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그 문제’가 드디어 터졌다. 홈쇼핑 채널과 IPTV 사업자의 갈등이다. 29일 현대홈쇼핑은 방송통신위원회에 IPTV업체들의 송출수수료율 설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안의 조정을 신청했다. 콘텐츠 유통 구조에서항상 ‘을’의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는 홈쇼핑이 송출수수료 문제를 먼저 공론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이제는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됐다”는 의견과 “과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오래 묵은 문제 ‘송출수수료’ 

송출수수료는 이름 그대로 콘텐츠 제작사들이 특정 통신망을 활용해 방송을 송출하는 조건으로 통신망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들에게 내는 일종의 ‘망 사용료’다. 상품을 방송으로 직접 판매하는 콘텐츠는 공중파 방송으로 송출될 수 없기에, 홈쇼핑 사업자들은 유료방송인 케이블 TV 채널을 관할하는 IPTV(Internet Protocol TV·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제공되는 양방향 텔레비전 서비스) 업체들 혹은 유선방송 사업자(System Operator, 이하 SO)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해왔다. 케이블 채널은 곧 홈쇼핑의 수익과 직결되는 유통판로와 같기 때문에 IPTV나 SO사업자들 앞에 홈쇼핑 업체들은 항상 ‘을’의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양자 간 거래에서 결정권은 늘 전자들에게 있었고, 홈쇼핑들은 주로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IPTV가 대중화되기 전인 2010년대 이전의 거래는 홈쇼핑과 SO사업자들 간에서 이뤄졌다. 2000년대 초부터 급성장한 홈쇼핑 사업의 수익성이 커지면서 SO사업자들은 통신망 사용에 대한 수수료를 지속적으로 올렸고 당시의 송출수수료는 홈쇼핑 업체들이 각자의 성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TV 방송을 기반으로 하는 홈쇼핑의 입지는 점점 약화됐고 지난 수년 동안 꾸준하게 인상돼온 송출수수료는 홈쇼핑들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 접어들어 인터넷 수신을 기반으로 하는 IPTV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IPTV의 입지도 커졌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8년도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르면 2017년 IPTV 전국 가입자 수(약 1433만명)는 같은 시기 SO가입자 수(약 1404만명)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IPTV에는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만큼 큰 힘이 실렸고, 과거 SO들이 그랬던 것처럼 홈쇼핑들의 망 사용에 대한 결정권과 방송 채널 번호 선택권을 주도했다. 문제는 홈쇼핑이 IPTV와 SO에 동시에 송출수수료를 지불하게 되면서 부담감이 점점 가중된 것에서 시작됐다. 이를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한 현대홈쇼핑의 조정 신청으로 오랫동안 묵혀있었던 송출수수료 문제는 공론의 장으로 옮겨졌다.

IPTV “우리도 할 말 있다” 

IPTV가 양자 간 계약조건에서 ‘갑’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비쳐지는 점이 있으나 IPTV 사업자들도 할 말은 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국내의 거의 모든 유통업체들이 소비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국내 주요 홈쇼핑 업체들은 성장을 거듭했다.  CJ ENM(오쇼핑 부문), GS홈쇼핑,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등 국내 홈쇼핑 업체 상위 4개사의 2019년 상반기 총 매출은 2조2614억원, 영업이익은 302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8.8%, 영업이익은 9.9% 늘어났다. 이러한 성장에는 IPTV 가입자 수의 증가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국내 방송사업 매출 점유율에서도 IPTV의 입지는 드러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IPTV는 총 3조4358억원의 매출로 전체의 19.9%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SO는 2조898억원으로 12.1%를 차지했다.  

“인프라 구축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과 IPTV망을 활용한 방송 송출로 각 홈쇼핑들이 얻는 수익을 감안하면 적정한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 IPTV업계의 주장이다. 

▲ TV 홈쇼핑 방송 화면. 출처= 롯데홈쇼핑

홈쇼핑 “적정선을 왜 IPTV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가”

홈쇼핑 업체들의 불만에도 이유가 있다. IPTV나 SO망을 통한 TV방송으로 발생하는 홈쇼핑들의 수익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는 있으나, 정체되거나 혹은 줄어들고 있고 각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이 주력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IPTV 사업자들의 송출수수료 인상 요구는 홈쇼핑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실제로 GS SHOP의 올해 상반기 모바일 취급고는 50%를 넘어 TV를 추월했다. 같은 기간 CJ ENM 오쇼핑 부문의 취급고 비중은 모바일이 31%, PC(온라인)가 15% 그리고 기타 3%를 차지하며 51%를 차지한 TV를 넘어섰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우리는 IPTV나 SO의 송출수수료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시장 구조의 변화를 유연하게 반영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아닌 급격한 수수료율 인상 요구를 거의 통보를 받는 것과 더불어 ‘수수료율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채널에서 빠져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IPTV나 SO의 입장은 달갑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현대홈쇼핑이 방송통신위원회에 갈등 조정을 신청한 것도 LG유플러스가 올해 송출수수료 협상에서 지난해 대비 약 20% 인상률을 제시한 것을 현대홈쇼핑이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일련의 문제에 대해 한국TV홈쇼핑협회 조순용 회장은 “송출수수료의 급격한 인상은 홈쇼핑 업체들에게도 부담이 될뿐더러 홈쇼핑 채널에 입점해있는 중소상공인들에게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면서 “협의를 통해 업체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수수료율을 정하고 이를 한동안 유지하면서 업계의 미치는 영향을 지켜보는 방법론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국내 홈쇼핑 업체들은 같은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쉽게 표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IPTV나 SO와 원활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현재의 사업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향력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국내 홈쇼핑 사업의 근간은 TV방송에 있기에 IPTV나 SO의 망 활용을 완전히 배제해서 생각할 수 없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과 IPTV·SO는 결국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주체들이기 때문에 다툼보다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라면서 “이번에 송출수수료 문제가 공론화됐으니 이번 기회에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점을 찾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사안의 중재는 방송통신위원회로 넘어갔다. 과연 지난 10년 이상을 묵혀온 홈쇼핑 송출수수료 문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해결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