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이른바 복제약으로 여겨지는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놓고 국내외 제약사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허셉틴, 아바스틴, 리툭산 등 올해 미국에서 특허가 만료됐거나 만료를 앞둔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빈틈을 국내 바이오시밀러가 재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올해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는 약 27조원으로 추정된다. 다년간 시장을 지배했던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제약업계에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할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에 국내 제약사는 물론 글로벌 제약사까지 앞다퉈 바이오시밀러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품 간 차별성이 크지 않은 바이오시밀러 특성상 시장 선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국내외 제약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

▲올해 미국에서 허셉틴, 아바스틴, 리툭산 등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바이오시밀러 출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강국 위상 눈길

바이오시밀러는 세포나 조직, 호르몬 등 생물에서 유래한 물질을 바탕으로 개발된 바이오의약품의 약효를 모방한 복제약을 일컫는다.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과 유사한 효능을 가지면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경쟁력을 갖춘 의약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쉽게 말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로 제네릭이 나오는 것처럼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바이오시밀러는 화학 분자 구조를 기반으로 한 합성의약품의 복제약인 제네릭과 급이 다르다.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결정구조를 가진 살아있는 세포나 단백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만들기가 훨씬 까다롭다. 따라서 제네릭에 비해 높은 기술력과 시간, 비용 등이 요구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는 단순한 복제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제재를 활용해 오리지널 의약품과의 동등성을 입증해야 하므로 연구 개발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장기간 투자가 필요하다”라며 “개발, 임상, 생산, 허가, 판매 등 전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마케팅 전략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시밀러는 합성의약품의 복제약인 제네릭보다 생산공정 및 임상시험이 훨씬 복잡하다.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시장에 우리나라가 바이오시밀러 강국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이오시밀러 대표주자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계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 덕분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7년, 셀트리온 17년 등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들은 비교적 짧은 영속 기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제약사에 뒤지지 않는 개발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은 유럽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강자로 통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베네팔리(성분명 에타너셉트)’ ‘플릭사비(성분명 인플릭시맙)’ ‘임랄디(성분명 아달리무맙)’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3종으로 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6503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연간 매출 6536억원을 1분기 앞두고 조기 달성한 수준이다. 제품별 매출은 베네팔리가 1390억원, 플릭사비 220억원, 임랄디가 591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베네팔리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 5개국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다. 플릭사비는 분기별 10% 수준의 상승 폭으로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시한 임랄디는 11개월간 누적 매출이 1790억원이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성분명 인플릭시맙)로 유럽 시장의 57% 잠식했다. 이미 오리지널 의약품인 얀센의 레미케이드를 앞질렀다. 또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성분명 리툭시맙)’와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성분명 트라스투주맙)’도 유럽 내 항암제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집계 기준으로 트룩시마는 36%, 허쥬마는 10% 시장점유율을 각각 기록하며 오리지널 의약품을 압도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램시마, 트룩시마, 허쥬마 등 주요 바이오시밀러를 앞세워 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출처=IQVIA

유럽 넘어 미국까지 공략 시동

토종 바이오시밀러의 약진은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리툭산, 허셉틴, 아바스틴 등 로슈의 매출 톱3를 담당했던 항체 항암제의 특허가 올해 미국에서 잇따라 만료되면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새로운 먹잇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항암제 트리오의 합산 매출은 206억달러로 로슈 전체 매출의 36%를 차지한다. 당장 로슈는 항암제 트리오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경쟁 업체 입장에서는 206억달러의 시장이 새롭게 열린 셈이다.

유럽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고 여겨졌던 미국 시장의 변화도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약가인하와 처방 확대 등 각종 바이오시밀러 우호정책을 펼치며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오리지널 의약품을 동등한 효능의 바이오시밀러로 교차처방이 가능한 지침서를 발표했다. 미국은 주마다 대체조제 허용 여부가 다르고 공통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환자나 보험 당국의 부담이 컸다. 하지만 이번 지침을 통해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바이오시밀러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울러 미국 최대 보험사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UNH)가 최근 바이오시밀러를 잇달아 선호의약품으로 등재하며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그동안 오리지널 의약품이 장악했던 미국 사보험 시장의 빗장이 풀리고 있는 양상이다.

▲세계 최대 바이오시밀러 시장인 미국을 놓고 국내외 제약사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은 단일 최대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이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플릭사비’(미국명 렌플렉시스)와 셀트리온의 ‘램시마’(미국명 인플렉트라) 등 ‘레미케이드’(성분명 인플릭시맙) 바이오시밀러 2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이중 램시마는 지난 3분기 미국에서 역대 최고 매출인 7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분기에 이어 분기 연속으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빗장 풀린 미국 사보험 시장에 진입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램시마가 성장하면서 얀센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레미케이드는 직격탄을 맞았다. 올 3분기 역대 최저 실적을 냈다. 얀센의 모기업인 존슨앤드존슨은 지난 10월 15일 레미케이드의 올 3분기 매출이 7억49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1%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 사보험 장벽에 가로막혀 고전했던 토종 바이오시밀러의 공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온트루잔트’(성분명 트라스트주맙), 셀트리온의 허쥬마와 트룩시마 등이 미국 출시를 앞두고 있다. 트룩시마는 올해 4분기, 허쥬마는 내년 1분기 출시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이미 바이오시밀러 강국”이라면서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지만, 현재의 성과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력해 나간다면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사업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