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여전히 업황악화의 그늘에 빠져있는 가운데, 반등 시기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내년부터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도 나오지만, 떨어지는 가격을 고려하면 당분간 '빙하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 변수 등 다양한 돌발요인들이 등장하며 업계는 그 여파에 집중하고 있다.

▲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겨울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코리아는 현재 혹독한 빙하기를 버텨내고 있다. 3분기 기준 삼성전자는 반도체 영역에서 매출 17조5900억원, 영업이익 3조5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9.3%, 77% 하락했다. 올해 전체 반도체 시장의 왕좌를 인텔에 넘겨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매출 6조8388억원, 영업이익 4726억원에 그쳐 크게 주춤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3%나 하락했고 한 때 50%를 넘나들던 영업이익률도 10%대로 주저앉았다. 시스템 반도체라는 플랜B와 함께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및 가전이 뒤를 받치는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과도한' 메모리 반도체 집중의 후폭풍을 겪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미래를 둘러싼 전망은 엇갈린다. 5일 업계 및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반도체 수출은 7월 바닥을 찍고 서서히 반등하고 있다. 1월부터 9월까지 반도체 총 수출액은 714억달러를 기록해 2017년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초반의 성적과 비슷한 수준을 보여줬다.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 등 호재도 많기 때문에 일각에서 반도체 업황 호조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업황 악화'에 대한 우려가 현 상황에서는 더 크다. 무엇보다 가격 하락세가 심각하다. 최근 급격한 가격 하락 일변도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나오지만 여전히 문제는 심각하다.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D램 고정거래가는 PC 범용 D램 DDR4 8Gb(1Gx8 2133MHz) 기준 전월 대비 4.4% 떨어졌다. 하락폭이 두 자리수에서 한 자리수로 줄어들며 수요가 살아나고 있으며 각 기업의 재고사정이 좋아지고 있으나, 강렬한 반등 포인트는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화웨이에 웃고 울고
국내 반도체 업계가 희비를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가운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중국 화웨이 이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을 찾은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3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화웨이 제재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 기업의)260개 면허 요청서가 접수됐다"면서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면허 발급이)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며 화웨이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선 바 있다. 미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며 중국의 기술굴기를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화웨이는 구글 안드로이드 지원이 막히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동시에 '유럽시장 개척 및 올리브 가지'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나섰다.

유럽시장 개척의 최근 사례가 독일이다. 로이터 및 화웨이는 지난달 14일 독일 정부가 5G 네트워크와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보안 가이드라인에 특정 기업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슈테판 자이베르트(Steffen Seibert) 독일 정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어떤 주체 또는 기업을 배제하는 선제적 결정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가 5G 코어 네트워크까지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의 5G 로드맵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미국은 유럽 동맹국을 종용해 화웨이 압박에 공동으로 나서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이러한 압박전술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화웨이는 독일 뿐 아니라 영국 및 스위스 등 유럽 주요국과 공동으로 5G 로드맵을 추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5G 오픈랩을 스위스에 설립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화웨이는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60개 이상의 5G 상용화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유럽에서 32건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독일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이 정부 차원에서 화웨이를 배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올리브 가지를 내미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지난 9월 10일 미국의 뉴욕타임스 및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은 물론 서방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우리의 5G 기술과 노하우를 전면 개방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화웨이 5G 플랫폼 전체의 사용권을 판매할 수 있다"면서 사실상 자사의 모든 것을 개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를 두고 "화웨이가 미국 등 서방에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화해와 신뢰를 자신했다)"고 평했다.

스마트폰 측면에서도 화웨이의 올리브 가지는 계속 뻗어갔다. 화웨이 미주법인의 조이 탄 부사장은 지난달 20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리스트에 오른 후 일부 대체 솔루션을 찾을 수 있었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구글의 서비스"라면서 "오픈 소스 기반의 안드로이드는 사용할 수 있으나 앱 작동의 핵심인 서비스는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훙멍이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도입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은 입증해야 할 점이 많다. 조이 탄 부사장은 훙멍이 구글의 빈 자리를 메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 "(가능하게 만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큰 틀에서 미국 정부와의 대화를 재개하려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는 뜻도 밝혔다.

