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우주에는 인공위성이 날아다니고 클라우드에 세계의 정보가 모이는 한편,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연결되고 인공지능이 세상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일하는 방식'을 두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ICT가 열어버린 새로운 시대의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①]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상관관계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②] 온디맨드와 긱 이코노믹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③] 주 52시간에 대하여...바보야, 문제는 유연함이야

불확실성의 시대, 주 52시간
주 52시간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56%가 주 52시간 제도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사옥을 방문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게임 업계는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은 6개월 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반면 생산성이 뒤처지는 우리나라는 1년이 지나도 게임이 나오지 않아 이를 어떻게 극복하냐가 당면 문제라고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병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장이 주 52시간 제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는 주장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장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를 열어 정부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불확실성이 높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의 주체인 ‘인재’를 육성하고, 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주 52시간제 등 노동제도 개선, 대학 자율화, 산업별 맞춤형 지원 등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주 52시간 제도는 맞지 않는다'가 골자며 그 이유로 '일을 더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로 좁혀진다. 그러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자산가의 노동착취 전형'이라고 장 위원장을 비판한다.

장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다양한 논란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그의 생각과 이론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다소 현실과 동 떨어진 구석도 있다.

지난달 15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기념 대담이 열린 가운데 장 위원장이 참석했다. 공식 기자회견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소신을 밝히는 장 위원장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의 주 52시간 제도에 대한 생각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장 위원장의 발언은 '불확실성의 시대'부터 시작한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보여주는 변화의 속도는 빠르고, 이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규정한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현명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함의 시대를 맞아 기획을 통한 대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얼마나 현명하게 실패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디지털의 특성이기도 하다.

신형 자동차 테스트를 예로 들었다. 그는 “1, 2차 산업혁명이 해당되는 아날로그의 시대에서 신형 자동차 테스트를 한다면 철저한 계획을 해야 한다”면서 “반면 3, 4차 산업혁명이 해당되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냉정한 기획보다 투입비용이 극소화된 실행에 방점을 찍어 무수히 많은 테스트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위원장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를 극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대기업은 토지, 노동, 자본을 투입해 기존 자산을 활용하는 방식이며 스타트업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면서 “스타트업은 열정과 몰입, 또 실패를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스타트업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이 발언은 그의 주 52시간 제도에 대한 소신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다. 쉽게 말해 지금과 과거는 일하는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철저한 기획을 세워 사업을 해 실수를 줄이는 것에 방점을 찍었으나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기 때문에 기획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기획을 하지 않고 바로 사업을 해도 큰 피해가 없다. 왜? 디지털의 시대니까. 공장에 모두 모여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차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연구실에 앉아 디지털 코드만으로 신차 테스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현실로 보면 말이되지 않지만, '불확실성의 시대니까 기획을 할 수 없고, 대신 디지털의 시대니까 실수를 마음껏 해도 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불확실성의 시대, 실수를 많이해도 되는 시대'라는 말에서 후자에 집중하면 이색적인 주장이 나온다. 실수를 많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을 많이 해야한다. 그렇게 실수를 많이 하는 상황에서 일을 많이하면 할수록 혁신에 가까워진다는 논리가 나온다. 장 위원장이 주 52시간 제도를 미온적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80년대 제조 스타트업, 90년대 후반 인터넷 스타트업,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 스타트업,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시대”라면서 "특히 스타트업은 많은 실패,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은 토지, 노동, 자본을 투입해 기존 자산을 활용하는 방식이며 스타트업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면서 “스타트업은 열정과 몰입, 또 실패를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판단에 따라 현재의 주 52시간 제도가 문제있다는 주장이다. 장 위원장은 “스타트업은 주 52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가 중요하다”면서 “몰입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로 근로의 다양한 가능성을 원천차단하는 방안보다는, 차라리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 불확실성의 시대를 상진하는 위기의 기업들. 출처=갈무리

이론은 완벽하다. 하지만, 또 하지만...
장 위원장의 이론은 명쾌하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실패가 용인되는 디지털의 무기를 활용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근로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 제도는 효율적이지 못하며, 일을 더 하려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통한 보상을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장 위원장의 발언은 결국 유연함에 있다. 단순히 모든 직원이 주 100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야망이 높은 직원만 주 100 시간을 근무하고 성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누군가 초과근무를 자원하며 인센티브를 벌어간다고 가정하면, 인센티브를 원하지 않아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언젠가는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초과근무의 여지를 한 번 열어주면 나중에는 '슬그머니' 주 52시간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역효과도 날 수 있다. 나아가 이를 악용할 수 있다.

결국 장 위원장의 주장을 현실로 안착시킬 수 있는 절묘한 수를 찾아야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장 위원장의 또 다른 발언에 힌트가 있다.

장 위원장은 당시 대담에서 기업의 규제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현재 많은 스타트업들이 강력한 규제에 신음하는 가운데, 장 위원장은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제안했다.

실제로 장 위원장은 “미국은 집단 소송 및 징벌적 손해배상이 발전했으며 중국도 상당히 강하다”면서 “한국은 기업이 뭔가 잘못했을 때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미약하다. 결국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의 규제 완화를 끌어내기 위한 카드지만, 주 52시간 제도를 장 위원장의 발언대로 변경했을 때 나오는 부작용을 엄벌하는 장치로도 사용될 수 있다.

결국은 유연함
장 위원장의 발언을 근무제도의 유연함으로 풀어낸다면, 지금의 논란은 완전히 종식될 수 있다. 획일적인 주 52시간 제도를 폐지하고 근무시간을 직원이 결정,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장난질'을 엄벌하는 조치가 제대로 안착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누군가는 주 52시간을 지키고, 또는 지키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일하는 시간을 조정하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일본에서 신선한 실험을 한 바 있다. 일본지사에서 주 4일 근무제를 시도한 결과 매출이 약 40%나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 역시 유연함이다. 즉 주 52시간 제도를 두고 이를 지켜야 한다,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보다 유연하게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기업은 최대한의 생산성을 원하고, 그 생산성이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고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성과를 내기위해 주 100시간을 근무하거나, 주 10시간을 근무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즐겨도 그에 걸맞는 성과에 대한 인정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확립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