과 기대

디지털 치료제는 헬스케어 제품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핏빗, 미밴드 등 웨어러블 기기와 건강관리 앱을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질병 관리와 치료 부문까지 영역을 확대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된다.

그 일환으로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의약품과 거의 동일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체계화된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효과를 검증하고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거쳐 환자에게 제공된다. 치료효과가 있는 만큼 의사의 처방이 요구되며, 처방 후 보험 적용도 가능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디지털 치료제가 전통적인 의약품 및 치료제와 비교했을 때 물리적인 형태는 다르지만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동등하거나 더 나은 치료효과를 제공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승민 연구원은 "디지털 치료제는 의약품과 달리 독성과 부작용이 거의 없고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며 "또 소프트웨어 복제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제품 또는 서비스 제공단가가 낮아 의료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 치료제와 디지털 치료제 비교. 출처=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국 중심으로 디지털 치료제 개발 활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스마트폰 앱·게임·VR·챗봇·AI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치료제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17년 9월 피어 테라퓨틱스의 스마트폰 앱 '리셋(reSET)'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했다. 이 앱은 대마·알코올·코카인 등 약물 중독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약물 중독 환자는 처방받은 리셋 앱을 통해 인지행동치료에 기반한 온라인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듬해 피어 테라퓨틱스는 리셋의 후속 버전인 'reSET-O'를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받으면서 마약 중독 치료 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킬리 인터렉티브랩도 2017년 12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용 비디오게임 'AKL-T01'의 긍정적인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환자가 아이패드로 외계인을 조정하는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동안 특정 신경회로에 자극을 가하는 치료 알고리즘이 작동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재 이 비디오게임은 미 FDA의 심사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 앱 'reSET-O'는 대마·알코올·코카인 등 약물 중독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디지털 치료제다. 출처=피어 테라퓨틱스

디지털 치료제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영역에 머물지 않고 의약품 안까지 파고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일본 오츠카제약과 미국 프로테우스 디지털헬스가 공동 개발한 디지털 알약인 '아리피프라졸'은 2017년 11월 FDA 승인을 받았다. 아리피프라졸은 실리콘·마그네슘·구리 등으로 제작한 약 3mm의 마이크로칩을 넣은 조현병 치료제다.

반면 우리나라는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수준이다.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 ‘뉴냅비전’의 확증임상시험을 최종 승인했다. 뉴냅비전은 뇌 손상으로 인한 시야 장애를 VR 기술을 통해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이 연구원은 "미국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 치료제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규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앞선 선진사례에 대한 엄밀한 검토를 통해 새로운 산업의 등장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