▲ 켄 후 화웨이 순환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이런 상황에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화웨이 제재 완화 카드를 빼들자 업계는 크게 환호하는 분위기다. 특히 반도체 코리아의 기대감이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화웨이 물량 비중이 각각 10%, 20%에 이르기 때문에 미국이 화웨이 제재를 풀어줄 경우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사태가 '모두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 완화를 시사한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는 화웨이에 대한 화해무드 조성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자국 기업의 요청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화웨이와 거래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자국 기업들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웨이 제재 완화를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큰 틀에서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대형 악재가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중 무역전쟁 자체만 보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에서 탄핵 위기에 직면한 상태고, 중국은 그런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보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31일 "양국은 원래의 계획에 따라 협상 등 업무를 진행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내놨으나, 블룸버그는 중국 관리의 반응을 인용해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충동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중국이 무역협상에서 완전히 손을 뗄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칠레 APEC 취소로 양측 실무팀이 더 많은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균형 잡힌 합의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미국이 진심으로 중국과 합의하려 한다면 말보다는 진실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합의를 하는 것보다, 신중하게 논의를 해야 한다는 뜻임과 동시에 '무리하게 협상을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VUB) 공자학원 책임자를 지낸 쑹신닝(宋新寧)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이 벨기에를 방문하려다 입국을 금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그 배후로 미국을 의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화웨이 제재 완화를 시사했으나 더 시급한 문제인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이 악화일로를 걷기 때문에, 이번 제재 완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안도의 한 숨을 내쉬기는 무리라는 평가다. 실제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보면 260개에 달하는 미국 기업들이 원하기 때문에 화웨이 제재 완화를 시도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는 미중 무역전쟁과 화웨이 이슈는 관련이 없으며, 중국에 예정된 관세 폭탄을 철회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미국이 화웨이 제재 완화를 시사하면서도 대만 TSMC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으라고 압박한 사례가 발견된 것도 논란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4일 "미국이 지난달 대만 외교관을 만나 TSMC와 화웨이의 거래를 중단해 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TSMC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했으나, 화웨이 제재 완화를 시도하면서도 TSMC를 통한 화웨이 측면압박을 시도한 미국의 행보는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는 반응이다. 자국 기업의 어려움 때문에 화웨이 제재 완화를 시도했을 뿐, 화웨이 자체에 대한 압박기조는 여전하며 당연히 미중 무역전쟁의 강대강 대치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막대한 '반도체 군자금'을 모으고 있는 점도 뇌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7일 중국이 34조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영 담배회사 및 개발은행이 참여한 본 반도체 펀드는 액수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2개 라인을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다. 중국은 2014년 1차 펀드를 조성했을 당시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크게 올린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4% 내외에서 움직이는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올리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표현하며 자급률 상승에 사활을 걸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은 여전히 5% 내외다. 이를 타개하고자 재차 반도체 굴기를 준비하는 셈이다.

미중 실무협상에서 중국의 요구에 따라 중국제조 2025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어떻게든 막으려는 기류가 강하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이 반도체 군자금을 모으기 시작하면 미국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화웨이 제재 완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전쟁이 여전히 불을 뿜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며, 큰 틀에서 수출 중심의 반도체 코리아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이 요동치고 있다. 출처=갈무리

위기를 넘어라
업황 악화에 미중 무역전쟁 여파까지 겹치며 반도체 코리아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초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한편 파운드리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8.5%에 그쳐 1위 TSMC 50.5%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새로운 동력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EUV 공정에 있어 TSMC가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으나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 엑시노스 990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독자적인 CPU 개발을 중단하는 한편 GPU(Graphic Processing Unit, 그래픽처리장치), NPU(Neural Processing Unit, 신경망처리장치) 등의 역량을 강화하는 선택과 집중도 단행한다. 모바일 AP 브랜드 엑시노스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로드맵의 큰 방향을 바꾸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D램은 물론 낸드플래시 라인업을 바탕으로 일발역전을 꿈꾸고 있다.

아직 먼 훗날의 일이지만,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경쟁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삼성전자는 2세대 M램, 즉 STT-M램(Spin Transfer Torque-Magnetic RAM)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내장형 M램인 eM램(embedded Magnetic RAM)을 출하한 상태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절연막을 씌워 누설 전류를 줄일 수 있는 28나노 FD-SOI 공정 기반이며 전원을 차단해도 데이터가 날아가지 않는 비휘발성이면서 D램 수준으로 속도가 빠른 메모리 반도체의 특징을 살려 전력은 더 적게 소모하면서 속도는 향상됐다는 설명이다.

▲ 삼성전자의 뉴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삼성

내장형 메모리는 사물인터넷기기 등 소형 전자 제품에 사용되는 ‘MCU’나 ‘SoC’같은 시스템 반도체에서 정보 저장 역할을 하는 메모리 모듈이다. 주로 플래시(Flash)를 기반으로 한 eFlash(embedded Flash Memory)가 사용된다. 그러나 eFlash는 데이터를 기록할 때 먼저 저장돼있던 기존 데이터를 삭제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속도와 전력효율 측면에서 단점이 있었다.

삼성전자의 28나노 FD-SOI M램은 데이터 기록시 삭제 과정이 필요 없고, 기존 eFlash보다 약 1000배 빠른 쓰기 속도를 구현한다. 또한, 비휘발성으로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저장된 데이터를 계속 유지해 대기 전력을 소모하지 않으며, 데이터 기록시 필요한 동작 전압도 낮아 전력 효율이 뛰어나다. 이상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상무는 "신소재 활용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차세대 내장형 메모리 솔루션을 선보이게 됐다"며 "이미 검증된 삼성 파운드리의 로직 공정에 M램을 확대 적용하여 차별화된 경쟁력과 뛰어난 생산성을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시장의 요구에 대응해갈 것" 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M램에 집중하고 있다. 2011년 일본 도시바와 함께 STT-M램을 공동 개발하는 한편 합작사를 설립한 계약을 맺은 상태다. 여기에 Re램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플레이어는 인텔이다. 옵테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램인 옵테인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D램의 약점을 보완했고 속도가 일반 낸드플래시보다 1000배 빠르다. 즉 D램과 낸드플래시의 좋은 점만 모아 그 성능을 극대화시켰다는 뜻이다. 2017년 마이크론과 협력해 만든 3D 크로스포인트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3D 크로스포인트는 데이터를 저장하면서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크게 보면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의 결합으로도 여겨진다.

▲ 인텔의 옵테인이 공개되고 있다. 출처=인텔

업계에서는 각 반도체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현재의 위기를 유연하게 넘기는 한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차세대 왕좌를 두고 치열한 전투를 거듭할 것으로 본다. 그 연장선에서 대표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