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LG전자가 중국의 TV 제조사인 하이센스에 TV 관련 특허침해금지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LG전자가 보여준 최근의 ‘저돌적인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지와 함께 나빠지는 시장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 나아가 구광모 LG그룹 회장 차원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LG전자가 자사의 8KTV 강점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LG전자

삼성에 이어 하이센스

LG전자는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지방법원에 중국 하이센스(Hisense)를 상대로 TV 관련 특허침해금지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판매중인 대부분의 하이센스 TV 제품이 LG전자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했다며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피고에 하이센스 미국법인 및 중국법인을 모두 포함시켰다.

하이센스는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 4위를 달릴 정도로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LG전자의 특허를 무단으로 활용해 시장의 존재감을 키웠다는 것이 LG전자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개선을 위한 기술, 무선랜(Wi-Fi) 기반으로 데이터 전송속도를 높여주는 기술 등 사용자에게 더 편리한 TV 환경을 구현해주는 기술이 포함된다.

LG전자 특허센터장 전생규 부사장은 “LG전자는 지적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자사 특허를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올해 초 하이센스에 경고장을 보내 해당 특허 침해 중지 및 협상을 통한 해결을 거듭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센스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이번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LG전자가 하이센스를 대상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나선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LG전자가 개발한 특허를 무단으로 활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기 때문에, 당연히 LG전자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LG전자의 하이센스 소송을 두고 ‘달라진 기류’에 집중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소모적이고 껄끄러운 마찰이 벌어질 수 있어도 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는 것은 ‘인화의 LG’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의 TV전쟁도 그 연장선에 있다. LG전자가 IFA 2019를 통해 삼성전자와 자사의 TV를 직접 비교시연해 촉발된 두 회사의 TV전쟁은 여론전을 거쳐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간 상태다. 현재 두 회사는 경쟁사의 TV 광고까지 지적하며 ‘과장광고’라는 비판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LG전자는 유례없는 강공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LG전자는 글로벌 가전업체 다이슨과도 격렬한 분쟁을 겪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LG디스플레이의 OLED 파트너로 활동하는 유럽의 제조사와 법적다툼을 시작하기도 했다. 실제로 LG전자는 아르첼릭 등 3개 유럽 제조사를 겨냥해 특허침해금지소송을 냈다.

▲ 하이센스의 TV가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전방위적 전쟁의 이유는?

달라진 LG전자의 투사모드 이면에는 기술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도와 시장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 여기에 구광모 회장 차원의 결단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성전자와의 TV전쟁이 대표적인 기술 주도권 경쟁이다. 현재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OLED TV를 기점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QLED TV를 간판으로 내세운 상태다. 그 연장선에서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을 두고 첨예한 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최근 삼성전자가 차세대 TV로 QD-OLED를 낙점하는 등 기술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프리미엄 TV 시장의 대세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사의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경쟁사의 존재감을 희석시키는 마케팅 전략이 일종의 상호비방으로 흐르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시장의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말도 나온다. 삼성과의 TV전쟁은 물론, 하이센스 고발이 여기에 해당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TV 시장은 성장중이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사업도 표면적으로 순항하고 있다. 다만 영업이익률만 보면 삼성전자의 VD사업부는 지난해 7%, LG전자 HE부문은 9%를 기록했으나 최근 그 수치가 크게 좁혀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프리미엄 TV시장에서 OLED TV가 출하 기준으로 QLED TV를 넘어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LG전자가 ‘이대로 밀릴 수 없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LG전자의 맹공모드는 구광모 회장 수준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도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난타전도 마찬가지지만, LG전자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TV전쟁을 걸고 하이센스에 발 빠른 조치를 취하는 배경에는 총수의 결단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의 취임 1주년을 넘긴 상황에서 업황이 나빠지며 각 계열사의 실적이 나빠지는 등 위험신호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강공모드를 통해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LG전자 내부에서 ‘지식재산권을 우리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말도 있다. LG화학의 SK이노베이션 분쟁과 LG전자의 하이센스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사의 연구개발이 투입된 지식재산권이 외부서 남용되어 피해를 입은 현상을 두고 내부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외부로는 ‘더욱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됐다는 뜻이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 후 마곡 사이언스파크를 자주 찾으며 신기술 개발을 그룹의 혁신동력으로 내세운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기술력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내부의 의견이 외부로의 강공모드를 끌어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시장상황이 마냥 고무적이지 못하고, LG의 각 계열사들이 LG생활건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적 악화에 신음하고 있다는 전제도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