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하이트진로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난해만 해도 주류기업 하이트진로의 상황은 절박했다. 주류소비 감소에 따른 주력 제품 소주 ‘참이슬’의 판매 정체와 더불어 수입제품의 파상공세로 점점 줄어드는 맥주 ‘하이트’의 점유율로 인한 총체적 난국을 견뎌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예상치 못한 신제품들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어떤 주류업체보다 장기 관점에서 향후 전망이 좋은 기업으로 거듭났다. 하이트진로의 성장은 적절한 시기의 변화가 기업에 가져다주는 긍정 효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맥주 공장 매각까지 고려한 ‘위기’

하이트진로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었다. 하이트진로 김인규 대표이사는 회사의 현재 상황을 묻는 질문에 대해 “맥주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를 않는다”라고 답했다. 십수년 이상 하이트맥주는 국내 맥주시장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던 브랜드였다. 2006년 4월 주류공업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하이트맥주는 출고량 기준 국내 시장 점유율 61.7%를 차지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경쟁사인 OB맥주 ‘카스’의 점유율은 38.3%였다. 

여기에 국내 시장 점유율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 브랜드 소주 ‘참이슬’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국내 주류업계에서 하이트진로의 입지는 철옹성과 같았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OB맥주 카스의 마케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점점 하이트맥주와 격차를 좁혔고 급기야는 하이트맥주는 지난 2011년 맥주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카스에 내주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 맥주사업의 부진으로 한때 매각설이 돌았던 하이트진로 마산 맥주공장. 출처= 하이트진로

여기에 주류 종가세(출고 가격에 비례해 부과하는 세금)를 적용받아 국산 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한 수입맥주의 유입은 하이트맥주의 점유율을 갉아먹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맥주의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은 2014년 6%에서 2018년 약 20%까지 늘어난다. 임금·원재료 가격 상승 등 원가의 인상은 계속되고 제품은 팔리지 않는 3중고로 인해 2013년 영업이익(477억원)을 냈던 하이트진로 맥주 사업부문의 실적은 2014년 영업손실(-225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8년(-200억원)까지 5년 연속으로 손실을 낸다.   

▲ 출처= 전자공시시스템

이렇듯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하이트진로는 강원도 홍천, 전북 전주, 경남 마산에 위치한 맥주공장 중 한 곳의 매각을 검토하기에 이른다. 이에 사모펀드·주류업체 무학 등 여러 주체들이 거론되면 ‘인수설’이 불거졌으나 하이트진로는 맥주 공장에 소주 생산시설을 들이는 선택으로 겨우 공장을 지켜낸다. 그러나 적자가 지속되면 공장은 언제든 매각을 고려해야 하는 상태로 하이트진로는 2019년을 맞는다.  

기가 막힌 타이밍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겠다 판단한 하이트진로는 자사의 정체성과 같은 ‘하이트’라는 이름을 빼고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이미지를 강조하는 신제품을 준비한다. 이에 지난 3월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신제품 맥주 테라(TERRA)는 판매 40일 만에 100만상자가 판매되며 국내에서 출시된 모든 브랜드의 맥주 신제품의 출시 초기 최대 판매기록을 세운다. 테라는 물량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잘 팔렸고 지난 5년 동안 하이트가 쌓아온 손실들을 착실하게 만회하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하이트진로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기회를 잡는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복고 트렌드를 반영한 이벤트 성격으로 지난 4월 출시된 소주 ‘뉴트로 진로’가 예상 외로 잘 팔리면서 정규 상품군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제품은 본래 제품명인 ‘뉴트로 진로’가 아닌 광고에 쓰인 문구인 ‘진로 이즈 백(줄여서 이즈 백)’으로 소비자들에게 기억된다. 뉴트로 진로는 출시 72일만에 1000만병 판매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운다. 두 상품은 ‘테슬라(테라+참이슬)’ 그리고 ‘테진아(테라+진로이즈백)’라는 친숙한 조합으로 기억되면서 하이트진로 주력제품의 동반 히트를 이끈다.

▲ 하이트진로의 올해 히트상품 '테라'와 '뉴트로 진로'. 출처= 하이트진로

이러한 성과의 공통점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한 마케팅 성공과 더불어 외교 문제라는 예상치 못한 요소로 타격을 받은 경쟁사 소주·맥주 제품의 부진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반사이익 효과가 더해진 것이다.  

히트 상품, 주가를 움직이다 

지난 2분기 하이트진로의 실적은 연결기준 매출 5244억원, 영업이익 106억원으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6.3% 증가, 60.5% 감소를 기록했다. 2019년 연간으로 업계 최고의 히트상품을 배출해 낸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실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연이은 신제품 출시로 인해 지난해 대비 277억원 늘어난 광고선전비 732억원과 더불어 맥주공장 유지로 발생한 유형자산손상차손비용(자산 가치가 장부 가격보다 낮아질 가능성을 재무제표상의 손실로 기록하는 것) 133억원, 법인세 292억원 등 비용이 2분기로 반영됐다. 2분기 맥주 부문은 적자를 유지했으나 그 손실의 폭이 100억원(171억원)대로 내려갔다.

여기에 대해 투자업계는 상품의 직접 판매가 아닌 외부 요인의 악재들이 2분기에 반영된 것으로 보고 향후 하이트진로에 대해 긍정적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홍세종 연구원은 하이트진로의 3분기 연결 매출액을 5568억원(전년비 +11.3%), 영업이익 555억원(+89.6%) 수준으로 예상했다. 홍 연구원은 “특히 영업이익은 업계의 예상치인 432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가 기대된다”라고 전망했다.

▲ 출처= 삼성증권

삼성증권 조상훈 연구원은 “하이트진로의 맥주 사업부문의 3분기 실적은 신제품 테라 판촉비와 판매장려금 등 각종 비용의 투입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러나 내년부터는 테라의 마케팅 비용추가 투입이 없는 매출 증가, 마산 공장 가동률 상승 등으로 비용은 낮아지고 생산성이 개선되는 조건들이 반영돼 영업이익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하나금융투자 심은주 연구원은 “하이트진로의 3분기 연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496억원(전년비 +9.9%), 465억원(전년비 +58.9%)으로 추정한다”면서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브랜드들의 수요 감소에 따른 반사이익과 ‘테라’의 판매 호조, 주류 가격 인상으로 인한 수익성 개선 요인들이 반영돼 좋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품 판매호조가 이끈 기대감은 하이트진로의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8월 6일 1만9950원이었던 하이트진로의 주가는 지속 상승해 10월 31일 장중 주가가 2만8550원까지 올라 2016년 4월 26일 이후 약 3년 6개월만에 시가총액 2조원(2조23원)을 일시적으로 돌파했다.  상승세는 11월까지 이어져 지난 1일(2만9350원)과 4일(2만9550원) 종가 기준 주가가 반영된 시가총액은 2조원(4일 기준, 2조724억원)대를 넘겼다.   

▲ 최근 3개월 하이트진로의 주가 추이. 출처= 네이버 금융

국내 실적의 안정은 하이트진로의 시장을 확장하는 데 있어 힘을 보태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이미 경고하게 자리를 잡은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 시장 확장에 이어 이제는 유럽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24일부터 3일까지 영국 최대 아시아영화제인 ‘제4회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에서 소주 알리기 마케팅에 나서는가 하면, 지난 5일부터 9일까지는 독일 쾰른에서 열린 글로벌 식음료 산업박람회 ‘아누가(Anuga) 2019’에 참석해 자사의 주류 브랜드를 홍보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테라, 뉴트로 진로 등 신제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은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국내와 해외의 소비자들도 하이트진로의 제품을 통해 한국의 주류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